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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길] 판교역 - 백현동 - 신갈역



드디어 2019년이 왔습니다.

그리고 9일이 지났습니다.

지난 1년이 가건, 

새로운 1년이 오건간에, 

우리는 변함없이 걷습니다.


판교역을 나와보니 로봇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뭘 고민하고 있을까요?

우리도 같이 고민합니다.

어떻게 하면 금년에는 더 잘, 흥겹게 걷을까 하고요.

이제까지 우리는 다른 인간과의 관계를 중요시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저 로봇과의 관계도 잘 지내려고 노력해야 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인간대 인간, 인간대 로봇의 관계가 모두 중요해지는 그 때가 오면 우리는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요?

아니, 그 시대가 오기 전에 우리는 그 시대를 준비하기 위하여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요?

정말 고민되네요.

아, 우리 표정은 전혀 고민하는 표정이 아니라고요?


이 땅의 역사 속을 걸으며 과거를 돌아보고,

이 땅의 삶 속을 걸으며 현재를 고민하고, 

우리는 같이 즐기며 미래도 고민합니다.


성남 분당구 백현동 행정복지센터입니다.

역시 대현형님의 친화력, 그리고 통장으로서의 어마무시한 경력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들어가 최순관 행정팀장으로부터 백현동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두툼한 자료를 일부러 프린트해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백현동의 유래, 이완용의 생가터, 낙생역, 낙생행궁, 백현동 느티나무, 낙생대 공원, 그리고 직업정보의 정보 수집 및 서비스 제공을 주 업무로 하는 잡월드에 관한 귀중한 자료 감사합니다.

'김민주의 트렌드로 읽는 세계사'를 감사의 표시로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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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낙생면 백현리(柏峴里) 지역이었는데, 1914년 광주군 낙생면 백현리(柏峴里)로 칭하였고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제되었다. 1973년 7월 성남시 백현동(柏峴洞)으로 개칭되고 1975년 3월 낙생출장소에 편입되어 판교동의 관할이 되었다. 그 후 1989년 5월 중원구에 편입되었다가 1991년 9월 분당구에 편입되었다. 백현동의 명칭은 잿넘어 마을 뒷고개 마루터기에 큰 잣나무가 있어 그 고개를 잣고개- 재너머- 백현이라 했는데, 마을이 고개 밑이므로 후에 마을의 명칭이 되었고 1973년 동제가 되면서 동명(洞名)으로 되었다.



최팀장의 권유로 백현동 카페거리에 왔습니다.

아직 아침이라 그런지 한가합니다.

저녁에 오면 그윽한 커피 향이 풍기겠지요.


분당구청입니다.


구청의 잔디 운동장에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습니다.

아이들 노는 소리는 언제들어도 흥겹지요~


서현 역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탄천을 걷습니다.

바람도 조용해서 물이 거울 같습니다.

위 아래로 서있는 나무의 모습이 웬지 쓸쓸해보입니다.

역시 세상은 갈색보다는 녹색이 더 활기차게 만듭니다.


백조는 아니고, 백로겠지요.

저렇게 높은 도시의 건물 속에서,

이렇게 한가하게 흐르는 냇물 속에서,

아주 멀리서 온 철새가 쉬고 있습니다.

새도, 식물도, 사람도 잘 어울리며 살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징검다리를 건너려니 무섭다며 손을 잡아달라고 부탁하십니다.

저 분과 같이 돌을 하나 하나 넘을 때마다, 나이듦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불과 20-30센티의 간격을 힘겹게 느끼십니다.

 아, 나도 그럴 때가 오겠지~

현재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탄천을 걷고 걸었습니다.

서두름없이, 천천히 ....

저기 높은 건물이 보입니다.

사람들이 어울리고 살겠지요.

이 풀숲에서는 오리와 야생새들이 살고 있습니다.

야생동물들의 아파트라고 보면 될까요?

저 안에 웅크리고 바람을 피하는 새들과 고양이들은 따듯할까요?


웬만큼 걸었다 싶으니, 

목도 축이고, 다리고 쉬어야 겠다 싶어서 동물원에 들렀습니다.

따듯한 커피가 좋았습니다.


드디어 성남의 끝까지 왔습니다.

기념사진을 찍으려니 즐거운 담소를 나누며 둘이서 걷더 동네 아낙이 웃으며 '웰컴 용인'하며 사진을 찍어주십니다.

남는게 사진뿐이라고, 열심히 우리 모습을 확인하고 또 확인합니다.


탄천과 동막천이 합쳐지는 작은 두물머리입니다.

저 사진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낙생저수리를 원천으로 하는 동막천,

왼 쪽으로 올라가며 용인으로 가는 탄천이 계속됩니다.


야생 고양이가 햇빛 비치는 수풀 속에서 나를 쳐다봅니다.

저도 가만히 놈과 눈싸움을 걸어봅니다.

한참을 그렇게 보다가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저 놈은 나를 쳐다보는 게 아니었습니다.

내 착각이지요.

암튼 저렇게 웅크리고 있으면 기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남길에서 만나는 또 우리들의 전설을 보았습니다.


경부고속도로입니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길입니다.

하지만 길 밖에서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차를 타고 쌩하니 지나가던 길을 걸으며 볼 때마다 저 차안에 있는 사람들은 진짜 존재하는 사람들일까 하는 의심이 들곤합니다.


길거리에서 잠시 쉬며 작은 잔에 따라마시는 커피,

그 위에서 펼쳐지는 우리들의 수다,

아주 가끔은 진지한 이야기도 하지만,  ..............


민영환선생의 묘역입니다.

한때는 전망이 좋았을 곳입니다. 

지금은 나무 숲이 아닌 아파트 숲에 둘러싸여있습니다.

민선생이 살아오신다면 '상전벽해'라고 하실 만하겠지요.

잃어버린 나라를 한탄하며 자결하신 1905년이후, 115년이 지났습니다.


민영환 선생 영정 : 



용인향교입니다.

동네 한 복판에 아파트에 둘러싸여 어디있는 지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정문 앞에 서서야 비로소 향교에 들었다는 걸 갑자기 알게 됩니다.

저 시대에 조선만큼 백성과 선비들이 공부할 만한 장소가 많았던 나라가 있을까요?

저리도 오래된 백성계몽의 시대가 있었기에 지금의 똑똑한 한민족이 있었다고 믿습니다.


고생은 발이 했는데, 즐겁기는 입이 즐겁습니다.

맛있는 걸 먹어서 좋고,

좋은 덕담들을 나누어서 즐겁고,

좋은 자리에 쉴 자리를 만들어 주신 주모님께 감사 말을 할 수있어 좋습니다.


그리고 신갈역 화장실로 다시 왔습니다.

그리고 같이 볼 일을 봅니다.

거울을 보는 순간 갑자기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같은 일을 하며 같은 거울을 본다는 게 처음 있는 일은 아니고, 흔한 일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모습이 무지하게 웃겼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렇게 우리들의 하루는 시원하면서 푸하하게 소리내며 끝을 냈습니다.


                       (2019년 1월 9일 김민주, 김대현, 홍재화 같이 걷고 먹고 마시고 싸고 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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