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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로] 지지대고개 - 해우재 - 화서역 (2)

모락산 길과 서호천 길을 걷다

                                                                                                                                                                                  


골사그네자리에 있는 교회 건물입니다. 
골사그네라는 지명은 아래 설명에 유추컨데 골짜기에 있는 모래내 라는 뜻일 것같습니다. 
동네 이름이 하도 특이해서 검색해보았더니 이런 뜻이었네요.

사그네 지명 유래 : 
사그내 [사근천(沙斤川), 사천, 모래내]
 
지금 의왕시 고천동이 그때 이름 붙여진 신동리이다. 그 신동리 안에 가장 큰 마을이 ‘사그내’였다. 지금 고천초등학교, 전 의왕면사무소를 중심으로 한 동네였다.
지금 고천동에는 골짜기에 있는 우물가에 만들어진 동네라 해서 골우물 [고정(古井)]이란 마을이 지지대 쪽으로 있었고, 벌사그내 [평사천(坪沙川)]란 동네가 있었는데, 이 두 동네와 고고리, 내곡리를 병합하여 고천리(古川里)가 되었다는 것이다.
먼저 있었던 (벌)사그내를 나중에 그대로 음역해서 사근천(沙斤川), [평(坪)사천(沙川)]이 되었을 것이다. 벌사그네는 골사그네에 대해서 벌(들)에 있는 사그내란 뜻인데 벌사그내가 원래 사그내이다.
우리나라 어디서나 대개 우리말 마을이름이 먼저 있었고, 나중에 그것을 한자 이름으로 바꾼 경우가 많았다. ‘사그내→사근천(沙斤川)’도 그와 같은 선후관계로 된 것이다. 지금 고천동의 사그내란 지명이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해동지도」, 「춘향전」 등에도 나타난 것으로 볼 때 사그내와 그 음역 사근천이 적어도 조선 중기 이후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사그내’란 어떤 뜻일까?
우리나라 작은 하천이 대개 그렇듯이 여름 다우기에는 범람하는 내가 되지만 겨울철에는 물이 ‘말라서(삭아서?)’ 개울 바닥이나, 냇가의 모래사장이 넓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렇게 된 마른(삭은)내가 ‘마른내>삭은내>사그내’로 변화되었을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마을이름에 ‘모래내’가 많은데, 그것을 한자로 고칠 때도 사천(沙川), 사근천(沙斤川)이라 하였다.
즉 사천, 특히 사근천은 ‘마른내’ [전북 전주시의 건산천(乾山川)], 냇물이 모래 밑으로 흘러서 물이 보이지 않는 ‘모래내’(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서 유래되었고, 서울 성동구의 사근동은 신라 시대에 세워진 ‘사근사(沙斤寺)’에서 유래하였다는데, 이 절은 매우 낡아 ‘삭은 절’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삭은(나무) 다리’가 놓여 진 내라 해서 ‘삭은내’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가평군 설악면에 사그내, 안성시 죽산면, 서산시 수석동에 사근다리 등의 지명이 있다.

출처: http://anyangbank.tistory.com/2317 [안양지역시민연대/안양지역정보뱅크]

사그네 동네 설명 : 
지지대 고개 아래에 자리잡은 마을로 삼태기처럼 오목한 곳에 있다. 이곳은 산세가 혐악하고 산림이 우거져 맹수의 피해가 극심해 사람들이 안주하기를 꺼려했다고 한다. 전주이씨·마씨·경주배씨등이 처음으로 세거한 이 마을은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왕륜면 곡사동이라 불렀다. 1978년 취락구조 개선 사업으로 마을이 새롭게 단장되었으며,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재임시에는 육림의 날 및 식목일 행사를 이곳에서 거행하기도 하였다.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10월에 길일을 택해서 지지대 고개 마루 동편 서낭당에서 마을의 안정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내 왔다. 그러다가 1970년대 경수산업도로 확장공사로 인해 서낭당이 철거되면서부터 중단되고 있다.
 (출처 : https://tip.daum.net/question/99033)





골사그네를 지나 지지대고개를 넘어가려니 맞은 편 단풍이 보입니다.
이제 막 단풍들기 시작했습니다.
지지대 고개의 이름은 정조대왕이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하고 돌아가는 길에 볼 수있는 마지막 고개라서 천천히 가자고 해서 지지대 고개랍니다. 


지지대 고개의 꼭대기에는 수원시로 들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모형 성곽이 이렇게 서있습니다.




지지대고개에 세워진 지지대비입니다. 
비석이 총탄을 많이 받은 흔적이 보입니다.
6.25전쟁 당시에는 이 비석에 이런 누각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비석을 보는 순간 아직도 분단되어 있는 우리 나라의 상황이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정조대왕이 저 총탄자국을 보시면 무슨 생각을 하실까요?
본인이 조금 더 정치를 잘 했으면 후손들이 저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를 하실까요?
아니면 세상을 잘못이끈 후손들을 탓할까요?
우리 나라의 역사에서 20세기는 변화가 많은 시기입니다.
역사상 갑자기 남의 나라에 침략당하고, 동족끼리 싸우다가, 전 세계에서 가장 못 살던 나라가, 또 가장 잘 사는 나라의 한 축으로 들어갔으니까요.

한반도의 역사는 전반적으로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은 조선에 대해서 우리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누군가가 나서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지대비 : 
지지대비는 조선 정조의 지극한 효성을 추모하기 위해 순조 7년(1807) 화성 어사 신현의 건의로 세워진 비이다.
조선 정조는 생부인 사도세자 능인 화성의 현륭원에 참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이 고개만 넘어서면 멀리서나마 능을 볼 수 없게 되므로, 으레 이곳에서 행차를 멈추었다고 한다. 능을 뒤돌아보며 이곳을 떠나기를 아쉬워하였기 때문에 이곳에 이르면 왕의 행차가 느릿느릿하였다고 하여 한자의 느릴지(遲)자 두 자를 붙여 지지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BBC(경제경영서 저자 모임)의 김민주회장입니다.
전 자주 이 분을 볼 때마다 시간에 대한 사기라고 합니다.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데 더 어려보여요.
사기도 이런 사기가 없습니다.




대소인을 막론하고 말에서 내렸거라!
호령소리가 들리시나요?
하마비 (下馬碑)입니다. 
조선 시대의 궁가(宮家)·종묘(宗廟)·문묘(文廟) 등의 앞에 세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비석은 '사또 이하는 내려라' 또는 '정승이하는 내려라'하는 식으로 세워진 위치에 따라 차이를 두었다고 합니다.





지지대고개 건너편에는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가 있습니다.
바다 건너 멀리서 까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와서 싸웠다는 기념비이지요.
지구상에서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사회주의를 많이 밀어냈습니다.
체제상으로는 여러 모로 우세하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사상, 종교 때문에 참 많은 전쟁을 했습니다. 
굳이 그래야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고맙운 것은 맞습니다.



삼남길을 제3길을 다 걸으니 지지대고개 휴게소가 나타납니다.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화장실도 가야겠고.
잠시 쉽니다. 
커피에 달콤한 과자 하나를 가지고 둘이 나눠먹습니다. 
원래 오늘의 목적지는 여기까지로 할까 했는데, 다음에 와서 여기서부터 걷기가 교통편이 참 애매합니다. 
내친 김에 제4길, 서호천 길도 걷기로 합니다.



참 재미있는 문화센터입니다.
해우재 문화재센터.
해우재는 절간에 가면 화장실을 해우소라고 하지요.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하기사 똥누고 나올 때처럼 개운한 일이 없지요.
아, 변비라고요?
그래도 못 누다 누시면 시원하잖아요?





앗~
내 거하고 똑같이 생겼다.
색갈도 그렇고, 모양도 그렇고. .....
아니, 이 분들이 내 똥모양을 어떻게 알았지?





마주보아도 되지만, 거울로 보아도 좋습니다.
사람은 자주 거울로 자기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전 거울보고 놀란 적이 있어요.
조금 살찐 줄 알았더니 옷 벗고 보니 엄청 뚱뚱해요.
시상에 돼지도 그런 돼지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전 그 거울 속의 돼지를 보고 결심했습니다.

.
.
.
.
그래, 저 모습도 나야~
변함없이 사랑해주자~
열심히 먹이자~



해우재문화센터에서 나와 서호천으로 향했습니다.
어둑해지기는 했어도 기왕에 온 김에 어디서 밥은 먹고 가자며 식당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마땅한 곳이 없더군요.
그래서 어영부영 걷다보니 서호천까지 왔습니다.
'괴목정교 이야기' 안내문이 있습니다.
저런 걸 뭐라고 해야하나요?
이정표는 아니고, 푯말이라고 하기에는 뭘 나타내는 것도 아니고,
설명문이라고 하자니 웬지 어색하고 . . . . . 
흠~ 국어 실력을 더 늘려야 겠습니다.




서호천에서

졸졸졸  냇물이 콸콸콸 흐른다,
물길을 달리하니 물소리도 다르다.
물길걷는 나그네는 술소리찾아 서두른다.




마침 수원갈비 안내판이 나왔습니다.
아 그럼 근처에 갈비집이 있나보다 했더니, 
웬걸 공장 담벼락만 길게 서있고, 인적마저 드뭅니다.
왜 저런 표지판이 여기 있지?
세상 참 알아가도 모를 일이 많아요.



SK 선경 공장입니다.
SK그룹의 섬유공장인데, SK그룹 최초의 공장이라고 합니다.
좋은 회사입니다.
한 때는 부러워했기도 하고요.
직원들에게 잘 해주지요.
앞으로도 잘 되기를 바랍니다.




마무리는 역시 먹자!
이미 날은 어둡고, 배는 고푸고, 소주는 마렵고.....
근처 주모 정겨운 집을 찾으려니 
초가집의 주모는 안 보이고, 유리 창안의 고기집만 보입니다.
적당한 2층의 고깃집에 들어가서 가장 무난한 삼겹살에 소주로 마무리!
아, 오해하지는 마세요ㅡ 저 주당은 아닙니다.
술마시는 분위기가 좋아 마실 뿐입니다.

그리고 화서역까지 또 걸었습니다.

다음에는 삼남로 제 5길을 걷고 올리겠습니다.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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