일상 이야기
비가 오면 좋은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말 하기 이전에 비가 와도 강변의 조깅코스에는 사람들이 운동을 하러 나온다. 운동이라고 정의하기는 뭣하지만 우산을 들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평소처럼 아예 비를 맞으며 조깅을 하는 사람도 있다. 비가 오지 않는 날과 다를 바 없이 꾸준하게 나오는 사람들은 늘 나온다.
비가 살짝살짝 오거나, 비가 어느 정도 오면 사람들은 상관하지 않고 강변으로 나온다. 하지만 장대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은 사람들이 없다. 정말 없다. 장대비가 쏴아 쏟아지는 날에 조깅코스에 있는, 중간중간의 천막이 있는 곳에 가면 이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사람이 없다. 사람만 없으면 상관없지만 비가 와도 날아다니던 갈매기나 여타 새들도 보이지 않는다. 물론 고양이들도 보이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쏟아지는 비속에서 길고양이나 새들은 어디에서 비를 피하고 있을까.
도심지에서 혼자라고 느끼고 싶다면 장대비가 오는 날 야외의 운동하는 곳에 가면 온전히 ‘나 홀로’라는 기이한 감각에 사로 잡힌다. 강변의 저쪽에도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홀로 덩그마니 있게 되면 고독과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문학적으로 고독은 즐기고 외로움은 견디라고 했는데 실제로 이 세상에 혼자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 즐기는 것도, 견디는 것도 힘들 것이다.
장대비가 쏟아지면 비가 천막에 떨어지는 소리가 아주 경쾌하고 크게 들린다. 비가 아주 세차게 오면 좋은 건 이렇게 세상에서 혼자인 것처럼 느껴지는 곳에서 서서 크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다. 한국인들은 노래 부르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나도 한국인이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노래방에 가는 건 또 별로다.
그래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를 때가 운전을 할 때뿐이다. 하지만 장대비가 쏟아지는 강변의 조깅코스에는 사람이 전무하기 때문에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도 눈치를 볼 것 없다. 크게 노래를 부르고 나면 속이 후련하다. 산 정상에 올라 고함을 지른 것처럼 기분이 좋다. 그래서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면 기분이 좋아서 가수를 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프로가 되면 이것저것 많이 따져야 하지만.
노래 따위 늘 흥얼거리지만 입 속에서 흥얼거리는 것보다 큰 소리로 내지르듯 노래를 부르고 나면 기분이 굉장하다. 겨울과 여름을 제외하고 밖에 있어도 괜찮을 날씨에는 바닷가 벤치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일행과 노래를 부른다. 바다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 또한 묘미다. 그때는 사람들이 간혹 지나가기 때문에 창피하기도 하지만 상관없다. 술도 마셨고 지나치는 사람도 누군가 바닷가에서 노래를 큰 소리로 부른다고 해서 신경 쓰지 않는다.
노래를 부른다는 건, 시를 음에 맞춰서 소리를 낸다고 할 수 있다. 노래는 시에 음을 붙인 것이니까. 그래서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때 실컷 노래를 불러본다. 책을 읽을 때에도, 영화를 볼 때에도 눈물이 잘 나오지 않는데 어떤 노래를 부를 때는 눈물이 난다. 노래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손가락만 한 아이팟 셔플에 노래를 잔뜩 욱여넣고 비가 세차게 내리면 강변으로 간다. 그리고 사람이 없는, 온전히 나 혼자만의 공간인 것 같은 강변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내가 좋아하는 라디오 헤드의 노래도 부르고, 본 조비의 노래도 부른다. 이승열의 노래도 부르고 나윤권의 노래도 부른다. 팔 굽혀 펴기를 몇 회 하고 노래를 부른다. 스쿼트를 몇 번 하고 노래를 부른다. 그렇게 장대비가 내리는 날에는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 그래서 장대비가 와도 복장을 갖춰 입고 조깅코스로 나가는 것이다. 일단 저기까지 가려면 2, 30분 정도는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