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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길] 여계산 - 궐리사 - 오산역

독산성길과 오나리길


독산성을 내려와 큰 길을 건너니 동탄 어린이 천문대가 보입니다.



호기심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아무도 반기는 사람도 없거니와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여주는 사람도 없네요.
아마 지나가는 어린이 아닌 과객들은 서비스 대상이 아니라서 그런 모양입니다. 한 밤중에 오면 별이나 볼라나, 낮에는 그저 그렇습니다.



애초에는 천문대에서 커피를 마시려 했지만 그런 시설이 없어 나왔더니,
바로 옆에 별사랑 스타러브 star love cafe가 있습니다.
1층을 기웃거리니 안에 주인장인 듯한 아주머니 포스의 한 분이 계십니다.
들어갔더니 아주 친절하게 맞이해주더군요. 
커피를 주문하고 2층으로 올랐습니다. 내부도 널찍하고 조용하고 쉬기 좋습니다. 곧 커피가 나왔는데 볶은 검은 콩과 같이 나옵니다. 고소하고 맛있었습니다. 덕분에 잘 쉬었습니다.


별사랑 카페를 나오니 고속도로 밑으로 지나가는 굴다리가 나옵니다.



여계산이랍니다.



아래로는 고속도록 오산휴게소가 보입니다.
수도권 제2순환 고속도로 위를 우리가 가고 있는 겁니다.



호젓한 여계산을 걷다보니 어느 새 고인돌 공원까지 왔습니다.
지석묘가 여기 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저 돌은 그냥 돌일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저 돌이 수만년 전에 죽은 시체 위에 얹어 놓은 돌인 줄 알아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저 돌이 생김으로써 사람이 죽어서 장례를 치루는 것이 영혼을 인정하는 것이고, 내세를 두려워하는 것이고, 그래서 사람들이 착하게 살게 되었다는 의미를 부여했을까요?
참,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게 맞는 말입니다.

오산금암리지석묘군(烏山錦岩里支石墓群) : 
경기도기념물 제112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오산시 금암동 산53번지이다.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탁자식과,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고인돌 공원입니다.
지석묘와 고인돌이 많이 나와서 공원을 조성한 듯합니다.
고인돌은 고조선시대와 겹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입니다. 한반도 일대에 분포하는 약 3만기의 고인돌은 전세계 고인돌의 40%에 이른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어째서 그 당신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은 죽은 사람위에 저리도 무거운 돌을 얹어 놓았을까요? 



고인돌 공원의 한 켠에는 갈대 숲이 있습니다.
일부러 갈대 숲을 만들었나 봅니다. 울창하고 자라기도 사람 키보다 더 자랐습니다. 
저기 저 분도 아마 갈대 숲의 추억이 있지 않을까요?
저 갈대 한 가운데 비밀스러운 자리를 만들어 놓으면 참 아늑하고 편할 것같습니다.


은빛개울공원입니다.
공원 호수에 비치는 아파트의 모습니다. 깔끔합니다.
물도 조용하여 마치 거울같기에 사진을 찍어봅니다.



오산시~
고향이 예산이라 장항선타고 오산을 지나가보기는 많이 했지만, 
이 번처럼 걸으며 온 몸으로 오산을 겪어보기는 처음입니다. 
그야말로 반백년만에 처음있는 역사적인 일이지요.
그런데 오산이라는 도시는 걸을 만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독산성에서 보는 도시의 모습은 드넓은 들에 펼쳐진 시원한 느낌을 주는 도시였습니다.



좀 늦게 도착했더니 문 닫을 시간이라고 일하시는 분들이 나오십니다.
하는 수 없이 대문 만 보고 사진찍습니다. 
조선 전기 문신이자 공자의 64대 손인 공서린(1483∼1541) 선생이 후학지도를 위해 세운 곳으로 지금은 공자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랍니다.
전 공자는 이제 한국으로 귀화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부처나 예수님처럼 자국에서는 버림받고 고려. 조선 땅에서 그의 사상이 꽃 피웠으니까요. 요즘 중국 사람들은 2천년동안 못 본척하다가 이제사 그를 다시 쳐다보기 시작하나 봅니다. 불쌍한 공자님~

궐리사 : 
정조 17년(1792) 이곳을 공자가 살던 노나라의 마을 이름을 따라 궐리로 바꾸고 사당을 세운 후 ‘궐리사’라고 했다.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00년 다시 세우고 1981년 강당을 세웠으며, 1993년 중국 산동성에서 기증 받은 공자의 석고상을 모셨다.





오산 시내입니다.
궐리사를 나오니 바로 오산법원이 있는 거리로 연결됩니다.



오산천으로 왔습니다.
아직도 코스모스가 피어있습니다.
한들한들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립니다.




앗~
옛날에는 오산까지 바닷배가 들어왔다네요
이 좁은 개천을 통해서 바닷배가 새우젓이니 물고기같은 바다 물산을 싣고 들어왔다는 게 놀랍습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아니라, 벽해상전입니다.
이렇게 옛 길을 걸으니 우리 땅의 구석 구석에 스며들어 있는 온 갖 이야기들을 온 몸으로 체험합니다.
아직까지는 그냥 걷지만, 이 체험이 언젠가는 어떤 형식으로든 글과 사진으로 남겨질 것을 예감합니다.


오산 천에 오리들입니다.
많지 않은 무리들이 물 위에서 쉬고 있습니다.
일하고 있습니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들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걷다보니 어느 새 오산천이 어둑해졌습니다.
요 시간이 사람을 아주 센티멘탈하게 만듭니다.
센치하다고 하나요?
웬지 쓸쓸하고 우울하고 집에 돌아가야 할 것같고 친구만나야 할 것같고 어디론가 가야할 것같고 시를 읊어야 할 것같고 ......



밤이 되니 서둘러 집에 가고 싶어집니다.
오던 길을 조금 되돌아서 오산역으로 향했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같이 걷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고 별 이야기가 있을리가 없지요.
같이 걸으머 온전히 우리 둘만의  대화에 집중할 수있는시간을 갖는 즐거움 유익함을 만끽했다고 할까요.

목도 축이고 배도 채우고 ......




오산 역전 앞의 오산불고기 집입니다.
맛도 좋고 가격도 착하고 주인장 친절하고 ....



정신이 알딸딸합니다.

세상도 저같은지 흔들거립니다.

어두운 들판에 쏜 살같이 날라가는 도시의 네온사인과

흔들거리는 차창에 비친 우리 모습이 마치 신기루 같아 보입니다. 

            

                                   (김민주, 홍재화 2018년 11월 1일 삼남길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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