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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07. 2020

좀비 성시경 8

단편소설

8.

 오늘 낮 주파수에서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남아있던 군부대가 거의 전멸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부대 안에서 좀비가 창궐하기 시작하더니 불 쑤시게 가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무기를 사용할 수 없으니 군대는 무용지물이다. 군부는 좀비들을 상대로 방어막이 점점 퇴화되어갔다. 좀비들은 군대의 화기들을 이빨로 뚫지 못했지만 탱크 속의 군인이 좀비가 되어 버리면 소용이 없었다.      


 군대를 이끌려면 최소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나의 부대를 이끌 수 있는 통솔력을 지닌 자, 두 번째는 식량 보급이 이루어져야 한다. 세 번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쟁에서 적군을 생포했을 때 적군이 마음을 돌려 아군의 편으로 귀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언데드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은 그들 자체로 무기화되어 있는 것이다. 군부에서는 좀비들을 군인화 시키려고 하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은 것이다.     


 배고픔도 모른다. 무엇보다 포기할 줄 모른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고는 전혀 없다. 눈앞에 쥐가 움직여 하수구에 쥐가 들어가면 3일 동안 지치지 않고 하수구 구멍에 머리를 박고 파낸다. 어떤 지독한 특수부대의 군인들보다 더 강인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언데드다. 잠도 자지 않는다. 보급 군복도 필요 없다. 그런 놈들을 상대로 군대는 점점 방어막이 뚫렸고 민간인을 지키는 것이 힘겨웠고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떼로 몰려드는 언데드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좀비가 가지고 있는 건 오직 '의지'뿐이다.    

 

 한국 군대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미국의 군대 역시 무너졌다. 라디오의 한 주파수에서 낮에 이런 소식을 전했다. 이제 앞으로 언데드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고 감염 정도는 점점 빠르게 번져나갈 것이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일단 물리게 되면 참을 수 없는 작열통 때문에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파수를 통해 방송은 말하고 있었다. 빨리 남이섬이나 북쪽의 추운 지방으로 피신을 하라는 말도 계속 나왔지만 대한민국은 여름이면 북쪽이나 남쪽이나 다 같이 덥고 겨울이면 다 같이 춥다.     


 나는 피신보다 그녀를 구해야 했다. 그녀를 데리고 같이 가야만 했다. 언데드로 변한 성시경은 인질로 가둬둔 여자들을 천천히 잡아먹을 것이다. 나는 그녀만 구하면 그만이다. 우바이턴 산탄총은 무척 가벼운 것이 장점인 총이다. 우바이턴의 개머리판으로 다가오는 언데드의 머리를 박살내고 나는 63 빌딩으로 달려갔다. 1층으로 오염된 씨월드에서 터져 나온 수족관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허리에 차고 있는 줄을 63 빌딩의 3층 높이로 쏘아 올렸다. 경쾌한 소리를 내면서 3층의 유리벽에 가서 차악 붙었다. 달려서 활공하는 형식으로 허리에 있는 줄을 잡아당겼다.     


 허리의 도르래가 촤르르 감기면서 공중으로 나의 몸이 붕 떴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갈 때 다시 줄을 쏘아야 한다. 그래야 6층 높이까지 다시 올라갈 수 있다. 5층의 사무실에 있던 사람이 내가 창문을 통해 올라가니 창문으로 달려와서 뭐라 소리를 쳤지만 그건 실수였다. 언데드들은 소리에 민감하다. 좀비들은 소리에 굉장한 감각을 보였다. 모든 감각이 다 소멸했지만 청각은 인간일 때보다 더 뛰어났다. 한정된 냄새에는 둔감했다. 그래서 몸에 인분을 한껏 바르고 숨을 크게 들이쉰 다음 숨을 쉬지 않고 천천히 움직인다면 옆에서도 사람의 움직임을 알아채지 못한다. 미국에서 건너온 언데드의 강령에 명시되어 있었다.     


 소리를 지른 사람이 있는 사무실에는 세 명의 남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이미 일주일 정도 굶어서 생각과 행동의 격차를 느끼지 못하는 지경에 다다랐다. 그들의 소리로 인해 복도를 서성이던 좀비들이 문을 부수고 그들의 얼굴을 물어뜯고(목을 물어뜯는 좀비들이 있고 팔다리를 물어뜯는 좀비들이 있다. 어째서 무는 곳이 다른지 알 수 없다. 언데드 화가 되고 난 이후 초반에 비해 지금 언데드들에게 물리면 사지가 다 뜯겨 나가는 경우가 많다. 물린 사람이 좀비가 되더라도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면 그저 바닥에서 으으 거리며 그 자리에서 뱅뱅 돌뿐이다) 눈알을 뜯어먹는 모습이 보였다. 사무실의 사람들은 유리창으로 내가 빌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봤다. 내가 구조해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을 구조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는 못했다.      


 63 빌딩의 유리창 밖으로 일순간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나는 줄을 잡아당겼다. 그렇게 해서 땅바닥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하늘로 가까워졌다. 54층에 그들이 전부 몰려 있었다. 나는 53층의 높이까지 줄을 타고 올라가서 그곳의 유리를 동그랗게 뚫었다. 이제 좀비라고 불리는 언데드들에게 잡히면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만다.     


 나는 이미 좀비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딱이 내 수중에 아까운 것도 없었고 버릴 것 역시 없었기 때문에 세상이 좀비 화가 된 마당에 나 혼자 인간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것도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어딘가로 전부 피신을 했지만 결국 그들은 불안함에 서로에게 총구를 겨눌 것이다. 부유층이 느끼는 불안은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는 결이 다르다. 세상이 자신들의 손아귀에서 굴러가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들은 슈퍼영웅의 모습을 좋아하는 축이었다. 영웅은 현실을 파괴하거나 변화하면 안 된다는 편에 서 있는 보수의 모습을 지닌다. 그에 비해 진보주의자들은 악당의 편이라고 해도 좋다. 악당은 어찌 되었던 현시점의 세상을 틀어버리고 바꾸려는 급진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것이 설령 허황되고 뜬금없지만, 우리 대부분이 마음속에서 바라는 희망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실현되리라는 동기부여를 가지게 만드는 것이 악당이다.      


 어쩐지 세상은 변하지 않는 모습에 환멸을 느껴버려 어딘가에서 살인 바이러스를 탄생시켰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움직이는 시체로 변했고 그들의 모습은 무서웠다. 생방송 도중 무대에 난입한 관객에게 물린 5명의 여자 아이돌 그룹 중에 한 명은 3주가 지난 지금, 입고 있는 옷이 배와 가슴에서 터져 나온 피에 엉겨 붙어서 무척 더럽고 냄새가 심하게 풍겼다. 염색한 머리는 머리카락의 범주에서 벗어났고 진하게 한 화장은 살인 바이러스와의 화학작용으로 부패가 되었고 성형으로 집어넣은 보형물과 뼈대는 전부 녹아서 여자의 얼굴에서 완전하게 벗어나 있었다. 그마저도 안티 팬들이 던진 돌에 맞아서 머리를 찌그러졌다. 누군가 엉겨 붙어있는 옷을 잡아당겨 탱탱한 가슴은 그대로 노출이 된 채로 어기적거리며 다니고 있었다. 가슴 보형물은 녹지 않았다. 좀비가 되어서 더욱 환영받지 못하는 인생이었다.        


 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귀에 증폭기를 꽂고 언데드들의 움직이는 소리가 잘 들릴 수 있도록 증폭기의 주파수대를 맞추었다. 찌리리릭 거리며 증폭기는 근방 20미터 안에 있는 소리를 잡아 주었다. 대략 20미터 안에 여섯 마리의 좀비가 있었다. 신발 바닥의 찍찍이를 떼었다. 이제 그녀를 구할 때까지 라디오를 들을 일은 없기 때문에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이어폰과 함께 돌돌 말아서 주머니에 넣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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