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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 보문사에서 동묘까지

오늘 우리는 새로운 모임을 합니다.

'문화산책, 서울 어디까지 가보았나?'

서울과 서울 근교의 문화를 찾아가며 의미를 새겨보는 모임입니다.

이 모임의 특징은 그 유명하고 말빨이 쎈 김경집 법사가 36회 전담 문화 해설사로 같이 합니다.

다음 모임은 12월 첫 째 토요일에 하려고 합니다. 

관심있는 친구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첫 모임은 11월 7일 11시 6호선 보문역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멀지 않은 미타사로 갔습니다.

이미 이 자리에 1000년 넘게 있었지만, 이제사 그 존재를 알았고, 이제사 찾아왔습니다.

기념사진에는 김준기, 정원균, 김경집, 윤정혁 그리고 찍사 홍재화가 있습니다.


미타사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설명문을 보면서 '탑골승방'이라는 말이 탑이있는 비구니가 있는 절이라는 말인 줄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바로 우리 동네 보문사와 미타사 근방을 말합니다.

이렇게 안암동에서 살기 시작한 지 50여년이 되는데 오늘에야 오래된 사실을 알았습니다.



절 속에 숨어있는 작은 숲속의 계단을 올라갑니다.


이 오층석탑이 1047년에 세워졌으니 거의 1000년이 다 되어 갑니다.


이 탑 뒤에 보이는 저 담장이 오늘의 우리를 모이게 한 모교 경동고 담장입니다.

학교 다닐 때 축구공 넘기면 찾으려 왔던 곳이 바로 이 미타사였습니다.


김경집 법사의 탑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탑의 모서리를 볼록 튀어나도록 한 것이 '우주'라고 합니다. 


원균이가 자세히 보니 탑의 돌틈 사이에 지폐 1000원과 동전이 몇 개 꽂혀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폐는 꺼내지 못하고, 동전은 꺼내서 시주함에 넣었습니다.

돈을 돌고 돌아 쓰일 곳에 쓰여야 가치가 있다는 김법사의 말을 따른 것이지요.


***

'우주'란 용어는 한문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자면 모퉁이 '우(隅)', 기둥 '주(柱)' 입니다.
즉 모퉁이(가장자리)에 있는 기둥이란 뜻입니다.
또한 '탱주'란 말은 버틸 '탱(撑)' 기둥 '주(柱)' 입니다.
따라서 '버팀기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바로 옆의 보문사로 갔습니다.

오늘이 동지라서 기도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제법 사람이 많이 모여있습니다.


보문사에 대한 소개입니다.

보문동의 이름이 바로 이 보문사에서 유례하였다고 합니다.


보문사의 극락보전입니다. 

서울의 절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랍니다. 


보문사의 유명한 석굴함입니다.

경주 석굴함의 1:1 크기로 재현하였다고 합니다.

아이가 이 곳 유치원을 다니고, 지금도 가끔은 지나는 곳입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석굴암에 우리가 들어왔습니다.

밖에서 구경만했지 들어올 수 있는 곳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안에서 직접 부처님을 만져보고 

석굴암의 기운을 느낄 수있습니다.

다 김법사가 있기 때문이지요.


석굴암의 제단에 초코파이, 과자, 바나나가 바쳐져 있는 게 웃기기도 하고 생소하기도 합니다.

요즘 부처님들의 식성에 맞춘 걸까요, 아니면 바치는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을 올린 걸까요?


보문사 대웅전입니다. 

이 번에도 신발벗고 대웅전에서 간단하게 부처님께 절하고 탱화에 대한 설명을 듣습니다.

탱화 밑에는 시주하거나 같이 그린 사람의 이름이 있다고 합니다.


보문사를 나와 언덕을 지나 청룡사로 갑니다.

알고 보니 이 절도 사연이 구구절절하더군요.

이 절도 비구니 절입니다.


청룡사 

소나무가 아주 그럴 듯합니다.

가지가 나즈막하고 널찍하게 펼쳐진게 마치 그늘을 만들어 주기 위한 나무처럼 보입니다.


정업원 청룡사

청룡사는 언제 지어졌는 지 정확히 알려진게 없다고 합니다. 

절보다는 절안에 있는 '정업원 구기 (정업원 옛터)'이 탑과 영조의 친필이 더 사연이 깊습니다.

세조 때에는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를 떠난 후,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宋氏)가 이곳에 머무르며, 날마다 동망봉(東望峰)에 올라 영월 쪽을 바라보았다고도 합니다.


정업원은  궁궐에 있던 후궁들이 모시던 왕의 사후 불교에 귀의한 비구니들의 여승방(女僧房)이랍니다.  비구니 절인 정업원은 원래 창덕궁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성 안에 있는데, 성 밖에 있었다는 전설에 따라 이곳에 비를 세우고 비각도 짓게 되었다. 


그런데 이 탑과 나무는 모두 청룡사의 한 구석에 숨겨져 있습니다. 저 작은 쪽문을 열고 들어와야 하는데, 이 역시 김법사 덕분입니다.

이런 저런 정황으로 보아 정업원과 청룡사는 별 연관이 없는데, 자리를 비슷한 곳에 위치하면서 정업원이 청룡사에 포함된 것 같습니다.


숭인동 골목에서 보는 청룡사의 처마 끝입니다.

원균이의 설명에 의하면 오래 전 어느 책에서 이 골목에서 본 청룡사의 모습은 아주 초라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 골목도 볼 품이 없었겠고요.


마지막으로 동묘를 가려고 했지만 공사로 막아 놓았습니다.

아쉽게도 들어가보지 못하고 발을 돌려야 했습니다.


동묘 앞의 황학동 벼룩시장입니다.

벼룩시장이라고 해서 벼룩을 파는 곳은 아니고,

벼룩시장이라고 해서 작지도 않습니다.

나날이 넓게 퍼져가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볼거리도 제법됩니다.


먹을 곳을 찾아서 동대문방향으로 틀었습니다.

홀로 북한산을 등산하고 부지런히 우리와 만나기로 한 김종대와 만났습니다.

동대문 옆 낙산의 끝자락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자면 원균이는 계속 딴청이네요.


동대문  창신동 먹자 골목에서 닭한마리와 보쌈을 안주 삼아 지나간 역사를 마셨습니다.

역시 문화산책을 하고 나니 대화의 주제도 과거 조선시대를 훨훨 날랐습니다.


그리고 원균아 커피 잘 마셨다.

                                                   2020년 1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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