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기업의 실제
기업, 변화의 선도자, 속도의 희생자?
1. 세계화와 기업의 실제
지구역사 50억년동안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법칙이 있다면 “모든 생명체는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기업은 소멸되게 되어있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생명은 인간의 생명보다 훨씬 짧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기업들은 그들의 활동을 속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쟁자를 물리치고, 더 많은 이익을 남기면서 더 오랫동안 생존하려는 기업의 갈망은 오히려 자신을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을 단축시키고 있다. 물론 세계화와 정보화를 이끌어가는 집단은 분명 기업이다. 그러나 기업은 국가나 종교와 같이 경쟁이 없는 현실에 안주할 수 있는 조직은 아니다. 기업을 제외한 대다수의 조직은 변하지 않아도 지속할 수 있다. 그것은 국가의 생존단위가 보통 수 백년에서 수 천년에 이르고, 종교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무변화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안전이라는 보호막을 만들어주지만, 기업을 이끄는 기업가에게는 기회의 상실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업가는 ‘확실성’을 파괴하고, ‘불확실성’을 만들어내야 기회가 주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정보화와 세계화는 기업가에게는 엄청난 기회를 제공한 것처럼 보인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이념으로 분리되고, 국경으로 보호되던 각각의 국내시장이 단절되어 별개로 존재하였던 산업시대는 사라졌다. 대신에 정보통신 기술과 사회주의의 붕괴로 세계는 하나의 세계로 묶였고, 기업가들은 어디서나 물건을 살 수있고, 팔 수도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세계화 과정은 역설적이게도 모든 기업과 나라의 지도자나 구성원들을 제각기 경쟁하는 하나의 덩어리로 뭉치게 만든다. 이것은 마치 월드컵 축구경기와도 같은 원리이다. 보다 쉽게 말하자면 이것은 이 세상에 제 아무리 중요한 경제적 의사결정이 내려진다 할지라도, 제대로된 심판은 물론이거니와 아직 공유되는 경기규칙 하나 마련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전의 자유민주주의 세계, 공산 사회주의 사회, 제3세계적 사회, 이슬람적 사회등은 각자의 기준으로 비즈니스를 해왔다. 그런데 이제 각자의 기준은 있지만 공통된 기준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어느 하나가 다른 체제의 경제운영 시스템보다 우월한 지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세계는 하나의 시장으로 통일되었지만, 시장 경제의 룰은 아직도 나라마다, 시기마다 다르다. ‘그야말로 그 때 그 때 달라요’ 이다. 이처럼 시장은 혼돈 상태이지만 기업으로서는 혼돈이 걷혀질 때까지 밖에서 쳐다만 볼 수는 없다. 열려진 시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은 다른 경쟁자에게 우위를 넘겨준다는 불행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불안하고 위태하지만 그 안에서 뭔가를 해야 시장 선도자가 된다. 이 애매하고 혼란스러움에 뛰어들지 않는다면, 남들이 내 시장까지 차지하고 나는 뜬금없이 퇴출되어야 하는 패배자가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고 경영자들은 물론 보통 사람들까지 잘 알고 있다시피, 두려움이란 결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따지고 보면,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어쩌다가 중대한 실수를 범한다는 것은 피하기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기업의 경영자들이 경영과정에서 생기는 엄청난 근심걱정을 감추어 버리고 앞만 보고 달려가게 된다면, 그들은 금방 대단한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예컨대 과도한 리엔지니어링이나 아웃소싱, 아니면 다운사이징을 앞뒤도 돌아보지 않고 밀어붙이게 된다면, 위기로부터 자신을 구출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것을 파괴하게 될 것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대적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기보다는 눈감고 도망가려하거나, 실수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단지 수세적으로 머물고자 한다면, 이것은 이미 실패가 예고되어 있는 바와 다름없다.
이제는 어제의 것을 지키는 일은 내일을 창조하는 일보다 훨씬 더 큰 위험을 동반한다. 혁신가들은 위험의 내용을 파악하고 그것을 가능한 한 제한하려고 함으로써 성공하고 있다. 그들은 혁신 기회의 원천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하나의 기회를 포착한 다음, 그것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성공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성공이나 실패 혹은 프로세스상의 필요성과 같은, 위험 수준이 낮고 또 분명히 파악할 수 있는 위험을 동반하는 혁신의 기회가 있다. 또한 새로운 지식의 등장에 따른 혁신의 기회처럼 그 내용은 파악할 수 있지마는, 위험 수준이 매우 높은 것도 있다. 문제는 그 기회에 대한 판단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은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검토해야 하고, 또한 빠른 시간 내에 결정을 해야 한다. 대단히 위험성이 높은 결정을 수시로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에 있어서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은 항상 옳은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경영자는 없다. 분명 불확실성은 도전자의 친구일 수 있다. 물론 불확실성이 너무 크면 곤란하지만, 너무 작아서도 안 된다. 기존 업체에게 뒤로 물러서 있도록 하고, 신중한 자세를 취하도록 하고, 게임을 분리시키도록 할 만큼 적당한 수준의 불확실성을 확보하는 것이 성공의 요령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불확실성을 관리할 수 있는 기업은 존재할 수 있을 까? 거미줄 같은 인터넷으로 촘촘히 엮여져 있어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다고 가정할 수 있지만, 그중의 단 하나의 요소라도 제대로 통제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들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내부적 요소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경쟁자보다 앞선 기술, 소비자에 만족을 주는 서비스만이 외부적 환경을 통제할 수 있게 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고, 실지로도 그럴 것이라고 소비자나 학자들도 믿고 있다. 따라서 모든 기업이 뛰어든 기술경쟁은, 동시적으로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전에 없는 고속 클락 스피드를 지닌 경제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현상의 첫 번째 결과는 ‘지속적 경쟁우위’라는 개념이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사, 그러한 경쟁우위가 있었더라도 그것은 이제 영원히 무덤 속에 묻혀 버렸다. 모든 우위는 일시적이며, 클락스피드가 빠를수록 경쟁우위도 더욱 일시적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튼 간에 개인, 국가, 기업, 종교든 모든 현실적인 활동을 하는 사회적 개체들은 사회의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그 것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기업은 다른 모든 조직과는 달리 그 변화를 대단히 빨리 느끼고, 변화를 만들어서 그 앞에 서야 생존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적응하지 않으면 해체될 수밖에 없다. 국가, 종교 및 비영리 단체는 대체로 변화의 뒤를 따라가서면서 제도를 바꾸어간다. 하지만 기업에게서 뒤처짐이란 바로 자신을 앞서는 경쟁자가 있음을 의미하고, 그 것은 거의 대부분 패배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기업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속도화가 주가 된 현재의 경쟁에서 이익을 보는 집단이라고 보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 것은 거창한 통계나 분석이 필요하지도 않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아서 최근에 기업을 시작한 사람치고 몇 명이나 성공했는지를 찾아보면 간단하다. 이전에 100명중 10명이 성공하였다면, 이제는 100명중 1-2명이나 될까 말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