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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09. 2020

좀비 성시경[마지막]

단편소설

  10.

 우바이턴 산탄총이 있지만 성시경의 주위에는 많은 언데드들이 포위 막으로 진을 치고 있을 것이다. 깊이 있게 계획을 짜지 못하고 들어온 것에 불안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나는 쪼그려 앉은 채 조용히 이동을 하다가 그만 무엇인가 밟았다. 유난히 그 소리가 크게 실내 공간에 울려 퍼졌다. 크아아앙 하며 내가 쪼그리고 앉아있던 층에 모여있던 좀비들이 일제히 내가 있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나는 일어나서 몸을 홱 돌리는데 어떤 끔찍한 타격으로 인해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성시경 저 녀석은 좀비가 되었는데도 계속 눈을 깜빡인다. 좀비는 눈물 구멍이 막혀버려서 눈을 깜빡이지 못한다. 그래서 계속 쌓여서 눈동자의 색은 시간이 지나면서 회색에 가깝게 변해간다. 그럼에도 언데드인 성시경은 안경 너머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눈을 계속 깜빡이고 있다. 내 주위에는 이미 많은 좀비들이 에워쌌다. 하지만 그것들은 나에게 공격을 하지 않았다. 그저 옆에서 으르렁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도 자각이 있는 성시경의 명령을 따르고 있는 모양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여러 좀비들에게 붙들려있었다. 모두 여자 좀비들이었다. 좀비가 된 지 시간이 좀 지난 여자들. 이미 몸 구석구석 곰팡이가 점령했고 썩어 들어가고 있어서 냄새가 지독했다. 치아가 전부 빠져나가 버린 좀비도 있었다. 모든 좀비들이 그렇지만 머리카락만이 탄소성분이라 그대로 붙어있었다. 하지만 머리카락을 머리카락이라고 부를 수 없었으며 옷이 고름과 함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처럼 보이는 검은 액에 뒤엉켜 끈적끈적하게 말라붙어 있었고 한쪽 팔이 없는 여자 좀비들도 많았다. 그들은 대부분 성시경을 찾으러 왔다가 차례대로 언데드가 되었다.     


 나는 양쪽 다리와 양쪽 팔 모두 여자 좀비들에게 붙들려있었다. 이것들은 입을 크게 벌리고 나를 위협했지만 아직 잡아먹으려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자각이 있는 좀비가 된 성시경의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것들에게 잡혀 성시경 좀비가 있는 곳으로 끌려갔다. 온통 해초가 썩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좀비가 된 성시경은 여자 친구인 그녀를 뒤에서 잡고 있었다. 그녀는 어쩐 일인지 기이한 표정을 하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눈은 몹시 슬퍼 보였는데 동시에 내면의 무엇인가가 빠져나가 버린 모습처럼 보였다. 나의 착각일지도 몰랐지만 슬픔 속에는 체념이 강하게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의 뒤로 보이는, 좀비가 된 성시경의 입술이 올라갔다.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럴 수는 없었다. 좀비가 웃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어디의 강령에도, 구울의 법칙과 언데드에 관해서 활자화되어 있는 그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아무리 자각을 통해서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뇌에서 물질이 흘러나오지 않는데 감정을 표현하지는 못한다. 눈은 여전히 좀비가 되기 전처럼 깜빡이고 있다. 눈물 구멍이 막혀 버려서 온통 회색을 발하고 있었고 말라비틀어져 먼지가 잔뜩 껴있지만 여전히 눈을 자주 깜빡였다.     


 나는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전혀 꼼짝할 수 없었다. 좀비들은 밀어내는 힘은 없지만 꽉 쥐는 힘은 대단했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은 꽉 쥐고 있는 좀비들의 손가락에 의해 찢겼다. 힘의 배분이 되지 않는 좀비들은 자각을 하는 성시경의 명령이 사라지면 언제든 나를 잡아먹을 듯 30센티미터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얼굴이 썩어버린 좀비가 된 성시경에 잡혀 있는 그녀를 보니 나는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그녀와 바닷가에 갔을 때 우리는 아이팟으로 성시경의 ‘아니면서’를 조금 소리를 내어 부르면서 해변을 걸었다. 여름이 끝나가는 계절로, 바람이 시원하는 부는 날이었다. 우리는 손을 잡았고 이어폰을 귀에 한쪽씩 꽂혀있었다. 행복했다.     


 ‘잠이 깨고 나면 그 말을 후회할 거면서 내가 한 걸음 다가서면 뒷걸음칠 거면서 왜 또 날 잊었나요. 왜 또 내 마음 흔들어 놓나요? 그대 사랑은 이제 내가 아니면서’

 

 우리는 좋았다. 바닷바람이 좋았고 바람을 맞으며 걷는 것이 좋았다. 손으로 그녀는 행복하다는 감정을 실어 보냈다. 우리는 1킬로미터에 달하는 해변을 몇 번이나 왕복해서 걸었다. 성시경의 노래를 끊임없이 들었다. ‘10월이 눈이 내리면’이 흘렀다. 우리는 고요하게 거닐며 고요하게 따라 불렀다.     


 ‘설레는 맘에 ‘사랑해요’ 그대 몰래 속삭이기도 했죠.

 텅 빈 내 마음속 그대 남기고 간 기억 너무 많은 걸요.

 눈을 감고 기도하면 이뤄질까요.

 온 세상 하얗게 덥여와 그려온 순간 지금이라도

 그대 떠나버린 빈자리만 시린 겨울이네요.

 보이지 않게 눈이 오나요. 지금 나의 볼에 이렇게 녹아있죠’


 ‘10월에 눈이 내리면’은 기도하듯 부르면 10월에 곧 눈이 폴폴 내릴 것만 같다는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성시경의 노래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했다. 그녀와 전화통화를 할 때 가끔 회사일로 그녀가 힘겨운 날이면 그녀는 나에게 성시경의 노래를 하나 불러 달라고 했다.      


 “전화상으로 정말 부르기 어려운 노래가 성시경 노래야.”


 “괜찮아요. 당신은 꽤 부르잖아요.”


 “그렇지만.”


 “저 오늘 회사에서 몹시 힘들었어요. 불러줘요. 당신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다 잊어버릴 것 같아요.”


 나는 성시경의 ‘오 나의 여신님’을 헛기침 두 번을 하고 불렀다.

 

 ‘만나기 직전까지 운동을 한 거래요’ 이 부분은 약간 콧소리로 불러야 한다. 그녀가 수화기 너머로 웃는다. 노래를 부를 때는 장소를 막론하고 진지하게 불러야 한다.

 

 ‘급하게 나오느라 정신없이 옷 만 걸친 거래요’

 ‘햇 살 아 래 웃고 있느은 오 그대는, 가볍게 팔짱 끼며 폴짝 되는 오 그대는 나의 여신, 어디 달까 물어보면 뭘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대뜸 아 무 거 나 함 께 해 서 좋다는 오 나의 여신님’ 이다음이 중요하다.


 ‘우후후’


수화기 너머로 그녀의 웃음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2절을 부른다. 2절의 마지막 부분에 ‘정말 사 랑 한 단 말 은 너 무 작지만 사랑해요. 언제나 이렇게 언제나 둘이 매일매일 매일 그대와 아’ 피아노가 흘러나오는 이 부분에서 나는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나두요,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노래를 혼신을 다해 수화기를 통해서 불렀고 그녀는 까르르 웃다가 나중에는 울먹거리며 고맙다고 했다. 그녀는 나와 만나게 된 성시경의 노래에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저 유행가일 뿐이고 단지 노래일 뿐인데 성시경이 부르는 노래를 통해서 기쁨을 찾고 행복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은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 그녀가 좀비가 된 성시경에게 붙잡혀 약에 취한 것 같은 눈빛으로 미동 없는 모습은 나를 무력감에 빠지게 만들었다.     


 ‘아니면서’의 ‘그대 사랑은 이제 내가 아니면서' 이 부분이 실내에 고요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나를 잡고 있는 언데드들에게 소리를 쳤다. 냄새가 지독하게 번졌다. 힘이 빠졌다. 무력해졌고 울고 싶었다.     


 몸에 부착되어 있던 밧줄과 연결고리, 도르래가 전부 하나도 없었다. 우바이턴 산탄총과 칼도, 어떠한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은 하나도 없었다. 가망이 없다는 말이다. 맞은편에서 좀비 성시경에게 잡혀있는 그녀는 여전히 저항의 기미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고개는 옆으로 젖혀 있었고 체념의 표정을 보이며 초점 없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슬펐다. 슬픔이 몸을 적셨다. 어째서 이토록 슬픈 것일까.


 이미 좀비들에게 붙들린 내 팔은 그것들의 우악스러운 손가락 힘으로 짓눌린 곳에서 피가 터져 흐르기 시작했다. 그것들의 상처 난 손에서 찐득하게 흐르는 티바이러스의 검은 액이 피가 터진 곳을 타고 나의 몸으로 들어오면 나도 이제 곧 언데드가 된다. 작열통을 느끼며 죽어가려고 할 때 좀비들이 달려들어서 내 팔과 다리와 얼굴을 물어뜯어 버릴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어찌 되는 것에 대한 의식은 멀리 있었다. 저 맞은편에 좀비 성시경에 붙잡혀 있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그냥 허물어지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좀비가 된 성시경은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 헤로인을 투과한 것일까. 아니다 그런 것 따위는 좀비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아아 슬픔이 몸을 관통했다.   

  

 그녀의 몸은 물먹은 솜처럼 힘이 없어 보였다. 좀비들에게 찢긴 팔뚝으로 흘러나오는 피가 그것들의 썩고 허물어진 손톱에서 나오는 끈적거리는 검은 진물과 함께 섞였다. 나는 내 속의 마음이 허물어지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고개를 들었다. 비린내가 더 심하게 올라왔고 더 많은 좀비들이 내 몸을 꽉 붙들고 있었다. 좀비가 된 성시경은 머리 스타일도 그대로였다. 고개를 까닥거려 머리를 쓸어 넘겼다. 좀비가 되어도 자기만의 영역과 스타일을 고수하는 성시경을 보니 비참한 기분만 들었다.     


 언데드 바이러스는 이 세상을 퍼스트 아포칼립스로 만들었다. 언데드의 피 한 방울이면 인간은 무력하게 언데드로 변하고 만다. 이 극한의 감염력에 그저 하찮은 존재인 것이 인간이었다. 하지만 성시경이 이렇게 여자들을 불러들일 수 있었던 건 중간에 목숨을 구걸하기 위한 인간이 있었다. 여자들을 좀비 성시경에게 넘긴 것이다. 권력이나 자본이 있는 자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을 구하러 온다거나 타인을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이 얼마나 야만적으로 타락할 수 있는지, 인간이 좀비보다 더 좀비 같을 수 있는지 그 폭력적인 모습에 나는 좀비처럼 분노에 차올랐다.     


 몸을 비틀었다. 몸을 비틀수록 더러운 비린내는 엄청나게 주위에서 풍겼고 팔다리는 더욱 꼼짝할 수 없었다. 팔은 감각이 사라지고 성시경에게 잡혀 있는 그녀는 나를 보고 있었지만 정확하게는 나를 보는지 알 수 없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언데드가 된 성시경이 그녀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내가 소리를 지르니 나를 에워싸고 있던 좀비들이 일제히 크아아악하며 짖기 시작했다. 팔이 찢겨 나가는 고통이 느껴졌다. 그때, 좀비가 된 성시경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그녀의 목을 물어뜯어 버렸다.


 으아악. 으악.     


 “당신, 괜찮아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 왔어요. 무슨 잠꼬대를 그렇게 심하게 하면서 잠을 자요. 운전하면서 놀랐잖아요. 어서 일어나요. 우리 늦었어요. 이제 콘서트가 바로 시작을 해요. 스탠딩이니까 빨리 들어가야 하는데. 당신 그 책 손에서 좀 놔둬요.”


 나는 손에 ‘세계대전 Z’를 들고 있었고 그녀의 차, 조수석에 종이처럼 구겨져 잠들어 있었다. 모든 것이 꿈이란 말인가. 그 전경이 전부 책과 영화에서 봤던 모습들이란 말인가. 한편으로는 다행이지만 한 편으로는 마음이 이상했다. 어째서 그럴까.     


 나는 갑자기 성시겨의 콘서트가 싫어졌고 노래가 별로라고 느껴졌다. 그래, 언제까지 남녀 사랑과 헤어짐에 대해서 부를 수 있는지 보자. 발라드 가수? 흥. 발라드 가수라는 것이 존재하는 곳은 대한민국뿐이다. 나는 비록 꿈이지만 마지막 장면이 떠올라서 시큰둥해졌다. 콘서트장 밖에서는 여자들이 모여 ‘눈물편지’를 부르고 있었다.


 ‘세상에 가장 좋은 그림 하날 알아요.

 가끔 들러 눈으로 만질 수 있는

 맘으로만 안아줄 수 있는 그대라서

 웃음으로 감싸서 눈물 흘리는 나죠’


 이 부분을 여성 팬들이 부를 때 그녀가 따라 불렀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행복함이 가득 묻어났다. 그녀가 성시경의 노래를 좋아한다. 그녀가 좋아하면 그만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우리는 언제나처럼 손을 잡고 성시경의 콘서트 장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성시경이 좀비 분장으로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주는 날이다.


[끝]



중간에 한 단락이 빠져버렸는데 눈치 못 챘죠? ㅋㅋ

아무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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