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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멘 Nov 20. 2024

작은 아이가 따라온다

88번의 승리의 기적

미국 대학농구에서 88연승을 이끈 전설의 감독이 있다.

바로 UCLA 농구팀 존우든 감독.


그는 감독 부임 전 친구에게 시 한 편을 받았다.

우든의 첫아들이 태어난 걸 축하하는 시였다.

모래 위에 아빠 발자국을 따라 뛰어오는 아들의 사진과 함께.


"나는 신중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작은 친구가 나를 따라오거든요.

나는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없어요.

아들이 같은 길로 빠질지도 모르니까요.

나는 절대 아들의 눈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들은 내가 무얼 하든 보려고 하거든요.

그는  나처럼 될 거라고 말합니다.

나를 따라 하는 저 작은 아이가."


시를 읽고 나니, 어쩌면 그의 기적은 그의 아들이 만든 기적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주 사소한 기적의 비결을 오늘 아침 깨달았다.


이건 아주 사소해서 뭐 이런 걸 글로 작성하고 발행하나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게 나에게는 거의 매일 눈뜨자마자 일어나는 일이므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아들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걸친 지대한 일이기도 하다.


아들은 새벽형 아이다.

아주 어릴 땐 4시 반 기상을 자주 했고,

세돌이 지나자 드디어 6시 이후 기상을 해주었다.

나는 매일 5~6시 사이 뒤척이는 아이를 느끼며 인상을 찌푸렸었다.


속으로 빌었다.

'제발, 일찍 일어나지 않기를'


기어코 또 일찍 일어난 날, 내가 아들에게 하는 첫마디는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다.


1절은 내가 하고, 2절은 남편이 한다.

아이에겐 도돌이표 같았을 거다.


오늘이 그날이었다.

6시 반쯤 일어나던 아이가, 갑자기 5시 반쯤 일어나서 "언제 나갈 수 있어?"를 계속 묻는다.

"새벽이야. 아직 잠잘 시간이야. 해 뜨려면 멀었어."

나는 최대한 무미건조하게 말하려 노력했다.

아이에게 등을 돌린 채.


그러다 문득 어제 일이 떠올랐다.

어제 별거 아닌 일로 아이에게 화낸 일.

내가 피곤해서 그랬음을 알아차린 후 반성문을 썼던 일.

https://brunch.co.kr/@drishiti/176

그리고 오늘 아이는 어린이집 소풍을 가는 날임을 상기했다.


나는 아이를 향해 다시 등을 돌렸다.

그리고 아이를 한번 안아주곤 함께 일어났다.


더 이상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라고 묻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답이 없는 질문임을 안다.

그냥 내 불편한 감정의 푸념임을 안다.


어김없이 남편도 어두컴컴한 거실로 나오며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첫마디를 던졌다. 아마도 세 번쯤.

그러고 보니 이 무의미한 질문은 그냥 스스로 이른 아침을 받아들이기 위한 습관 같은 듯하다.


제삼자의 입장으로 듣고 있자니 이 습관적 질문이 아이에게 건네는 스트레스임이 느껴졌다.


"오늘 소풍이라 일찍 준비하고 가려고 일찍 일어난 거야, 그렇지?"

나는 아이에게 되물어줬다.


"맞아"

아이가 환히 웃으며 대답했다.


존 우든 감독이 받은 시를 빌어, 나도 적어본다.


내가 하는 말이, 아이가 하는 말이 된다.

내가 는 표정이, 아이가 짓는 표정이 된다.

내가 향하는 방향이, 아이가 향하는 방향이 된다.    

내가 생각하는 관점이, 아이가 생각하는 관점이 된다.


새벽녘 벌어지는 사건은 바꿀 수 없다.

바꿀 수 있는 건 나의 말, 표정, 방향, 관점뿐이다.

그리고 그건 아이의 모든 것을 바꾼다.


내가 존 우든 감독처럼 농구팀을 88번 승리로 이끌 순 없겠지만,

매일 눈뜨는 365일의 아침 중 88번의 변화는 이끌 수 있다.

어쩌면 88연승을 깨는 기록을 세울 수도 있다.


내년엔 365일 '다정한 아침 맞기'를 첫 번째 변화의 목표로 삼아야겠다.


그런데 이 변화의 비결은 사실 아이가 없어도 마찬가지다.

내 안의 작은 아이는 누구나 갖고 있으므로.


"나한테 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싶은 내면의 아이.

그 아이는 결국 내가 만들기 때문이다.


그 내면의 아이가 따라오는 건 바로 나다.

그 아이가 어떤 길을 따라오길 바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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