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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12.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11

9장 3일째 저녁

211.

 그래,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철탑 밑에 누워있는 나는 어떻게 설명을 할 것인가. 분명하지만 정신을 잃었다. 나는 무슨 일로 정신을 잃었던 것일까.


 오래 전의 기억이 정신을 잃은 후 필름 영상처럼 나타났다.


 최부장님은 나를 따라오다가 정말 못 따라와서 내려간 것일까.


 의문과 질문만 있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상황과는 무관하게 흘러갔다. 만약 내려갔다면 마을에서 그리 멀리까지 올라온 것이 아니기에 잘 찾아서 내려갔을 것이다. 의식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마동이 향하고 있는 촉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마동은 의심과 두려움으로 몸이 조금 떨렸다. 진심으로 두려웠다. 두려움은 인간의 감정 중에서 질투만큼 표현하기 어렵고 애매한 감정이다. 무서움도 아니었다. 두려움은 공포에서도 벗어났다.


 두려움이란 환멸일까. 현실일까. 말라버린 우물 밑바닥의 깊은 수렁의 끝을 지나치는 지옥일까.


 무엇이 되었든 간에 어떤 것이 되었든 간에 마동이 느끼는 두려움은 곧 자기 자신이었다. 마동은 일어나서 철탑과 달을 번갈아가면서 바라보았다. 달과 철탑은 모든 것을 전부 보고 있었다. 저 멀리 마른번개가 내려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보다 확실히 굵어지고 커졌다. 바람이 이제 전혀 불지 않았고 무더운 여름밤이지만 마동은 더위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제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마동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이제부터는 편협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했다. 생각을 하고 포기하고 또 생각하고 포기하고의 끝없는 반복.


 개의치 말자고 생각을 했지만 마동은 선택의 문제에서 어디를 선택해야 하는지 갈팡질팡했다. 마트에서 아스파탐이 덜 함유된 막걸리를 고르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 소피가 말했다. 최선의 선택만 있을 뿐 최고의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소피 역시 선택으로 지금의 길을 가고 있다. 선택, 그 순간이 다가오면 무엇이 정답이고 오답인지 예측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치 해안가의 소나무 숲에 들어서니 심각한 해무로 인해 오솔길의 방향을 잃어버리는 상황인 것이다. 손을 뻗어도 알 수 없는 삶일지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후퇴란 있을 수 없고 뻗은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상황이라도 그 갈림길에서 언제나 선택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 비록 비단길이 아니라 할지라도 옳은 선택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미래가 건조하고 딱딱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지라도 선택을 피할 수는 없다. 이제 상황을 받아들이는 단계는 넘어섰다. 이제 선택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자리에서 일어섰더니 몸이 새털처럼 아주 가벼웠다. 마동은 다시 한번 말없이 달을 바라보았다. 달은 침묵으로 마동의 상황을 꼼꼼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마동은 달리다가 잠깐씩 운동화의 끈을 묶거나 다리를 풀어주기 위해서 잠시 쉬었다가 일어나면 미세한 빈혈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로지 새. 털. 같. 은. 기. 분.


 뻗어있는 철탑의 꼭대기까지 점프해서 올라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지금 느끼는 기분은 오후에 병원에서 세 시간 정도 잠이든 다음 일어나서 느끼는 상쾌함을 넘어섰다. 어제의 지금 시간보다 힘이 몇 배는 되었다. 정신을 잃기 전의 몸에 흐르는 정념에서 벗어난 또 다른 자신을 느꼈다. 마동은 몸이 떨렸다. 춥거나 두려워서 떨리는 것이 아니었다. 에너지의 기운 때문이다. 마동은 헤아릴 수 없는 기이함을 지니고 있는 존재 같았다. 결락을 가득 품은 심연은 몸속 어딘가에 웅크리고 앉아 가시를 숨기고 있었다. 에너지로 인해 가시가 돋아나고 일어나려고 한다. 또 다른 마동의 자신은 어둡고 슬펐다. 간악함의 징후는 수수께끼 같았다. 가시가 날개가 되어 펼쳐진다. 첫 강의를 맡아서 학생들 앞에 서는 초보 학자처럼 몸이 떨렸다. 마동은 주먹을 쥐고 양팔에 힘을 준다. 분출되는 힘의 파동이 정맥을 타고 주먹을 쥔 손으로 모여들었다. 큰 벽돌을 주먹으로 내리치면 부서져버릴 것이다. 신체가 오묘함을 느꼈다. 몸이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 수 있을 것처럼 가벼웠다. 새의 날갯짓과는 다르다. 나비의 날개는 바람을 움직이고 지축을 울리는 힘을 지녔다. 자연에 귀속된 날갯짓이 아니라 바로 주체가 되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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