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의 대화> 4
"엄마, 눈이 엄청 많이 온다"
"그러네,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그런가. 아니야, 렛잇고가 마법 부린 거야"
"아~렛잇고? 엘사 여왕님 말이지? 그러네~엄마도 마법 부릴 수 있으면 좋겠다"
"왜?"
"엄마 더 예쁘게 변신하는 마법 하려고, 준이는? 어떤 마법 하면 좋겠어?"
"음.. 짜증 안내는 마법! "
"응? 누구?"
"엄마 짜증 안 내는 마법. 히히~"
네, 저는 그렇게 말을 잃어버리는 마법에 걸렸습니다.
아이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짐작이 갔습니다.
그날 아침 아이가 "엄마 배고파" 하길래 후다닥 아침을 차렸는데,
막상 밥상 앞에서 딴짓하며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모습에 마녀가 됐습니다.
무시무시한 눈치 벼락과 잔소리 폭풍을 부리는 서쪽마녀.
아이는 울먹거리며 억지로 밥을 먹었고,
결국 저는 "다 먹었음 그냥 내려가" 해서 그렇게 아침이 종료.
그런데, 저도 참 이해가 안 가는 게 제 입입니다.
1절만 하면 될 것을 왜 2절, 3절, 4절까지 하고 도돌이표까지 붙여서 되풀이할까요?
평상시에는 본론만 짧게 말하는 걸 선호하고,
어릴 때도 엄마 잔소리 안 들으려는 이유가 스스로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했는데요.
어쩌다 잔소리 랩을 하는 엄마가 됐을까요.
아이에겐 그 모두가 그냥 '짜증'으로 들릴 텐데요.
많은 부모가 자녀를 위해 무엇이든 하려고 하지만,
한 가지 허용하지 않는 것은 자녀가 자기 자신으로 살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뱅크시, 영화감독)
그건 아마도 제가 바라는 아들상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혼자서 밥도 끝까지 잘 먹고, 엄마와의 약속을 잘 지키고, 스스로 무엇이든 노력해서 해내는 아이.
쓰고 보니 저는 아이를 낳은 거지 신을 낳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역시, 쓰고 봐야 합니다. 써야 압니다. 나의 자만, 오류를)
그런 이상적인 아들상에 맞지 않는 상황에서 저는 짜증을 냅니다.
있는 그대로의 아이 vs 상상 속의 아이 사이의 인지 부조화를 스스로 견뎌내지 못해서이기 때문이겠죠.
제가 아이에게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약속'입니다.
"엄마는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 엄마는 엄마와의 약속도, 준이와의 약속도 꼭 지킬 거야."라는 말을 거의 매일 합니다.
이 말의 배경에는 '내 아들은 꼭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어야 해'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싫어하거든요.
스스로와의 약속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저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신도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아닙니다.
생각해 보니, 약속이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는 건..
'아이가 약속을 지킬까? 안 지키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 때문인 듯합니다.
믿지 못하는 마음이요.
하지만 아이는 저보다 기억력이 좋습니다.
오늘은 이랬다, 내일은 저랬다 하는 엄마에게 "엄마, 이거 이렇게 하기로 했잖아?"하고 지적도 할 줄 아는 5살입니다.
제가 이랬다 저랬다 할 땐 "엄마, 오늘만이다? " 하고 조건도 확인해 줍니다.
제가 제 아이를 믿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는데 아이가 스스로를 믿고 기다릴 수 있을까요?
제가 제아이와의 약속도 믿지 못하는데, 아이가 엄마와의 약속을 믿을 수 있을까요?
아이를 사랑하면서 믿지는 못하기 때문에 1절, 2절, 3절, 4절, 도돌이표까지 붙여가며 하는 게 바로
잔. 소. 리.(아들에겐 짜. 증.) 되겠습니다.
엄마가 짜증 내지 않는 마법.
그 마법의 가루는 '믿음'입니다.
오늘은, 믿어봅니다.
아이와 저를.
그게 바로 마법의 시작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