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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교역 재개와 동대문의류 시장

한국인의 디자인 솜씨와 봉제 솜씨가 어우러진다.


남북교역 재개와 동대문의류 시장


남북교역이 재개되면 아마도 가장 먼저 활기를 띨 곳이 동대문시장이지 싶다. 남북한의 소상공인이 많이 몰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자 먼저 중국, 소련, 몽고, 우즈베키스탄 등 공산권 국가들과 무역이 시작되었을 때를 돌이켜 보자. 1990-2000년대 거의 20년동안 동대문 시장은 아시아에서 가장 핫한 장소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더욱 더 한국의 옷이 값싸고 품질이 좋았다. 그리고 비행기에 실을 수 있는 휴대품의 무게도 30킬로에 기내로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가방은 숫자를 세지 않을 정도록 넉넉했다. 비행기 값을 치르고도 자국으로 돌아가서 동대문 시장에서 산 물건을 팔면 이익이 남았다. 그러니 그 때는 동대문 시장 뒷골목으로 가면 한글보다 러시아 말로 된 간판이 더 많을 정도다. 지금도 광희동 골목에는 러시아 식당과 간판을 많이 볼 수 있다. 몽골 사람들도 그 때 많이 왔고, 중국의 보따리상들도 동대문으로 몰려들었다. 물론 옷만 사간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들이 모이는 곳은 동대문을 중심으로 하였다. 옷은 무게대비 값이 나가는 편이고, 식품처럼 통관이 까다롭지 않고,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는데다, 한국의 세련된 디자인이 아시아 각국에서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동대문은 여전히 의류도매상가로서 아시아인들은 물론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는 곳이다. 한 밤중에 가면 도매시장이 열리는데, 보따리를 들고 다니면 옷을 주워 담는 외국인이 쉽게 볼 수 있다. 


그럼 왜 동대문시장이 이렇게 외국 시장에서 관심을 보일 지를 알아야 한다. 우선 동대문 시장은 의류시장의 중심지이다. 한국의 새로운 디자인은 동대문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동대문 시장 주변에는 청파동, 창신동, 보문동 등등 해서 작은 의류 공장들이 모여있다. 이 공장들은 디자인, 패턴만들기, 원단 자르기, 봉재작업, 검사, 포장 등등을 할 수 있는 작은 기업들이다. 이 들은 자기분야별로 최소 10년 이상된 전문가들이 이끄는 특화된 공장이다. 어떤 디자인이 나와도 빠르면 1-2일, 적어도 1주일이면 초도 생산 물량을 맞추어 낸다. 초도 물량은 한 번에 수만장씩 만들어내는 대량 생산 제품이 아닌, 수백장 정도의 소량이다. 따라서 디자이너들도 실험적 디자인을 적은 비용으로 위험부담을 줄이면서 만들어 볼 수 있다. 그래서 동대문은 한국 의류 시장에서 선도적 디자인의 패션제품들이 먼저 선보이는 곳이 되었다. 가격도 도매와 소매를 다 취급한다. 도매상이라고 해서 도매만 하지 않고, 밤에는 도매가격으로 팔지만, 낮에는 소매가격으로 판다. 소비자들도 쉽사리 가서 소매 가격에 최신의 디자인 의류를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있다. 그러니 소매상이던 소비자이던 동대문은 누구에게나 흥미진진한 장소가 아닐 수 없다.


남북교역이 재개된다면 북한의 소매상들이 동대문으로 몰려올 것이다. 평양, 나진, 청진, 신의주 등 이전에는 중국의 제품을 사던 장마당 시장꾼들이 버스를 타고 와서 잔뜩 자기네 보따리를 채운 다음 밤새 달려 평양이나 청진에 물건을 풀어놓아 장사를 하면 된다. 지금도 지방의 장사꾼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럼 동대문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창신동, 보문도, 청파동 골목의 봉재공장들도 남북교역 재개의 콧바람 좀 쐬게 된다. 동대문이 한반도 전체의 패션 중심지로 크게 된다면, 규모의 경제에 힘입어 세계적인 패션시장, 아니 적어도 2억명이 몰려사는 만주, 사할린, 한반도를 아우르는 동북아 패션중심지가 될 것이 분명하다. 요즘들어 한국인 디자이너들이 파리와 뉴욕같은 패션 중심지에서 호평받는 일이 잦아졌다. 거기에 한국인의 손재주를 더하고, 동대문 시장의 유통 기능이 합쳐지면 K-fashion이 K-pop처럼 붐을 일으키지 말라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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