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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07.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06

9장 3일째 저녁

206.


 마동의 뒤에서 바람이 쑤욱 몰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곧, 거대한 굉음의 소리.     


 기차다.     


 파업이라고 했는데 기차가 지나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마동은 달리는 것을 포기하고 멍하게 기차가 지나치는 것을 바라보았다. 기차는 아이들이 누워있는 기찻길을 힘 있고 고통스럽게 지나갔다. 기차의 굉음에 묻혀 아이들은 소리 한번 지르지 못했다. 아이들은 기차의 톱니바퀴 속으로 종이처럼 말려 들어갔다. 순식간이었다.


 여기저기 흩어져버린 조각 조각난 아이들의 잔재가 기분 좋은 구름과 바람, 숲의 모습과는 기기묘묘하게 대조를 이루었다. 분쇄된 피비린내와 철길의 냄새가 풍겼다. 모순의 냄새를 마동은 그대로 일어선 채로 맡았다. 근육으로 위배의 냄새가 파고들었다. 냄새는 발가락 끝으로부터 등을 타고 뒤통수를 잡아당겼다. 마동은 정신이 가물가물했다. 하늘이 부서지고 숲에서 대폭발이 일어났고 검은 구멍이 생겼다. 구멍으로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갔다. 마동도 폭발과 더불어 구멍으로 몸이 쑥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 냄새가 났다.


 바람 냄새?


 마동은 철탑 밑에서 바람이 전해주는 냄새를 맡고 있었다. 누워있던 마동은 고개를 들었다. 마동 앞에 거대한 철탑이 서 있었다. 마동은 최원해와 함께 이곳을 조깅하고 있었다.


 어쩌다가 나는 여기에 이렇게 누워 있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도달할 수 없는 답이다. 바람은 어디선가 맡아본 위배의 냄새를 잔뜩 지니고 있었다. 바람은 과거의 어딘가에서 그 냄새를 몰고 와서 전달했다. 오래전 기차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흩뿌려진 피비린내와 흡사한 냄새. 마동은 눈을 뜨고 바람 속에 뒤섞여 있는 뒤틀린 내음을 알아차렸다. 바람은 철길의 냄새와 피비린내를 마동에게 왈칵 쏟아부었다. 구토가 났다. 철탑 밑에는 약간의 수분을 머금은 풀이 수북하게 그 밑을 점령하고 있었다. 풀들은 마치 꿈틀대는 실지렁이처럼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하나의 메타포가 철탑을 휘돌고 있는 바람에 따라서 하늘하늘거리고 있었다. 바람에 실려 오는 냄새는 어디서 흘러오는 냄새인지 몰랐지만 그 냄새는 철길 위에서 맡았던 피비린내였다. 냄새는 영혼의 표피를 걷어내고 어둡고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서 이곳까지 왔다.


 현실의 바람이 마음의 모래 탑을 건드렸다. 마동은 누운 채로 철탑을 올려다보았다. 철탑은 또 다른 세계처럼 하늘을 향해 솟아있었다. 철탑의 다리 부분에서 자라는 풀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정돈된 모습이었다. 아마 구청의 직원들이 주기적으로 나와서 철탑 주위를 관리하는 모양이었다. 철탑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거대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철탑 주위에는 철조망으로 바리케이드가 쳐 있었고 촉수처럼 자라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철탑 근처에서 하늘하늘 춤을 추고 있는 풀은 인간의 손으로 잘라내지 않고 가만 두면 몇 달 만에 높은 곳을 향해 녹색을 드러내며 끊임없이 올라갈 것이다. 녹색으로 덮여있는 그들의 진화는 육안으로 전혀 볼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 보면 저 먼 곳까지, 저 높은 곳에 이미 닿아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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