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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재해석  - 걸어서 좋은 사회적 이유


때로는 우리가 사는 사회를 걸으면서 땅 위의 풀 한 포기 쓰레기 하나하나를 눈으로 차근차근 보면서 걸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내가 걷는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타인의 눈으로 감정이입하면서 관찰해볼 필요가 있다. 그럼 그 안에서 내가 보인다. 부럽다, 안타깝다, 화가 난다, 아쉽다, 저러지 말아야지, 이렇게 해야지 등등 차로 쌩하니 달려가며 보던 사회와는 다른 느낌으로 사회를 실감하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 사회를 차가운 이성의 머리로만 보는 게 아니라, 따듯하고 애정이 듬뿍 담겨 있는 감성과 이성으로 삼천리금수강산을 보게 된다. 


1. 길거리 환경을 보게 된다.

삼남대로를 걸을 때였다. 오산을 지나 안성으로 가는 길이었다. 재개발을 시작한 동네인 듯 드문드문 버려진 집이 있었고, 여기저기 창고가 닫힌 채로 뿌려져 있었다. 무심결 땅을 보니 쓰레기가 잔뜩 버려진 채로 길가에서 발에 치였다. 갑자기 내가 환경보호에 무심했구나, 지나 온 길들도 저렇게 플라스틱, 음식 쓰레기로 채워져 있었을 텐데 나는 그걸 못 보았구나 하는 무심함이 확 떠올랐다. 조지프 아마토는 ‘걷기, 인간과 세상의 대화’에서 1800년대 파리를 걷는 사람들은 쓰레기, 보행자를 위한 안전지대, 말똥 더미, 악취를 풍기며 고여 있는 물 등으로 인해 보행자들은 조심조심 걸어야 했다고 한다. 외모에 신경을 쓸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신발 긁는 사람’을 불러 신발에 묻은 쓰레기를 닦아냈다고 한다. 다행히도 현대 한국에서 그런 일은 없다. 더 불행하게도 현대인들은 자신이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를 갈아 만든 미세 플라스틱, 미세 먼지에 섞인 중금속으로 오염된 내장을 수술 칼로 긁어내거나 들어내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그렇지만 길을 걷는 다는 것은 역시 시절 따라 변하는 자연과 사람의 만나는 즐거움이 크다. 의왕시 백운계곡을 넘어 도락산 자락에서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묘를 보고 내려오는데 감나무에 감이 탐스럽게 열린 것을 보았다. 마침 옆에 아주머니께서 일을 하고 계시 길래 감하나 따가도 되냐고 물었더니, 몇 개가 달린 감을 선뜻 따주며 더 가져가라고 하며 기쁜 마음으로 환송해주는 인연을 만났다. 그 날 백운호수에서 사근행궁터까지의 걷기는 마음과 손이 푸근했다. 


2. 사람, 사연을 보게 된다.

길을 걷다보면 가슴 아픈 거리의 사연들을 볼 수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잃어버린 자식을 찾는 현수막을 본 일이다. ‘실종된 송혜희를 찾아주세요’이다. 평택에서 고2때 실종된 송혜희는 이미 20여년이 지났지만 부모님들은 이제는 37-39살이 된 딸을 찾기 위하여 현수막을 전국 방방곡곡에 달고 다니고 있다. 20년 전 실종될 때의 앳된 여고생의 모습과 이제는 중년이 다되는 현재의 추정된 모습을 같이 올려놓았다. 신문에 난 그 아버지의 기사도 찾아보았다. 길을 걷다보면 추레한 행장을 하고 거리를 떠도는 노숙자들도 보게 된다. 그럼 우선 내가 저렇게 살지 않아도 됨을 가슴에 손을 얹고 감사하는 마음이 된다. 그리고는 따듯한 집도 없이 거리에서 잠을 자야하는 사람들의 사연들이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아마 나도 저런 일을 겪었어야 했을 지도 모른다. 다행히 운이 좋아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됨을 나의 행운에 감사할 수밖에 없게 된다. 길을 걷다 보면 훈훈한 사연도 보게 된다. 2018년 12월 추운 한겨울에 평택 소사벌을 걸을 때 나이 지긋한 부부가 같이 걷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때 같이 걸었던 동행이 넉살이 좋아 말을 붙이니 돌아오는 답변이 청산유수다. 알고 보니 국내산 4000여개를 등정하고 이야기를 카페에도 올리시는 이종훈할아버지였다. 두 분은 그 연세에도 같은 취미를 즐기며 산과 옛길을 걸으며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그 분의 카페에 다시 들어가 보니 이번에는 인천 둘레길 을 걷고 사진을 올리셨다. 세상의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 즐기는 사람이 많은 것을 길을 걷다보며 많이 만나게 되고, 그들처럼 되고 싶게 나도 따라하게 된다.


3. 사회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길을 걷다 보면 꽤 넓고 잘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 없이 빈 채로 여러 해가 지나 마당에 수풀이 무성한 빈 집을 많이 보게 된다. 서울이야 빈 집이 없어 난리지만, 서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텅 빈 집 투성이 임을 금방 알게 된다. 일본이 빈 집 많아 거저 도시 사람들보고 내려와 살라고 한다는데, 한국이 그런 꼴 날 날이 멀지 않았음을 실감한다. 서울을 차가 쉴 새 없이 오가지만, 시골길을 걷다 보면 한참 지나야 차지나 가는 길도 많고, 사람보기 어려운 동네도 많다. 골목길을 걷는 뛰노는 아이는 고사하고 어른 보기도 힘들다. 그리 오래 전도 아닌 불과 20년 전, 막내 셋째를 낳았을 때는 아이 많이 낳았다고 의료보험도 안 되었다. 완전 찬밥이었다. ‘하나도 많다’는 구호가 버스 벽면을 도배했었다. 그런데 조금 지나니 막내 의료보험이 풀리고, 또 조금 지나니 다둥이라고 성북구립 헬스클럽 할인해준다고 특혜를 줄 정도로 변했다. 세상에 사람이 줄어든다니~ 상상하지도 못할 일이 이미 우리에게 시급한 일이 되었다. 길을 걷다보면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만큼이나, 보이지 않게 된 마을도 많아짐을 알게 된다. 한국의 마을은 나지막한 구릉지에 단층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저녁에는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땅을 스치면서 흘러가는 낭만적인 풍경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들녘을 걸을 때 녹색의 논, 밭 사이로 뜬금없이 새하얀 2-3층 건물이 나타나고, 겁나게 높은 20층도 넘는 아파트가 세워지는 도회의 건설모습을 보게 된다. 이제 기성세대에게 ‘우리가 어릴 적에 ..…….’라는 말은 어린 세대에게는 옛날 옛적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추상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아버지가 하는 말이 실감나지 않는 이유이면서,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가 되기도 하다. 분명 서로 부딪치고 살가워하면서 같이 살기는 하지만, 살아온 배경이 전혀 다른 두 세대의 유형이 되었기 때문이다. 


걸으며 사회 속의 나를 돌아보면 우리는 사회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추상적 의미의 사회에서 체감형 사회가 된다. 길을 걸으며 만나는 온갖 우연한 만남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앞으로 어떤 사회 속에서 살게 될 것인가, 우리는 잘 살고 있고 잘 살게 될 것인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된다. 그 질문은 형이상학적 관심이 아닌 두 다리로 걸으면서 눈과 피부로 보고 느낀 사소한 장소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질문이고 매우 실체적인 답변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하게 한다. 그러다 보면 사회 속에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내가 걷는 사회가 더 정겹게 되고, 더 장점이 많은 사회이면서 매우 훌륭한 역사를 가진 사회임을 갖게 된다. 그 속에서 사는 내가 더 좋아지게 됨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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