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6.
성시경이 좀비가 된 그날이었다. 중국에서 언데드에게 물린 아이돌은 1주일간의 잠복기를 거쳐 감염이 되었다. 아이돌은 팔을 물린 후 물린 자리에 연고를 바르고 파스를 붙이고 음악도시의 게스트로 왔다.
“중국에서 어땠나요?” 성시경이 물었다. 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아이돌은 극심한 한기를 느꼈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조, 좋았어요”라고 짧게 말하는데 목소리는 쇳소리처럼 나왔다. 성시경은 그 시간을 융통성 있게 잘 넘기고 광고로 넘어갔다. 성시경은 아이돌에게 감기가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물었고 아이돌은 교육받은 대로 괜찮다는 말만 계속했다.
하지만 얼굴에 핏기가 걷히고 눈동자에 변색이 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백태가 낀 것처럼 보였다. 성시경은 아이돌의 매니저를 불러서 비상약이라도 먹여야 하지 않겠냐고 하는 찰나 아이돌이 성시경에게 달려들었다.
성시경은 당황했고 모여든 사람들은 아이돌을 떼어내어 부스 밖으로 끌어냈다. 아이돌은 끌려 나가면서 부르르 떨었고 으르렁거리는 기이한 신음소리를 냈다. 아이돌을 잡았던 매니저와 스태프들도 아이돌에게 물려 목, 팔이 차례로 뜯겨나갔다. 성시경은 특유의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너무 당황스러워하며 자신이 물린 곳을 꽉 잡았다. 큐시트가 들어왔고 성시경은, 자신도 감기에 걸려 힘겨운데 아이돌이 독감이 너무 심해 더 이상 진행이 어려워 병원으로 옮겼다고 멘트를 했다.
라디오 부스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부스 맞은편의 프로듀서에게로 좀비가 된 스텝들이 달려들었고 복도는 피로 물들었다. 당시 성시경의 몸속에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혈관 속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성시경은 감기약을 먹고 있었고 더불어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서 처방받는 ***치료제인 플로포트와 행동 항진증 치료제인 리탈린에스알을 복용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살인 바이러스에 걸려 온 아이돌에게 물렸을 때 바이러스가 혈관을 통해 심장을 거치고 목줄을 타고 뇌로 올라갔을 때 플로포트와 마찰이 일어났다. 뉴런과 시신경을 점령해야 하는 좀비 바이러스가 플로포트와 리탈린에스알의 잔류에 의해서 차단되었다. 이미 성시경의 심장과 모든 기관의 기능은 잃어버렸지만 뇌기능은 살아남았다.
신경 속의 시냅스에 새로운 단백질이 세포와 합성하는 과정 속의 인플루엔자와 폴로포트가 살인 바이러스, 일명 T바이러스라 불리는 감염 균이 뇌로 침투하는 현상을 막아 버렸다. 시냅스를 타고 들어간 살인 바이러스가 혈관에 침투함으로 뇌간과 해마를 녹여버려야 하는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그 시냅스의 막을 형성하고 있었다. T바이러스가 침투해서 시냅스를 바로 녹이지 못하고 성시경의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는 살아있게 된 것이다.
몸의 다른 부분은 곰팡이가 피고 살이 썩어 들어가지만 뇌기능만은 살아남아서 자각을 하게 되었다. 성시경은 다른 언데드들과는 다르게 자각이 가능했다. 성시경은 자각을 통해서 다른 언데드들을 부릴 수 있었고 자신을 찾아온 팬들을 인질로 두고 서서히 그들을 먹어 치워 갈 수 있었다.
나는 언데드가 되어버린 성시경의 행방을 알 길이 없었다. 언데드가 되어버린 성시경을 전혀 찾을 수도 없었다. 성시경을 구해야 한다며 집단적으로 움직인 사람들이 전부 여자들이기 때문에 이들이 한꺼번에 좀비가 되었다면 분명 소식이 전해졌을 것이다. 나는 오래전에 나온 소니 제품, 아날로그 라디오를 들고 있었다. 이어폰을 끼고 뉴스를(뉴스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디선가 누군가 언데드의 소식을 주파수로 계속 보내는 형식) 들을 수는 없었다. 주위의 언데드들이 다가오는 소리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작은 스피커로 맞추어 놓고 언데드들의 소식을 전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스마트폰인 휴대전화는 배터리가 있는 한 시계로 밖에 활용되지 못했다. 애플리케이션은 전부 멈춰 버렸고 전화망은 거의 소멸했다. 방송도 대부분 꺼졌고 아날로그 라디오를 통해서 주파수를 옮겨가며 현재의 상황을 곳곳에서 알리는 소식만이 들렸다. 어떤 주파수에서는 라디오헤드의 블랙 스타를 지속적으로 내보냈다. 나는 그녀를 찾으러 가다가 어딘가의 옥상 구석에 앉아서 주파수에서 흘러나오는 블랙 스타를 꼼꼼하게 듣기도 했다. 블랙 스타를 듣는 것에 너무 심취하여 이것은 사주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라디오 주파수나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지만 성시경을 구하러 간 여성 단체에 대한 소식에 관련된 보도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었다. 방송국에 난입한 언데드들로 인해 방송국에서 일하던 종사자들과 연예인들은 대부분 언데드가 되었고 그 속에서 으르렁거리며 몸이 썩어가고 있었다.
나는 지금 63 빌딩을 향해 가고 있다. 내 예측이 맞는다면 성시경은 저 안에 있다. 그리고 언데드가 된 성시경을 걱정하며 구하러 갔던 여자들도 그 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이 들었고 확신을 했다. 내가 들고 있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손가락으로 주파수를 일일이 맞춰야 했다. 그러면 얻어걸리는 소식을 전달받을 수 있는데 그것은 전부 다른 주파수에서 마구잡이로 방송을 내보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한 곳의 주파수에서 성시경의 노래가 미약하게 계속 들려왔다.
‘너는 나의 봄이다’가 한 주파수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굿모닝’이 그다음에 흘렀고, ‘그 자리에 그 시간에’가 나왔다. 그다음이 ‘사랑하는 일’이 흘러나왔다. 이후에 지속적으로 성시경의 노래가 이 한 주파수에서만 계속 나오는 것이었다.
나와 그녀가 무척 좋아한 ‘아는 여자’가 나온다. 우리는 그 노래를 그녀의 차에 앉아서 10번이고 같이 불렀다.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나 웃을 수 있다니' 이 부분을 같이 부를 때면 서로 바라보며 눈빛을 주고받기도 했다. 평소에 그윽한 눈빛을 보내면 이상하지만, 아는 여자를 부르면 그것이 가능하게 했다. ‘그리운 내 손이 잡아 본 그대에 손도 익숙해’ 하는 부분은 가사가 정말 좋다며 우리는 말하곤 했다.
그 손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이 전달된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가사였다. 이 부분을 성시경은 잘 불렀다. 그리고 후미에 ‘너무 잘 아는 여자라, 내가 사랑한 여자라, 자꾸만 우리는 더 사랑할 수도 없을 것 같아’이 부분은 애틋하고 강하게 불러야 한다. 그렇게 성시경은 감정을 조절하여 해낸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마지막에 ‘처음 헤어진 그 이유로 또 헤어질까 봐, 그저 이렇게 바라만 보는 나 그대’라고 끝나는 부분은 성시경 특유의 끝맺음을 하는 애절함으로 마무리를 한다. 그녀와 나는 ‘아는 여자’라는 곡을 몹시도 좋아했다. 나는 그녀를 만나기 전부터 성시경의 ‘아는 여자’를 제일 좋아하는 노래로 여기고 있었다. 용케도 그녀 역시 그랬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