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9.
사무실은 폭풍이 몰아쳐 간 것처럼 어지럽혀져 있었고 퀴퀴한 냄새가 가득했다. 책상 등이 벽면으로 전부 붙어 있었고 서류나 책 같은 것들은 바닥에 마구 뒹굴고 있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서류에 발자국들이 지저분하게 찍혀 있었다. 나는 하나의 서류를 들어서 달빛에 비추어 보았다. 그것은 여자의 발자국이었다. 하이힐의 자국이다. 다른 서류에는 230미리 정도 되는 운동화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그것으로 보아 이곳에 대기를 하고 있다가 54층으로 올라간 것이 분명했다.
언데드로 변했지만 성시경은 자각을 한다. 그리고 머리가 좋다. 원래부터 머리가 좋았다. 비상하고 상황 판단이 예리했다. 언데드로 변했지만 성시경과 머리싸움을 하면 분명히 나는 이기지 못한다.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렇다고 무식한 방법을 사용할 수는 없다. 그들은 좀비다. 움직이는 시체다. 좀비보다 더 무식하게 대항하는 인간은 죽음으로 향하는 지름길을 택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사무실을 빠져나가 복도로 나왔다. 좀비들의 더러운 냄새가 복도에 가득했다. 세상에 이렇게 지독한 냄새가 존재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지독했다. 살면서 지독하게 더러운 냄새라고 맡아본 것은 오래된 재래식 화장실에서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암모니아가 독한 냄새였는데 63 빌딩 안에서 그보다 더 한 악취가 났다. 나는 오른 손등으로 코를 막고 허리를 굽히고 계단 쪽으로 조용히 움직였다.
54층으로 올랐다.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 문을 열고 저 안에 여자들이 있고 그 속에 그녀가 있다. 조심스럽게 54층의 문을 열었다. 54층은 공간이 크고 뻥 뚫려 있었다. 54층의 문을 열었을 때 여자들은 무엇에 취했는지 대부분 흐느적거리는 모습이었다. 앉아있는 여자들은 없었다. 시야에 들어온, 잡혀있는 여자들은 다 일어서 있었고 마치 몸은 리듬을 타는 듯 한들거리고 있었다. 어두워서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성시경을 찾아서 온 여자들의 눈빛은 그야말로 유토피아에 온 듯한 눈빛을 띠고 있었다.
공간에는 고요하게 성시경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여 있는 여자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 수가 생각만큼은 많지 않았다. 아마도 벌써 많은 수의 여자들을 먹어치웠는 모양이다. 주파수를 듣고 전국의 성시경 여성 팬들이 대거 몰려온 것일 테다. 이곳에서 하루에 몇 명씩 좀비 성시경의 먹이로 사라지는 것이다. 여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조용히 언데드가 된 성시경을 찾으러 갔다.
그는, 아니 좀비가 된 성시경은 관제탑 같은 곳에 서서 주파수를 통해서 끊임없이 자신의 노래를 전국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살아남은 여성 팬들은 이곳으로 불러 모으려는 심상이다. ‘심상’이라는 말을 좀비가 되어버린 성시경에 써도 되는지 알 수는 없다. 마음의 상태나 마음에서 재생된 감각 같은 것이 심상인데 성시경에게는 오로지 자각하는 능력이 남아있을 뿐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사재기를 하는 사람들처럼 먹이를 구축해놓기 위해서 하는 본능일 뿐일지도 모른다.
이곳으로 들어온 여성들은 성시경의 명령을 받은 언데드들을 통해서 성시경이 있는 방으로 안내될 것이다. 나는 그런 언데드인 성시경을 막아야 했다. 여자 친구를 구해야 한다. 성시경은 언데드로 변했지만 키가 크고, 힘이 세고, 머리가 좋다. 나는 어떻게 성시경과 맞서야 하는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