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에세이
국에 두부를 넣어서 끓여 먹는 것을 ‘연포탕’이라 한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대체로 뭐야? 하는 눈초리로 쳐다보지만 확실하게 두부를 넣은 탕이 연포탕이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난중일기에 ‘아침에 초계 군수가 연포탕을 마련하여 와서 권하지만...’라는 부분이 있다. 이순신 장군이 먹었다는 연포탕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연포탕이 아니라 두부를 넣은 탕이다.
조선시대 가정생활서 ‘산림경제’에서 연포탕은 두부를 잘게 썰어 한 꼬치에 서너 개 꽂아 흰 새우젓국과 꿀을 타서 그릇에 끓이되, 배를 그 위에 덮어 소금물이 스며 나오게 한다’라고 되어 있다.
‘연포탕’이란 오래전에는 두붓국으로 표기하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먹었다는 연포탕 역시 두부탕에 가깝다. 낙지가 아닌 쇠고기가 들어가고 주재료가 여러 갈래로 썬 두부이다. 해서 감칠맛은 배제되어 있고 두부의 향과 맛이 풍부했다고 전해진다.
어렵게 찾을 필요 없이 네이버에 ‘연포탕’을 쳐 보면 지식백과에 자세하게 표기되어 있다. 정의는 두부를 지져 닭고기, 표고, 석이, 다시마 같은 재료들과 함께 끓여 여기에 가루즙을 풀어 넣어서 부드럽게 만든 두붓국의 하나라고 되어 있다.
우리나라가 두부를 먹기 시작한 지가 놀랍게도 고려 시대로 올라간다. 고려 시대 문헌인 ‘목인집’을 보면 ‘오랫동안 맛없는 채소 국만 먹다 보니 두부가 마치도 금방 썰어낸 비계 같군. 성긴 이도 먹기에는 두부가 그저 그만. 늙은 몸을 장으로 보양할 수 있겠도다’라고 쓰여 있다.
후에 ‘세종실록’에는 명나라 황제가 ‘칙서가 이르거든 특히 두부 만드는 솜씨를 익히 보내주기 바라오’까지 되어있다. 우리나라의 두부는 이렇게 역사가 깊고 맛도 깊었다. 연포탕이라는 이름은 원래 두부가 들어간 국을 칭하는 것이다.
낙지를 넣어서 끓인 연포탕은 그 앞에 낙지라고 넣어줘야 한다. 낙지 연포탕이 정확한 표기라고 할 수 있다. 어떻든 두부를 넣어서 끓인 두붓국은 속을 든든하게 해 준다. 나처럼 위가 튼튼하지 못해도 먹기 좋은 음식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촌의 전통시장에 손두부를 만들어 파는 곳이 있었다. 운이 좋으면 출근하면서 들러 한 모를 구입하여 소중하게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저녁에 데워서 뜨겁게 한모 먹을 수 있었다. 맛이 정말 좋다. 간장도 뭣도 필요 없이 두부의 담백하고 고소한 맛으로만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없어져서 그런 두부의 맛을 보기는 힘들다.
두부 하면 하루키를 빼놓을 수 없다. 하루키는 에세이에서 두부를 늘 찬양했다. 한 에세이에서 ‘최근에는 맛있는 두부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자동차 수출도 좋지만 맛있는 두부를 없애는 국가구조는 본질적으로 왜곡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했다. 이 에세이가 지금으로부터 25, 6년 전의 칼럼이다.
그렇다면 지금 일본의 두부는 최악일까. 아니다. 현재 한국의 두부를 먹다가 일본으로 가서 먹어보면 그동안 내가 먹은 두부가 정녕 두부였는지 알게 된다.
하루키는 두부를 맛있게 먹는 법 세 가지를 말하고 있다.
첫째, 우선 제대로 된 두부 가게에서 사야 한다. 슈퍼는 안 된다.
둘째, 사 가지고 오면 곧바로 그릇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야 한다.
셋째, 그날 안에 먹어야 한다. 간장이나 양념 같은 것은 일체 치지 않고 그냥 새하얀, 매끈매끈한 걸 꿀꺽하고 먹어치우는 것이다.
두부는 새벽에 오는 음식으로 절대 비싼 음식이 아니다. 손두부 전문점에서 두부를 코스식으로 만들어서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음식을 팔고 있다. 이건 정말 반칙이다. 두부는 기껏해야 두부일 터인데. 두부는 그저 두부다.
두부의 본연의 자세는 두발로 딱 버티고 서서 맛으로 맞서는 맛.
그것이 두부 본연의 자세라고 하루키는 말하고 있다.
두부를, 맛있는 두부를 밥상에서 만나면 즐겁기 그지없다.
또 이렇게 요즘의 또 다른 두부는 맛으로만 보자면 더 맛있어졌다. 두부만 가지는 담백한 맛에서 벗어나 좀 더 맛이 가미되어서 누구나 두부만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확실히 맛은 더 나아졌지만 단단하게 두부의 담백한 맛 만을 가지고 있던 두부가 그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