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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10.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09

9장 3일째 저녁

209.

 사실 사람들은 철탑에 관한 모든 부분은 인간의 삶에서 배제시키고 생활하는 편이다. 인간은 철탑의 소규모적인 전봇대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지 않고 시큰둥한 반응이다. 전봇대는 그동안 인간들의 필요에 의해서 세상 곳곳에 세워져서 인간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 주었다. 지금에 와서 사람들은 미관상의 이유로 설치한 비용보다 몇십 배의 자본을 들여 전봇대를 전부 뽑아내려고 한다. 간혹 티브이 속의 뉴스나 신문에서 철탑이나 전봇대 전선에 누군가 감전되어, 라는 식의 뉴스를 접하지만 그렇군, 이런 일도 일어나는군, 하게 될 뿐이다. 그리고 일 이 분만에 그 일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히고 만다.


 마동은 대학교 시절 교수가 한 강의가 어제 일처럼 자세하게 떠올랐다. 철탑이란 인간 세계에 들어와서 인간과 밀접하지 못한다. 그것이 철탑의 운명이다. 그렇다고 철탑끼리 가까이하지도 못한다. 고독의 근원이 철탑에게 있다. 고독은 본질적으로 외로움과 다르다. 교수의 말에서 철학적인 의미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그러한 철탑 밑에 왜 누워있는 것일까.


 마동은 산속에 살고 있는 짐승과 새들의 몸동작과 날갯짓을 느꼈다. 철탑의 쎄 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철길의 냄새였다. 철탑은 오래전 철길과 같은 본능으로 마동에게 다가온 것이다. 아니 마동의 본능을 불러들였다. 마동의 의식은 예전의 그날을 애써 잊어버리려고 해왔다. 잊어버리려는 의식은 억지스러움을 지녔고 결국 그날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또 다른 자아, 슈퍼에고를 만들었다. 철길 위에서의 기억을 의식에서 파버리려고 슈퍼에고에게 질서를 강요했다. 슈퍼에고는 기억을 되찾지 못하게 박스 안에 꼭꼭 가둬져 숨이 지내는 것을 강요당했다. 무의식은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올바른 판단이라 믿어왔다.


 믿음이라는 첨병은 배신을 잘한다는 것을 마동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믿고 싶었다. 굳건하지 않고 흔들리는 것을 믿고 싶었다. 철저하게 질서를 강요당한 슈퍼에고는 철길 위에서의 기억은 봉인한 채 어떠한 열쇠도 맞지 않는 두꺼운 자물쇠로 잠가 놓았다. 슈퍼에고는 갈래갈래 분쇄되어버린 아이들의 처참한 그 모습을, 그 광경을 의식에서 제거하려고 많은 노력을 억지 받을 뿐이었다. 마동은 세월이 흐르고 공기의 흐름이 변하는 동안 자신만의 훈련으로 서서히 의식에서 오래 전의 기억을 조금씩 마모시켜 왔다. 완전하게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철길 위라는 관념체는 마동의 의식 속에서 켜켜이 쌓여버린, 하얀 눈으로 덮여 보이지 않게 되었다.


 눈가림이었다. 단지 보기 싫은 장면을 눈을 감아서 보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마동의 무의식 저편의 철길에 대한 기억을 철탑이 불러냈다. 철탑은 그동안 마동의 슈퍼에고에게 강요당한 질서에서 자유롭게 해 주었다. 자유, 자유는 새처럼 하늘을 나는 자유가 아니다. 억압 속에서 비로소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침묵의 강함처럼 자유는 방종과 다른 것이다.


 마동은 때때로 여름의 쉬는 날에 산으로 올라 이곳을 지나쳐 조깅을 하면서 철탑 밑에서 앉아 쉬곤 했다. 마동은 철탑 밑에 앉아서 몸을 풀기도 했고 쉬었다가 다시 달렸지만 쉬는 장소가 어째서 늘 철탑 밑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숲 속의 조깅코스를 달리다가 몸을 풀고 있으면 그곳은 항상 철탑 밑이었다.


 어느 곳이든 철탑이라는 것이 우뚝 솟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철탑 근처로 가지 않는다. 마동은 사람들과 달랐다. 예의 그 차갑고 서늘하고 침묵을 유지하는 쇠붙이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차갑고 긴 덩어리에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오래 전의 철길도 그랬듯이.


 마동은 그날 이후 철길 근처에는 가지 않았다. 기차도 타지 않았다. 지하철이 없는 지금의 도시를 선택한 것도 그 이유였다. 놀이동산에서 기차와 비슷한 모양을 지닌 놀이기구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쩌면 본디부터 기찻길을 좋아했던 마동의 무의식을, 그간 질서를 강요받았던 슈퍼에고가 의식적으로 무의식을 제제했다. 슈퍼에고는 조금씩 자신이 받았던 강요를 되돌려주고 싶어서 몰래 초초했을지도 모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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