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력을 무너뜨리는 뇌의 작동 원리
지난 글에서, 우리는 왜 다시 술을 마시게 되는지를 이야기했다.
이번엔 한 걸음 더 들어가본다.
왜 우리는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멈추지 못하는가에 대하여.
그만 마셔야지.
오늘은 조금만 마셔야지.
그런 다짐은 왜 자꾸 흐려지는 걸까.
술이 들어간 순간, 절제력은 무기력해지고
예정에도 없던 마지막 잔을 손에 쥐게 된다.
이건 단순히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술은 뇌를 구조적으로 ‘멈추지 못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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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엽이 마비되는 순간
우리 뇌의 전두엽(prefrontal cortex)*은
자기통제, 충동 억제, 판단력의 중심이다.
즉, “이제 그만 마셔야지”라는 이성의 목소리는
이 영역에서 나온다.
하지만 알코올은 이 전두엽의 기능을 선택적으로 억제(suppressed)*한다.
의식은 남아 있지만,
판단은 흐려지고, 충동은 탈출구를 찾지 못한다.
이 현상을 알코올 유도 충동 탈억제(alcohol-induced disinhibition)*이라고 부른다.
술을 마시면 우리가 멈추지 못하는 건,
스스로를 조절하던 뇌의 브레이크가 풀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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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괜찮아”라고 속이는 보상 회로
술은 도파민을 분비시켜 뇌에 쾌감을 준다.
문제는 이 도파민 보상 회로(dopaminergic reward system)*가
‘지금’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즉, “지금 기분 좋잖아. 계속 마셔.”
이 회로는 즉시 만족(immediate reward)*에는 민감하지만
“내일 괴로울 거야”라는 장기적 경고에는 둔감하다.
이것을 단기 쾌락 우선 경향(short-term reward bias)*이라고 부른다.
이 회로가 강해질수록
우리는 다시 마시고, 더 마시고,
그리고 후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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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될수록 뇌는 멈추지 않는 회로로 학습한다
술을 반복적으로 마시는 것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다.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에 따라,
우리 뇌는 ‘술 해소 반복’의 회로를 강화한다.
이 회로가 굳어질수록,
뇌는 술을 ‘필요한 반응’으로 인식하고
다른 선택지를 이상하게 느끼기 시작한다.
그래서 술을 입에 대기 전부터
나는 “오늘은 딱 두 잔만”, “기분만 낼 거야” 같은
자기암시를 되뇌고 있는 나를 자주 발견하곤 했다.
흥미롭게도,
그 되뇌임이 반복되면
실제로 가끔 절주에 성공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도
사실은 내가 대단한 결심을 한 게 아니었다.
그 또한 신경가소성의 결과였다.
여러 번 절주를 시도하며 만든 약한 회로가
그날 잠시 작동한 것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회로보다 훨씬 강하고 오래된 중독 회로가 여전히 뇌 속에 살아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결국 다시 마셨고,
더 마셨고,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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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기 위한 단 하나의 선택
나는 이제야 안다.
왜 나는 멈추지 못했는지를.
왜 나만 유난히 약한 게 아니었는지를.
그건 내 뇌가 그렇게 구조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단순히 ‘덜 마시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끊는 선택,
*단주(abstinence)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단주는 참는 게 아니다.
단주는 도망치는 것도 아니다.
단주는 내 뇌의 회로를 다시 설계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다.
그제서야 우리는
마시지 않는 내가 낯설지 않은 날을
조금씩, 다시 살아갈 수 있다.
*전두엽 (Prefrontal Cortex)
자기통제, 충동 억제, 판단력을 담당하는 뇌 부위.
음주 시 기능이 선택적으로 억제된다.
*충동 탈억제 (Alcohol-Induced Disinhibition)
알코올로 인해 억제 기능이 무력화되어,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하게 되는 현상.
*도파민 보상 회로 (Dopaminergic Reward System)
도파민 분비를 통해 쾌감과 행동 강화를 유도하는 뇌의 회로.
*단기 쾌락 우선 경향 (Short-Term Reward Bias)
장기적 손해보다 즉각적인 보상에만 집중하는 뇌의 경향성.
*신경가소성 (Neuroplasticity)
반복된 행동이나 경험에 따라 뇌 회로가 강화 또는 재구성되는 현상.
*단주 (Abstinence)
알코올을 완전히 끊는 회복 전략.
중독 회로 해체를 위한 가장 근본적인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