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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취객 May 11. 2020

금수저여야만 세계일주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세계일주와 워킹홀리데이에 대한 방법론 4부작 (1)

    지구 한 바퀴를 도는 세계일주는, 많은 사람의 꿈이었고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의 꿈이다. 어떤 사람은 80일 안에 세계일주를 해야만 했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가며 세계일주를 떠난다. 코로나 사태 이전 까지만 해도 날이 갈수록 저렴해지는 비행기 값과 수많은 정보들로 인해 세계일주의 체감거리는 점점 짧아졌고, 많은 사람들이 책과 방송 그리고 SNS 등을 통해 자신의 세계일주를 정리하고 공유했다. 


    직업적 특성으로 인해 많은 출장을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새 쌓인 마일리지와 여행 경험으로 세계일주를 한 직장인, 차곡차곡 돈을 모아 마음이 맞는 사람과 결혼하며 회사를 그만두고 떠난 부부, 대학을 다니며 숱한 유혹을 뿌리치고 미친 듯이 돈을 모아 꿈을 이룬 학생들 등등. 참 다양하다. 그런데 꽤나 많은 사람들이 여행객들이 남긴 글에, 사진에, 책에 ‘이런 건 금수저나 할 수 있는 거야’, ‘하루 벌어먹고 살기 바쁜 내가 어떻게 세계일주를 해’, ‘뒷일은 생각도 안 하고 오늘을 위해 사는 YOLO족의 헛된 탕진인 거야’라고 부럽지만 회의적 시선들을 보낸다.

 

   물론 일반인들이 세계일주를 떠나기 위해선 많은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거나,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포기하고 돈만 모으거나, 남들 취업 준비나 결혼 준비할 때 불안감을 떨쳐내고 준비해야 한다. 이런 선택과 결정은 정말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겐 외줄 타기 꿈같은 얘기로 밖에 들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도 앞의 많은 사람들처럼 용기가 있거나 끈기 있게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세계일주의 꿈은 요원하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우선 떠났다.


    돈을 잘 모으는 성격은 못 되어서, 일단 떠나서 돈을 벌자는 생각이었고 그 시작이 일본 워킹홀리데이였다. 워킹홀리데이라는 제도 자체가 경제적 활동을 하며 그 나라의 문화와 삶의 방식을 여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 느리지만 확실한 세계일주를 하고 싶은 나의 목적에도 맞았다. ‘까짓 거 아르바이트 빠르게 구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에 남들은 최소 2~300만 원은 모아서 출발하는 워킹홀리데이를 30만 원만 들고 출발했다. 물론 그 때문에 초기 시작 선택지도 한정적이었고 (숙식을 제공하는 일을 구하다 보니) 일이 마음에 안 든다고 떠날 수도 없어서 개고생 했지만. 


    워킹홀리데이마저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혹은 젊었을 때 돈을 모으지 않으면 나중에 고생할 것 같아서 세계일주를 떠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방법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언어가 되지 않아도 우선 가서 배워도 되는 것이고 돈이 없다면 가서 저축하면 된다. 나도 일본어를 하나도 못해서 비자를 받을 때 친구에게 도움받았고 혹여 대사관에서 면접이 있을까 봐 예상 질문과 답을 전부 외워 갔다. 홋카이도에 도착해서도 일본어를 못해 접시닦이로 좌천당했고, 부장에게 미움받아 2주일이나 숙소에 갇혀 있었다. 그래도 나는 세계일주의 첫 단추를 끼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설렜다. 


    20대에 취업은 하지 않고 미래 준비도 하지 않은 채로 내 하고 싶은 것만 하면 나중에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는 어른들의 걱정도 한가득 일 것이다. 맞는 말일 수 있다. 30대에 넘어오니 내 주변 친구들의 통장 잔고와 내 텅 빈 통장을 비교할 때면 내심 울적해진다. 그래도 세계일주를 떠나고 싶은 청년들에게 한 가지 핑곗거리를 만들어주자면, 이것 또한 자신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단순히 자랑하고 싶어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넓은 세상에 얼마나 다른 삶의 방식과 관점들이 있는지 배우러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혹은 나처럼 운이 좋아 엉겁결에 자신의 커리어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계일주를 떠난 사람들이 모두 금수저이거나 시간이 남아서, 혹은 YOLO족이어서 떠난 것은 아니다. 거창하고 대단해서 나는 꿈조차 꿀 수 없는 그런 사람들 이어서도 아니다. 그냥 내 주변 사람들이다. 모두에게 자신만의 이유가 있고 방법론이 있다. 3000만 원을 모아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30만 원 밖에 없어도 떠나는 사람도 있다. 세계일주를 하는 것만이 모두의 답도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분명 답이 될 수 있다. 떠나고 싶다면, 떠나자. 그 누구보다 잘 준비하고 그 누구보다 많은 것을 남겨 올 수 있겠다는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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