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3일째
230.
공원관리인들은 같은 봉급에 여름밤이면 몇 배는 힘들게 일을 했다. 그들의 삶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흘렀다. 여름과 겨울의 차이가 컸다. 고된 일거리가 많은 여름밤이 그들 입장에서 좋은 것인지 편안하게 참호 속에서 쉬며 가끔 순찰을 돌면 되는 겨울밤이 좋은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왜인지는 모르나 북적되고 시끄럽고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여름이 겨울보다 사건사고가 덜했다. 겨울은 그저 고요하고 가라앉아있고 칼바람 때문에 찾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하지만 생활고나 처지의 비관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는 이들은 모두 겨울의 이곳을 찾았다. 새벽 동안 살을 찌르는 추위를 견디고 있으면 어느새 바다에 누군가 몸을 던지는 일을 관리인들은 일일이 신경 쓸 수 없었다. 순찰을 돌고 와서 추위와 싸워가며 깜빡 잠이 든 사이에 누군가가 크레바스 같은 테트라포드 사이에 몸을 던져 바다에 빠지고 만다. 사고가 일어나면 경위서를 작성하고 관리인은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고요한 겨울밤이 더욱 애타는 계절이었다. 그들은 겨울이 도래하면 마음이 날카로워졌으며 눈빛도 달라졌다. 공원에서 무더위를 피해 여름밤을 즐기던 사람들이 대부분 내려갔다. 산책을 하는 사람들도 드물었다. 몇몇만이 해무가 만들어 놓은 습기를 머금고 달리고 있었다.
장군이 주인과 장군이와 마동은 등대 밑까지 왔다. 등대는 오랜 세월의 모습을 죽 지켜오다가 몇 해 전에 새 단장을 했다. 더 크고 화려해졌고 세련되었다. 등대의 소리와 불빛도 새롭게 탈바꿈했다. 등대 안은 첨단 기술력으로 무장을 했고 이곳의 특성상 공원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지하에는 세미나실을 마련해서 언제나 사용할 수 있도록 일반인들에게도 열어 두었다. 세미나실에는 빔으로 빛을 쏘아 회의가 가능한 프로젝트를 구비해두었고 간단하게 준비해온 식사를 조리할 수 있는 작은 주방도 있었다.
새 단장한 등대는 빛을 360도 돌아가며 그린라이트를 발사할 수 있지만 송림 쪽으로는 육지이기 때문에 등대의 빛이 360도 돌아가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직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등대는 공원개발에 힘입어 감성 어린 등대에서 벗어나 로봇의 얼굴 형상을 하고 있어서 마동은 시큰둥했다. 등대 근처도 공원처럼 조성이 되어 버렸고 등대의 입구에는 큰 마당이 있었지만 등대의 관계자들 것으로 보이는 자동차들이 마당에 주차되어 있었다.
차들은 대부분 3000CC 이상 고급 승용차였고 등대 주위의 바닥은 이전의 흙바닥에서 붉은 벽돌이 깔려 길바닥을 만들었고 인공 잔디가 곳곳에 조성되어 있어서 송림이 가지는 자연주의에서 벗어난 풍경이었다. 등대의 바로 밑은 바다로 이어졌으며 그 밑에서는 바다에서 그날 잡은 해산물을 관광객들에게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지역 해녀들이 있었다. 오늘 해무는 그런 모든 풍경을 잠식해 버렸다.
해무는 큰 바다와 송림을 침묵 속으로 몰아넣었고 인간들을 송림에서 몰아내고 있었다. 송림으로 오기 전 거쳐 온 이곳 해수욕장은 해운대처럼 북적이지 않았다. 메트로폴리탄의 외곽지역의 한적한 해수욕장의 해안은 타지에서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들과 타지로 나가지 못하는 이곳 사람들이 찾는 해수욕장이라 북적인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명동의 낮처럼 인파로 터져 나가거나 청계천의 새벽처럼 한산 해지는 법도 없었다. 밤낮으로 늘 비슷한 사람들이 꾸준하게 몰려 들어와 있었다. 그것이 여기 해수욕장이 가지는 특성이었다. 이 모든 풍경마저도 해무가 온통 삼켜 버렸다.
마동은 장군이의 도자기 색 눈빛을 쳐다보았다. 장군이의 눈빛은 등대로 올라오기 전보다 긴장을 하고 있었다. 마동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장군이는 분명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장군이의 주인은 마동에게 장군이의 목줄을 건네주고는 등대에 볼일이 있으니 들어갔다가 나오겠다며 등대 안으로 사라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