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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멘 Apr 17. 2024

필라테스 기초반이 힘든 이유

기초의 역습

최근 내가 가는 필라테스 수업이 기초반이 된 듯하다.


헐레벌떡 뛰어오는 내게 선생님이

 "오늘은 기초반이라 좀 천천히 할 거예요"라는 말을 한 지 2주가 되었다.


처음엔 수업에 온 게 어디냐는 생각이 들다가,

너무 느린 수업 템포에 '너무 루즈한 거 아닌가, 운동이 되나'싶은 의심이 들다가,

다음날 아침 나는 뒤통수를 맞는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뒷근육통?이라고 해야 하나.


왜인지 모르겠는데, 팔뚝에 젖산이 쌓인 느낌이 들었다.

몸의 피로도가 있고 배에 아릿한 복통이 생겼다.


어제 내 몸에 한 일이라고는 필라테스 기초반 수강.


처음엔 그냥 우연인가 했다.

그러나 그다음 주도 그랬다. 아니 다음날까지도 안 가고, 수업을 들은 저녁부터 그랬다.


왜일까, 고민하다 이 글을 쓰게 됐다.


클래식 필라테스 기초반은 이렇다.


첫째, 자세에 대한 설명이 굉장히 길고 세세하다.

배꼽을 기다랗게 만드는 과정이 무엇인지,

배와 허리가 어떻게 상관관계를 갖는지,

승모근이 아닌 이두와 삼두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앞허벅지가 아닌 엉덩이가 아프려면 어떤 자세가 맞는지 등등.


배꼽을 기다랗게 만드는 건, 코어를 쓸 때 가능하다.

축 늘어진 뱃살에 배꼽모양을 보면 둥그렇다. 혹은 가로로 길다.

반면 뱃살을 쏘옥 집어넣으면 배꼽이 길게 일자모양에 가깝게 된다.


또한 이 배꼽을 쏘옥 집어넣는 '코어의 힘'을 줘야만 허리가 곧게 선다. 배에 힘을 풀면, 허리가 꺾인다.


승모근이 아닌 이두와 삼두를 쓰려면 등을 써야 한다.

전완근의 힘으로 팔을 쓰지 않고, 날개뼈부터 뽑아내는 등근육을 써야 승모근이 올라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앞허벅지가 아닌 엉덩이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려면

발가락 끝보다는 발뒤꿈치에 무게중심이 가고 골반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아무튼 하나의 동작을 하는데 신경 쓸 것만 수십 가지인 느낌이다.

듣다 보면 사실 지칠 때도 있다.

내 몸이지만 옴짝달싹 못하고 온 신경이 피로해지는 느낌.


보통 고급반에서는 이과정이 많이 스킵되는데 서로가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다.

물론 대부분 알고 있긴 하다.


하지만 안다고 생각하고 그냥 하는 것과 다시금 가이드를 들으며 동작을 하는 건 다른 일.  

선생님의 가이드를 들으면 조금 더 바른 정렬을 하기 위해 1도라도 더 움직인다.

그래서 힘이 든다.


두 번째, 필라테스 기초반은 속도가 느리다.

하나의 자세에서 다음 자세로 넘어가기까지 텀이 길다.

운동을 조금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원래 빠른 움직임보다 느린 움직임을 유지하는 게 더 어렵다.

견디는 힘을 길러야 하기 때문이다.

내 몸 근육의 변화를 알아채면서 속도를 조절하는 인지능력도 필요하다.

하나의 동작을 10초 안에 끝내는 것보다, 하나의 동작을 10초씩 유지하는 게 힘이 든 이유다.


세 번째, 필라테스 기초반에서 나는 시범조가 된다.


하루는 선생님이 내게 동작 시범을 시키며 이렇게 말했다.

"자 회원님들, 여기 잠깐 보실게요. 우아한 백조 같죠?

이분 발레 전공자 아니고 일반인 회사원이에요. 여러분도 할 수 있어요"

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당연히 선생님의 믿음과 주변의 이목이 집중되다 보니 나도 더 잘해야겠다는 부담을 갖고 동작을 한다.

곁눈질하는 다른 회원들의 기대에 괜스레 부응해야 한다는 책임감.

그래서인지 온몸은 부들부들하면서도 미동 없이 모든 동작을 완수해 낸다.


이러한 이유들이 필라테스 기초반이 내게 전에 없던 후폭풍을 낳은듯하다.


조셉 필라테스가 이런 말을 했다.


"필라테스를 10번 하고 나면 느낌이 다르고,

필라테스를 20번 하고 나면 눈에 보이게 다를 것이고,

필라테스를 30번 하고 나면 나 자신의 신체가 새롭게 태어난다."

(In 10 Sessions you Will feel the difference,

In 20 Sessions you Will see the difference, and In 30 Sessions you'll have a whole new body)


필라테스는 완성이 없다.


기초반이든 고급반이든 그저 나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매번 느낌이 다르고,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내 몸의 달라짐을 눈으로 목격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몸과 마음을 경험한다.


그 과정의 반복이 작은 성공의 경험을 되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강화시켜 준다.


이게 바로 필라테스의 중독효과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무언가를 이미 알고 있다고 느낄 즈음 그 분야의 기초반을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생각지도 못한 혹은 잊고 있던 시그널이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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