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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멘 Nov 02. 2024

일상의 중력(1)

일상이 일탈을 이긴다

당신의 삶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가장 좋아하는 10월,

'10월의 어느 멋진 날' 노래에 맞춰 결혼식을 꿈꿀 정도로 10월의 가을을 애정하던 어느 날,

그 끝자락에 쇼펜하우어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쿵.

무슨 일이지?

매일 가는 출근길 끝자락, 회사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 순간 뒤에서 쿵하고 내차와 충돌했다.

후면충돌사고구나.

내차는 서서 측면에서 들어오는 차들을 경계하는 상황.

뒤차는 안전거리 미확보 및 전방주시 소홀.


아니나 다를까, 뒤차에서 내린 운전자분이 연신 죄송하다며, 자기도 옆에 들어오는 차들만 보느라 앞에 차를 못 봤다며 사과했다.

백 프로 상대방 과실이지만, 대부분 알다시피 이런 경우가 억울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떻게 교통사고가 1년에 2번이 날 수 있단 말인가.

2월에는 측면에서 추돌사고가 나더니, 10월에는 후면에서 추돌사고라니.


욱-하는 감정이 1차적으로 올라왔다.

안 그래도 빠듯하게 꾸려지는 쳇바퀴인데 무언가 더해지면 나의 일상은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아무튼 상대방 과실을 증명해 두고, 보험접수번호를 받고 회사에 연락을 했다.

그 길로 바로 차수리센터, 렌터카, 병원 등을 물색했다.

내게 부족한 건 시간이었으므로 가급적 병가를 쓴 하루에 모든 걸 해결해야 했다.


다행히도 오전 일과 중 사고처리와 관련된 건 일단락.

렌터카를 받아 이제 병원으로 갈 차례였다.

교통사고로 유명하다는 근처 병원을 찾아서 엑스레이 촬영을 마치고, 목과 허리의 디스크 의심 증상을 발견.

안 그래도 좁아진 틈 사이로 충격이 전해져 가급적 입원을 권장한다는 결론.


입원?

당장에 4살 난 애는 어떡하지?

그럼 계속 회사에 병가를 써야 하나?

주말에 아이 어린이집 상담 스케줄, 지인 집들이 스케줄은?


온갖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와 그 자리에서 "네"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물리치료 등을 받고 돌아오는 길,

전부터 쭉 든 생각은 단 하나.


'왜 자꾸 나한테 이래?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내 잘못도 아닌 일로 왜 자꾸 내가 피해를 보고 손해를 입어야 하지? 내가 올해 삼잰가? 부적이라도 써야 되나?'


집에 도착해서 나는 정말 검색창에 '교통사고 부적'을 검색해 봤다.

올해 삼재인 띠도 검색해 봤는데, 소띠는 아니었다.

그러다 결국 접었지만.


그렇게 고단한 하루의 끝, 나는 올초에 읽은 쇼펜하우어를 떠올렸다.

쇼펜하우어가 마치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이건 쇼펜하우의 책 그대로가 아니라 내가 쇼펜하우어의 "당신의 삶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까"의 말에서 연장하여 생각한 문장들이다)


당신은 인생이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냐? 고 묻고 싶겠지.


하지만 왜 당신의 인생만 힘들지 않아야 합니까?


어떤 행/불행은 개인의 의지나 노력과 상관없이 찾아오는데

그게 당신만을 비켜가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그저 제삼자의 입장에서 불행을 관망할 자격을 갖고 있습니까? 


이 생각의 말미에서 나는 생각의 회로를 바꿨다.

그리고 평상시 매일 하던 대로 감사일기를 쓰고,

캐리어에 짐을 쌌다.


가급적 나는 매일 내가 지향했던 긍정의 회로와 셀프치유의 습관을 유지하려 했다.

나는 문제의 일부가 아닌, 해결책의 일부가 되고 싶었으니깐.


내가 매일 쌓아왔던 일상의 힘이 의도치 않았던 일탈을 정상궤도에 돌아오도록 잡아당겼다.


그것은 마치 중력 같았다.


일상의 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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