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경기 옛길 삼남길] 병점역 - 독산성길

노래 가사를 빌려서 써봤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2018년하고 11월 1일 화창한 가을 날입니다.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그 날이 왔습니다. 
지난 번까지의 길이 늘 흥미롭기에 오늘도 호기롭게 독산성길을 걷기 위해 병점역에서 우리는 모였습니다.

아하, 그런데 오늘은 좀 달랐습니다. 
세마교로 가는 길이 막연했습니다.
애초에는 병점역에서 25번을 타고 세마교까지 가서 시작하려 했는데,
도무지 25번 타는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병점역 후문으로 와서 80번 버스를 타고 세마교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80번 버스가 안 오는 것입니다.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기다릴까, 그냥 걸어갈까?
20여분은 족히 기다렸는데, 이제와서 세마교까지 걸어가자니 곧 버스가 올 듯합니다. 그럼 억울하지요.
그런데 버스의 노선표를 보니 배차시간이 무려 60-120분입니다. 
그럼 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을 기다릴 확률이 높은 거지요.
결국 버스를 타고 한신대까지 가서 그 다음부터 세마교까지 걷기로 했습니다.




한신대 앞에 내렸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나?
또 지도를 봅니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
나그네 흐를 길은  어디메뇨~
타관땅 밟아서돈지 두 달 넘어 석 달째~
어디로 흘러거랴 흘러 갈소냐



이제 길을 찾았습니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 속으로 왔다가 빈 속으로 가는가~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아직 많이 남았기에 빈 속을 채워야 했습니다.
첫 길을 헤매느라 나그네 길을 걷기도 전에 배꼽 시계는 정오에 가까웠습니다. 
근처 생오겹살 생선구이하는 진현가든에 가정식 백반으로 얼큰 시원하게 한 끼 때웠습니다.
맛이 있습디다.
          (백년설 '나그네 설움'에서)




삼천리 금수강산 너도나도 유람하세 
구경못한 사람일랑 후회말고 
팔도강산 모두같이 구경가세 
자 ~ 슬슬 한번 떠나가 볼까요? 
       (서수남 하청일 '팔도유람'에서)



자~ 슬슬 가볼까요?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 듯 떠돌다 가는 길이지만
그래도 어디로 가야할 줄은 압니다.
다만 둘러가기도 하고, 곧장 가기도 할 뿐입니다.
                            (최희준 인생은 '나그네길'에서)






이리가면 세마교요 저리가면 독산성길,
이리갈까 저리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세갈래길 삼거리에 비가내린다.

삼 거리에서 이 번 독산성 길의 시작인 세마교를 들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바로 독산성 길을 오르기로 작정했습니다.

      (김상진 '이정표 없는 거리'에서)





미련없이 떨어지는 노란 낙엽 속에
아련히 떠오르는 우리의 이야기를 
별마다 새겨보는 별마다 새겨보는
아아 아아 우리는 독산성  나그네~
                      (최희준의 '진고개 신사'에서)
   


우리는 흘러갑니다.
하~아 신선교를 넘어서~.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 마음을 싣고

젊음은 갈 곳을 모르는 채 
이 산을 맴돌다가
새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만 갑니다 

이 다리 건너서 한 발 디디면 
보지 못한 풍경이 나타날 거에요
워, 허 허, 뚜룻뚜룻 뚜~~... 하!
        (혜은이의 '제3한강교'에서)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셔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저기 가는 저 사람 조심하셔요
어물어물하다가는 큰일납니다

따르릉 따르릉 이 자전거는
독산성 길을 어렵게 아주 어렵게
꼬부랑 꼬부랑 고개를 넘어
비탈길로 헥헥헥대며 타고 온다오

어허 수고 많으십니다. 
인생 어렵게 사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요~

     (동요 '자전거'에서)





드디어 독산성의 정상에 올랐습니다.
보적사가 있고, 산성이 있고, 세마대가 있습니다.
이 산성에서는 많은 일들이 있었고 아직도 많은 일들을 벌이고 있습니다.
매년 이 곳에서 오산시는 독산문화제를 열고 있습니다. 

오산 독산성  : 
삼국시대에 처음으로 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권율장군이 쌀로 말을 씻기는 일명 ‘세마병법’의 지혜로 왜군을 물리쳤던 기록이 남아 있는 관방유적으로서, 그 역사·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40호로 지정됐다.  오산시는 사적 제140호인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의 문화재구역 37,985㎡가 최근 문화재청으로부터 추가로 지정됐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이에 따라 문화재구역은 기존의 37,269㎡를 포함하여 총 75,254㎡로 확대됐다.





[독산산성에 올라 ]
 
                    고은
 
오산 독산산성에 올라
달 떠오르는 밤 이거라
오산 독산산성에 올라
첫 아침햇살 맞이하는 아침이거라
 
내 조국의 배꼽자리인 여기
 
독산산성에 올라
몇 십년의 미움 보내고
몇 백년의 원수 불러다
이내 더운 가슴으로 얼싸안거라
 
내 자손의 내일이거라
내 조상의 어제이거라
 
오라
오라 
다 와서
이 무궁한 산야의 오늘이거라
 
오산 독산산성에 올라
여기 말고
여기 말고
온 누리의 꿈 불러다 하나인 오늘이거라
 
언젠가
백제 침류왕도
언젠가 조선 광해왕도 가보고 싶어하던 곳
2백여년 정조대왕도 머물던 곳
내 조국의 단전 독산산성의 오늘이거라 
                   




독산성에서 내려오는 길에 '매홀 역사'라는 플랭카드가 걸려있더군요.
갑자기 '매홀'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매홀 : 
삼국시대에 들어와서 수원지역을 최초로 차지했던 국가는 백제였다. 백제는 3세기 중엽 고이왕 때에 이르러 급격히 발전하여 4세기 중반 근초고왕 때에는 고대 국가체제를 완성하여 지금의 경기도지역 대부분이 당시 백제의 영토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고구려의 남하정책으로 한강유역과 수원을 포함한 그 주변지역은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되었으며, 이때 수원의 고유 지명은 '매홀'이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권25, 잡지4 지리2에 "수성군 본고구려 매홀군 경덕왕 개명 금 수주(水城郡 本高句麗 買忽郡 景德王 改名 今 水州)"라 기록되어 있다. 수성군은 본래 고구려(삼국시대) 매홀군(買忽郡)이라 불렸는데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때 수성군(水城郡)으로 개칭되었다는 것이다. 매홀에서의 '매'는 '물'을, '홀'은 '고을'을 나타내는 말로 '매홀'은 '물고을'이라는 발음의 표기로 추정된다.
수성군은 고려 건국 초인 940년(태조 23) 수주(水州)로 승격되고, 1271년(원종 12) 수원도호부가 설치되면서 '수원(水原)'이라는 명칭은 처음 등장한다. 한자식 지명인 '수성', '수주', 수원' 등의 명칭은 모두 '매홀' 즉 '물고을'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오산역까지는 다음에 계속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삼남로 걷기] 용주사 - 융건릉 - 병점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