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3일째 저녁
210.
그간 조깅을 하면서 철탑 밑에서 쉬었다가 다시 일어나서 달렸던 모든 행동이 그렇게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기찻길을 트라우마로 느끼는 무의식을 밀어내려고 마동의 의식은 끊임없이 노력했다. 슈퍼에고를 만들어내 억지를 부리며 트라우마를 박스 속에 잘 넣어 놓도록 만들었다. 박스는 마른땅을 힘겹게 파내어 그 속에 넣어 두었다. 봉인해버린 것이다. 세계에 깔려 있는 기찻길에서 마동은 멀어졌다. 기찻길은 잊어버렸지만 기찻길과 비슷한 길고 차갑고 고요한 철탑을 슈퍼에고는 느끼고 있었다. 결국 마동은 산속을 조깅을 하다가 철탑 근처에서 몸을 풀게 만들었고 길고도 탄탄한 철탑에 친밀감을 쏟게 했다. 그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 철탑을 마동의 슈퍼에고는 인지의 의식을 차츰 굳혀가는 과정 속에서 이면으로 철탑을 애정 하는 동시에 마동을 철탑 근처로 계속 데리고 왔다.
마동은 철탑의 보이지 않는 끝 부분에 시선을 고정하려고 했다. 달빛은 밝지 않았고 희미했지만 그 빛을 받아서 철탑의 상층부가 마동의 눈에 들어왔다. 인류가 사라지면 전기가 전혀 필요 없는 날이 오고 저 철탑은 쓸모없어져 버리게 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철탑의 저 높은 곳까지 질소를 뿜어내는 풀이 철탑을 녹색으로 덮어버리는 세상이 마동의 눈에 들어왔다. 마동을 바닥에서 일어났다. 식물의 수분이 옷에 묻었다.
마동은 사라진 최원해에 대해서 생각했고 여기에 눕게 된 경위를 생각했지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동의 의식이 깨어났을 때 그 일은 분명 일어난 후였다. 어찌 된 일인지 최원해의 행방에 대해서 생각의 정보가 전혀 없었다. 성적에 얽매이지 않는 고등학생이 초등학교 6학년의 수학 문제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당황스러웠다. 최원해 부장의 투덜거림과 동아리 이야기를 끝으로 마동의 기억은 잘 썰리는 칼에 잘려나가 버렸다.
최원해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마동은 주위를 둘러보며 의미 없는 목소리로 몇 번인가 큰 소리로 불렀다. 철탑 밑의 주위도 둘러보았다. 저 멀리서 마른번개가 보였다. 한 여름밤의 철탑 밑이었고 풀벌레가 우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마동의 목소리는 질소와 함께 철탑 밑의 허공에 흩뿌려지기만 했다. 바람이 불어오는 것은 기억이 났다. 바람에서 냄새가 났다. 부자연스러운 냄새. 바람은 초지의 옛 시간의 냄새를 몰고 왔다. 치누크와 같은 바람을 느끼고 그 바람의 냄새를 맡은 기억을 뒤로한 채 마동의 기억은 소멸했다.
공 백.
눈을 떠 보니 철탑 밑에 쓰러져 있는 것이다. 없어진 기억을 빼고는 비교적 평소 의식하는 것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마동은 지금 눈을 뜨고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과 상황이 제대로 된 현실인지 아니면 현실 속의 가설인지 의문스러웠다. 며칠 동안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이와 상황을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마동은 자신에게 그렇게 타이르고 있었다.
괜찮아, 넌 잘못되지 않았어.
마동은 최원해가 없어진 것을 알고 자신의 기억을 다시 나열해보았다. 조깅을 하려는데 최원해가 찾아왔다. 그리고 같이 산길의 코스를 택해서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사실이며 논리다. 오르막길의 비교적 어려운 코스는 문안하게 통과를 하고 평지로 보이는 구간을 최원해와 이야기를 하며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최원해가 쉴 새 없이 헉헉대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듣기 싫어 최원해를 버려두고 빠르게 혼자 달리다가 철탑 밑에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어쩐지 자연스럽지 못하고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해석이었다. 브리핑을 통해 권력자가 국민들에게 늘 하는 말처럼 어색했다. 마동은 머리를 흔들었다.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보았다. 달은 분명히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마동은 희미하고 차갑게 빛나는 달을 향해 군대에서 한 것처럼 말을 걸어 보았다. 하지만 달은 지퍼를 올린 점퍼처럼 굳게 입을 다문 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마동은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생각은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뒤의 이야기를 이어서 생각했다. 자신을 따라오던 최원해는 잘 따라오다가 마동이 너무 빨리 산속을 달려가 버려서 그만 포기를 하고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 간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