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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30. 2020

전라도 길, 소록도 가는 길

한하운 시인

슬픔의 눈. 피카소의 그림을 오마주



문둥이 시인이라 불렸던 한하운 시인의 ‘소록도 가는 길’이라는 시가 있다. 한하운은 인텔리였고 소위 잘 사는, 잘 나가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1919년에 태어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1920년에 태어났다고 나와 있는 정보도 있다. 

‘소록도 가는 길'을 읊고 있으면 답답하기도 하고, 슬프고 괴롭다. 시를 외면하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그건 한하운 시인의 걸어온 길을 알고 있으면 누구나 그런 생각에, 그러한 감정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소외받고 있다고 평소에 생각이 드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이 시는 1949년 월간 종합잡지 ‘신천지’를 통해서 발표되어서 세상에 알려졌다. 한하운은 소록도 나병환자 요양원으로 가는 길의 아픔과 고통을 시에 담았다. 거기까지 걸어가면서 몸이 고통스러운 것보다 사람들의 멸시와 차단, 무서울 만큼 잔인한 시선 그리고 내뱉는 인간 이하의 욕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고통이 한하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한하운은 엘리트였고 태어날 때는 아주 멀쩡했다. 당시에 일본에 유학도 갔다 왔을 정도로 집안은 부유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얻은 나병은 모든 생활을 뒤흔들어 놓았다. 집에서조차 가족으로 받아주지 않고 쫓겨나고 말았다. 가족에게마저 버림받은 한하운은 그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잠이 들고 던지는 돌에 맞아 머리가 터지면 일어나 또 다른 곳으로 갔다. 여인숙과 여관을 돌며 시를 팔아먹었지만 도저히 생활이 안 되었던 한하운은 소록도로 가기로 했다.

소록도, 풀이를 하면 작은 사슴의 섬.
작은 사슴처럼 슬픈 눈망울의 아름다운 섬이 소록도다. 한하운은 거기에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나병환자들이 있는 요양병원에 가기로 마음먹고 기차를 탄다. 하지만 기차에 오르자마자 차장에게 발길질을 당하고 기차에서도 내쫓기고 만다. 당시 문둥이는 기차를 타서도 안 되고, 식당에 와서도 안 되고, 사람과 말고 섞으면 안 되는 존재 바로 괴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작금의 시대에는 어떨까. 문둥이라고 불리는 나병 환자가 일반인처럼 기차를 탈 수 있을까. 식당에 갈 수 있을까. 식당에서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서 먹고 있다면 나는 나란히 앉아 있을 수 있을까. 문둥이의 문드러진 손과 얼굴로 먹은 숟가락과 접시와 밥그릇을 나는 어떻게 생각할까. 

시간이 흘러 어떤 부분은 나아졌다고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돌은 던지지 않겠지만 오히려 냉대하고 차가운 시선은 더 할 것이다. 한하운은 돌을 던지면 왜 던지냐고 반박하지 않았고 고개를 숙이고 맞아야 했다. 한하운은 소록도까지 천리 길을 걸어서 간다. 그 길이 한하운에게는 너무나 힘들고 죽을 것만 같다. 삼복더위에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것이 이렇게도 힘겹다니. 토송처럼 붉은 황토가 태양의 열기를 받아서 가마솥 같다. 그곳을 절뚝거리며 걷다가 발가락 하나가 떨어져 나간다. 그렇게 발가락은 다 떨어져 나가고 두 개만 남는다. 쓰러져 죽더라도 소록도에서 죽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가면서 쓴 시가 ‘전라도 길, 소록도 가는 길’이다. 한하운은 후에 투병 중에서도 성혜원과 신명 보육원을 설립하고 운영했다. 53년에는 대한 한센 연맹 위원장으로 취임하여 나병 환자들을 위해서 구제사업을 하기도 했다. 한하운의 시는 12편 정도가 고작이다. 한하운의 시는 겉멋이 잔뜩 들고, 순고하고 고귀한 글을 쓴 예술가들보다 절실해서, 벼랑 끝에 매달려서 쓴 글이라 더 마음에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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