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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없는 시간에 배우는 것들

기분은 좋아지려고 마신 게 아니라, 더 나빠지려고 마셨다

by 술 마시던 나무


술을 안 먹었을 때의 기분은 분명히 있다. 맑다. 생각이 또렷하고, 하루를 내가 직접 쥐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그 기분을 오래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왜냐면 술을 마시던 시간, 그리고 마신 후 이어지는 긴 무력한 시간들이 너무 길고, 허무하게 내 삶을 갉아먹어 왔기 때문이다.


중독자는 늘 이렇게 말한다. “기분이 좋아지려고 마신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알코올을 마신 직후 느껴지는 짧은 해방감은 실제로는 뇌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환상이다.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졌다고 느낄 때, 사실은 마시기 전보다 기분이 더 나빠진 상태에서 술이 주는 일시적인 위안을 “좋아졌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나는 그 착각 속에서 수년을 마셨다.


술은 한 번 입에 대면 끝이 아니다. 그 순간부터 알코올은 오랫동안 몸에 남아 뇌와 몸을 다시 술을 찾게 만든다. 양이 어떻든 결과는 같았다. 조금만 마셔도 결국 참기 어려웠다. 그래서 결론은 하나였다. ‘절제’는 답이 아니다. 단주만이 방법이다. 하지만 알코올을 입에 대던 버릇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퇴근 후의 습관, 친구와의 약속, 혼자 있을 때조차도 술을 찾던 자동 반응은 여전히 내 안에서 작동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술을 안 마신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였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작은 일을 끝내며 성취감을 느끼려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런 순간들이 쌓이자 술이 생각나던 상황에서도 나를 다잡는 힘이 조금씩 생겼다. ‘안 마신 내가 더 기분 좋다’는 확신이 만들어졌다. 중독은 쉽게 깨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중독은 다른 중독으로 덮을 수 있다. 나는 술 대신 성취감에 중독되려 했다. 글을 쓰는 중독, 운동을 하는 중독,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는 중독. 그렇게 나는 점점 술이 없는 시간에 나를 묶어둘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술로 흘려보낸 시간들이 너무 아깝다. 중독자들은 절대 모른다. 술로 인해 본인의 삶이 무너지고 있다는 걸, 뇌는 애써 모른 척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술은 인생을 갉아먹는 악마다. 그리고 나는 그 악마에게 더는 시간을 주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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