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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05. 2020

좀비 성시경 7

단편소설

7.

 나는 주파수가 나오는 곳을 찾아냈다. 그 주파수는 63 빌딩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고 주파수를 조금만 틀어서 성시경의 모든 노래는 자신의 팬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인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내 안의 그녀’는 마치 이곳으로 빨리 오라는 백 워드 마스킹처럼 들리는 것이다. 일종의 최면을, 노래를 타고 흘려보냈다. 아직 살아남아 있는 사람 중에 성시경의 여성팬들은 이 주파수를 듣는 다면 그곳으로 달려갈 것이 틀림없었다. 바지 뒷주머니에는 미국에서 건너온 좀비들의 특징에 관한 책자가 들어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꺼내 들었다.     


 책자 3장에는 언데드들 중에서도 자각을 하는 언데드가 있다는 내용의 글이 있었다. 그들은 어떠한 경로로(세포의 분열, 바이러스와의 합성, 복용한 약에 따라) 언데드들에게 물렸을 때 뇌의 신경에는 좀비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못해서 자각을 하며 다른 언데드들을 부릴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체열은 여전히 없고 생명은 끊어졌지만 자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언데드들을 부릴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나는 성시경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자각증상을 보이며 63 빌딩에서 살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성시경을 구한다고 그의 여자 팬들이 그 속으로 들어간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팬들 중에는 그녀도 속해 있었다. 여자 친구는 아직 언데드가 되지 않았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아마도 자각증상을 보이는 성시경은 한 번에 닥치는 대로 여자들을 물어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자각을 한다는 것은 허기를 느낄 것이고 그럴 때마다 인질을 불러 언데드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아직 여자 친구인 그녀는 언데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지만’이 ‘그럴 수도 있다’라고 생각이 옮겨가는 것이 못내 못마땅했다.     


 나는 63 빌딩 앞의 리첸시아 아파트 옥상에서 체열 망원경으로 밤에 63 빌딩을 관찰했다. 적외선 망원경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언데드로 변한 성시경이 몇 층에,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한 쟁점이었다. 빌딩은 무척 크고 견고했으며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는 언데드들에게 구석으로 몰려 잡혀 먹일 것이다. 무엇보다 건물에 대해서 좀 알아야 했다. 4층부터 53층까지는 일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었고 밤에 망원경으로 비치는 빌딩 안의 모습 속에서 체열의 감지로 보이는 사람으로 추정되는 움직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체열이 없는 언데드들은 망원경에도 감지가 되지 않았다. 빌딩의 각 사무실에서 아직 탈출하지 못하고 언데드들에게 잡혀 먹히지도 않는 사람들의 붉은 체열의 기운이 드문드문 감지가 될 뿐이었다. 각층마다 미미하게 사람들이 10명에서 5명 정도 모여서 조금씩 움직였고 아마도 그들은 빌딩 안을 점령해버린 언데드들을 피해서 곳곳에 숨어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배고픔에 허덕이고 결국 사무실 밖으로 빠져나오다 언데드들에게 전부 잡혀 먹히는 수순을 밟을 것이다. 그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인간은 극한 상황 속에서도 배가 고프다. 그리고 잠을 자야 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어 슬퍼 죽을 것 같지만 허기가 지고, 잠은 쏟아진다. 슬퍼 죽을 것 같지만 슬퍼서 죽지는 않는다. 그렇게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지하에는 언데드도, 사람도 없을 것이다. 지하에는 씨월드가 터져서 물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전기뱀장어가 깨진 수족관에서 탈출하여 전기를 마구 쏘아대고 있었다. 언데드들에게 물린 상어도 있고 펭귄도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상어에게 물어뜯긴 언데드들도 있었다. 살아있는 생명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에서 크게 벗어난 모습으로 다른 생물체가 들어오기만을 으르렁거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사람은 아니지만 바다생물이 언데드들에게 물렸다면 그것 또한 낭패다.      


 언데드들도 지하에서 터진 수족관 물로 인해 그 속에서 들어가려고 어기적거리며 다니지는 못할 것이다. 만약 물개가 언데드에게 물렸다면 역시 그것대로 골치가 아프다. 물개는 물 밖으로도 기어 나올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물은 이미 바이러스에 오염이 되어 있을 것이고 대형 수족관이 터져 넘친 물바다가 상처 난 피부에 닿기라도 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55층과 54층에는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았다. 56층부터 꼭대기까지는 간헐적으로 사람들의 모습이 감지되었다.     


 55층과 54층은 어째서 아무도 감지되지 않을까.


아파트 옥상에서 내려다보니 여의도 밤의 길거리는 그야말로 언데드들로 바다를 이루었다. 좀비가 된 성시경을 찾으러 간 팬들은 어림잡아 280명 정도는 되었다. 그들은 전부, 몽땅 여자들이었고 한데 뭉쳐서 성시경을 찾아서 63 빌딩 안으로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내가 그동안의 정보를 가지고 분석한 바로는 그렇다. 55층과 54층이 수상했다. 빌딩 한 층, 한 층에는 드문드문이지만 사무실에 각각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54층과 55층에는 누구도 감지되지 않았다. 단 한 명의 사람의 체열도 감지되지 않는다는 것이 수상했다. 주머니에 있는 초콜릿을 꺼내서 조금 씹어 먹었다. 나는 옥상의 의자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 중이었다. 하지만 생각의 끝에 가서는 아무런 결론이 나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그녀를 구해와야 한다.     


 라디오 주파수를 돌렸다. 지역별로 언데드들의 동향을 전하는 소식들이 주파수를 타고 라디오를 통해서 흘러나왔다. 서울을 비롯한 광역시는 모든 사람들이 언데드가 되었다. 주파수는 사람들에게 북쪽으로 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춘천의 남이섬으로 모이라는 것이다. 63 빌딩에서 흘려보내는 주파수에서는 성시경의 노래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너는 나의 봄이다'가 계속 흘렀다.    

 

 마침내 한 주파수에서 성시경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성시경은 완전한 언데드가 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성시경은 자각증상을 보이며 생각이 가능하다고 주파수의 누군가가 말했다. 성시경은 라디오 생방송 도중 중국에서 언데드에 물려버린 아이돌에게 다시 물렸지만 어떠한 경위를 통해서 살인 바이러스가 뇌까지 침투하지 않았다고 했다. 성시경을 살려야 한다며 성시경을 찾아간 여성 팬들은 반은 언데들로 변한 성시경과 같이 있을 것이고 성시경은 어떤 이유로 그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먹지는 않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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