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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24.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23

9장 3일째 저녁

223.

 장군이의 주인은 마라토너 팬츠에 라운드 네크라인의 타이트한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손목에는 손목 보호대를 차고 있었다. 무릎을 굽혔다 펴기를 몇 번 하고 허리를 꺾어서 몸을 푸는 동안 장군이는 주인을 참을성 있게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주인은 몸을 다 풀었는지 마동에게 가자며 따라오라고 했다. 장군이는 주인이 달리는 속도에 맞추어서 옆에서 같이 달렸다. 다른 개들처럼 킁킁거린다거나, 묶여 지내는 개들이 보이는 행동(앞으로 박차고 돌진하려는)은 보이지 않았다.


 취객이 난무했고 경찰들의 모습이 틈틈이 보였다. 밤바다의 모래는 인공 불빛을 받아서 부드럽게 빛났고 밤의 점령자들은 살가운 모래가 보기 싫은지 우악스럽게 밟아댔다. 해안가를 따라서 조성된 조깅코스를 지나서 이백여 미터를 달리면 등대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계단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아 보였지만 걸어서 올라가도 15분 미만이면 꼭대기에 도달한다. 계단은 완만했고 천천히 걸어서 올라가면서 뒤를 돌아보면 해안의 모습이 전부 보이기 때문에 산책을 즐기며 다리의 근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어서 등대공원의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계단은 인간이 만들어낸 발명품 중에 최상위에 있다고 느끼는 바였다. 어떤 이는 아스피린이 최고의 발명품이고 어떤 이는 가위가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했다. 여러 가지 물품이나 건축물 중에 마동은 계단이 그 꼭대기에 속해있다고 믿고 있었다. 베이비오일과 마찬가지로.


 마동은 분홍 간호사가 있는 내과에 오르는 계단에서도 잠시 계단이 던지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계단을 타고 어딘가로 오른다는 것, 수직을 향하는 인간의 열망은 계단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바슐라르를 통해 이미 촛불의 미학에서 수직 하는 몽상가들의 의미를 조금 알게 되었다.


 계단을 타고 오르면 아무리 높은 곳이라도 꼭대기에 다다를 수 있었다. 철탑에도 계단이 있다. 쉬안쿵사도 계단을 통해서만 오를 수 있다. 계단에 앉아서 책을 보면 집중에 잘 된다. 계단에 서서 이야기를 하거나 서류를 읽어도 집중도는 훨씬 좋다. 헤밍웨이는 일어서서 글을 적었다. 집중의 문제였다. 패배하지만 않는다면 인간은 해볼 만하다고 늘 말했다.


 변이가 와도 변이에 패배하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무더운 여름의 오전에 아파트 계단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시원하기까지 했다. 아파트 꼭대기에 있는 터뷸런스를 아파트의 척추를 타고 각층의 계단으로 흩어졌다. 계단이라는 공간은 사람들이 올랐다가 내려가는 이음새의 역할을 하는 장소다. 계단이라는 공간은 ‘머무르다’의 개념에서 벗어났다. 그렇지만 마동은 병원의 계단에서도 아파트의 계단에서도 잠시 머물러 계단이 주는 사려 깊음에 대해서 잠기기도 했다. 계단이라고 해서 다 같은 계단이 아니었다. 계단 중에 본디 지니는 의미를 가진 계단에서 벗어난 계단이 있었다. 일반계단에서 벗어난 계단 말이다. 그런 계단에서는 기이하게 머무르게 된다. 마동은 그동안 사람들을 지켜봤다. 10층 이상의 건물을 애써 계단을 이용하여 오른다거나 내려오는 사람은 없었다. 각자의 사정은 있겠지만 그 누구도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에 시간에 에너지를 소모하지는 않았다. 어쩌다가 계단을 억지스럽게 올라오는 이와 마주친다면 그 사람도 마동 자신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스쳐가면서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마동과 장군이, 장군이 주인은 해안선을 타고 달려서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들은 등대로 올라가는 계단에 도달했다. 계단은 해무 때문에 끝이 더욱 보이지 않았다. 저 너머에는 마치 이계가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다. 계단을 타고 오르면 송림이 등장하고 송림 휴양지의 조깅코스가 등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건물의 계단은 시큰둥하며 관심이 없지만 야외에 있는 휴양지 해안가에 있는 계단에서는 머물러서 이야기도 하고 유치한 가위, 바위, 보 게임을 하며 한 여름 밤바다의 정취에 녹아들어 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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