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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28.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96

9장 3일째 저녁

196.


 바람소리가 들리고 밤꽃 냄새가 났다. 여름이 지나고 밤나무 근처에 가면 저녁의 냉랭한 공기 속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밤꽃 냄새가 여기저기서 안개처럼 퍼졌다. 밤꽃 냄새는 연약했지만 생기를 품었다. 달이 빛을 발하고 해면의 조개들이 큰 소리로 울었다. 밤꽃 냄새는 기억을 불러들인다. 하지만 마동은 기억이 뒤죽박죽에다가 떨어져 나가 버린 깨져있는 기억이 많았다. 마동의 눈앞에 어떤 광경이 나타났다. 보이는 저 광경이 마동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마동에게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마동의 인격과 기억의 배열이 재구성되어서 배치가 새롭게 진행되고 있다. 마동을 이루고 있는 에고가 어딘가로 실뱀장어처럼 기어서 달아난다.


 에고는 달아나면서 몸이 작아져갔다. 점점 작아지더니 완두콩만 한 작아져 버리고 에고가 섰던 자리에 또 다른 에고가 몸집을 부풀리더니 작아진 원래의 에고를 어딘가에 집어넣어 가둬버린다. 원래의 에고는 겁이 많고 가녀린 몸이었고 원래 에고가 지니고 있던 인격은 새롭게 자라난 에고와 의식을 공유하지 못할 터였다. 원래의 작은 에고는 어딘가에 갇혀서 꺼내 달라고 말하지만 새로운 에고는 그 말을 무시했다. 새로운 에고는 기형적으로 덩치가 점점 커졌다. 표정도 없고 무시무시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어둡고 축축한 얼굴이었다. 새롭게 자란 에고는 발을 바닥에서 떼더니 어딘가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다. 걸어가는 모습이 설인이 무릎까지 오는 눈밭을 헤치며 걸어가는 모습이다. 새로운 에고가 걸어간 곳에는 작은 공터가 있고 그곳에서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놀고 있었다.


 무엇을 하면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것인지 새로운 에고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작은 공터는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기에는 턱없이 작은 공간이었다. 아이들은 작은 공간의 중간에 모여 앉아 재잘거리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무엇인가 만지기도 했다. 새로운 에고는 그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아이들은 은색의 철제 큰 바구니에 담겨있는 무엇인가를 만지고 입에 넣어서 씹어 먹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것은 도넛이었다.


 요즘처럼 여러 종류의 맛과 초콜릿이나 딸기 시럽이 듬뿍 들어있는 식감이 좋고 입맛을 돋게 하는 도넛이 아니라 그저 중간이 뻥 뚫린 밀가루 빵에 설탕이 발린 단순한 도넛이었다. 주위는 공터를 둘러싸고 있는 집들이 보이고 집들의 오늬무늬 벽이 아주 오래되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낡은 가구처럼 허름한 벽돌로 쌓여있는 벽에는 정의할 수 없는 페인트 색이 무늬에 걸맞지 않게 칠해져 있다. 집들은 낮았고 기왓장이 지붕에 덮여있거나 옥상이 보이는 대부분의 집들이 공터를 에워싸고 있었다.


 아이들이 모여 앉아 있는 공터는 흙바닥이었고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었다. 구멍은 아마 아이들이 모여 놀이를 하는 요량으로 파 놓은 것이다. 공터의 맞은편에 작은 슈퍼가 보였다. 슈퍼라기보다는 구멍가게였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 과자나 음료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았다. 음료는 사이다와 콜라 그리고 환타뿐이고 맥주와 소주가 보였다. 소주병은 뚜껑을 돌려서 따는 것이 아니라 병따개로 따는 소주병이었다.


 이곳의 기억이 있는 원래 에고는 새로운 에고를 밀어내고 새로운 에고의 몸을 들어 올려보려고 하지만 새로운 에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새로운 에고는 갇혀있던 원래 에고의 기억을 힘으로 밀어냈다. 새로운 에고는 기억을 밀어내는 것으로 모자라 그 기억을 분쇄하고 파편으로 만들어버려 아이들이 파 놓은 땅을 더 깊게 파낸 다음 그 안에 묻어 버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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