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함께 성장하는 마음>

by 카르멘

"아니~~ 지금 놀이할 시간이야. 더 놀고 싶어!"


"엄마, 내일 또 회사 가? 아빠는 왜 또 일하러 가? 난 어린이집 가기 싫은데. 하늘이네는 캠핑 가서 내일 어린이집 안 온대. "


아들이 말합니다.

매일 아침, 아침밥을 먹기 전 놀고 싶은 그의 마음을 뜨겁게 표출합니다.


아들이 묻습니다.

매일 저녁, 엄마 아빠가 왜 매일 일하러 나가는지에 대한 그의 의문을 송곳니처럼 드러냅니다.


저는 항상 대답이 궁색했던 것 같습니다.

그럴듯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저 "지금은 아침을 먹는 시간이야. 빨리 와 늦겠다"는 빨리빨리 카드를 꺼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일해야 해."라는 반쪽짜리 진실의 카드도 꺼냈습니다.

(일을 하지 않는 엄마, 아빠들도 아이 주변에 있으니까요)


아주 단순한 이 두 질문이 거의 매일아침, 매일 저녁 이어지면서 엄마의 번민이 시작됐습니다.

뭐가 진짜지? 뭐가 진짜 대답이지? 하고요.


오늘은 이 질문에 대해 제가 아닌 다른 엄마 작가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엄마가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요.



<요즘엄마의 책육아에 대하여>


준이 엄마, 이렇게 말해도 될까요?

즉흥육아와 책육아 사이에서 고민이라고 했죠?


왜 고민할까요?

책에서 배운 대로 육아를 해야 아이가 잘 될 거라고 믿기 때문이라고요?

책에서 '이래야 해, 저래야 해' 하는 대로 현실에서 안 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낄 정도로요.


그런데 준이엄마, 진짜로 그렇게 믿고 있는 걸까요?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육아를 하면 아이가 진짜 잘못되는 걸까요?

물론 발달상황에 대한 지식 등은 필요해요.

하지만 준이엄마는 이미 체계나 지식이 없는 엄마가 아니에요.


모든 걸 책대로 해야만 아이가 잘 큰다고 맹신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우선 그 질문을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해보길 바라요.


자, 구체적인 질문으로 들어가 볼게요.


<아침밥에 대하여>


준이 엄마, 대단해요!

젊은 엄만데 '아침밥은 꼭 먹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네요.


그런데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서 딴짓하고, 아침밥을 먹기 싫어해서 힘들다고요?

빨리 먹고, 엄마도 빨리 출근해야 하는데 말이죠.

신발도 빨리 신고, 알아서 착착착해 주면 좋겠는데 말이죠.


처음 질문에서 이어가 볼까요?

육아를 하는데 지식도 필요하죠. 육아서에서 그런 지식을 많이 얻었을 거예요.

그런데 혹시 이것도 알고 있나요?


4살~6살 아이들은요 '상호작용'을 시작해요.

엄마, 아빠, 친구와의 상호작용뿐 아니라 모든 세상과 상호작용 해요.

신발끈 매는 법, 밥 먹는 법을 배우면서 신발과도 밥과도 상호작용 해요.

바로 이 상호작용 속에서 어떤 '자극'이 오느냐에 따라 '트라우마'도 만들어져요.


밤은 무서워, 밥은 지겨워 처럼요.


엄마는 부정적 자극을 최소화해서 트라우마를 만들어주지 않고 싶겠죠?


자, 이제 지식이 아닌 '지혜 육아'에 대해 말해볼게요.

엄마는요 아이의 '상호작용'을 인정해줘야 해요.


예를 들어볼까요?

아이가 아침 식사시간에 밍기적거려요.

신발이 잘 안 신겨지면 신발을 내던져요.

그럼 아이는 무엇과 상호작용 중일까요?


밥, 신발과요.

그 상호작용의 현상을 인정해 주세요.


"준아, 너는 밥을 천천히 먹고 싶지? "

"준아, 신발이 잘 안 신겨져서 속상하지?"


엄마의 말을 먼저 뱉지 마세요.

엄마는 아마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빨리 먹어야지. 빨리 신어야지. 빨리 가야 돼."라고요.


물론 엄마입장도 말해야지요. 하지만 아이의 상호작용을 먼저 인정해 주고, 말해주세요.


"하지만, 지금 엄마는 출근해야 하니까 밥을 정해진 시간에 먹자."

"하지만, 신발은 신고 나가야 하니까 신발을 다시 주워서 엄마랑 함께 신어보자."


단, 한 문장으로 짧게 말해주세요.

5살 아이는요 10초 이상 집중하지 못해요.


엄마가 '아침밥'에 대한 절대적 가치를 부여했어요.

이때 2가지 전제가 필요해요.

아이에게 전날 저녁 너무 배불리 먹이진 않았나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밥을 먹이진 않았나요?


두 가지가 아니라면, 아이가 아침에 배고프지 않아서 밥에 집중하지 않는 건 아닐 거예요.


무언가 다른 것에 집중해 있기 때문에 다른 것과 상호작용 중이므로 아침밥을 빨리 먹지 않는 게 아닐까요?

그게 뭘까요?

놀이죠!

너무나 아이다운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기상 1시간 후에 아침을 먹나요?

그렇다면 놀이시간이 충분해 보일 거예요 엄마에게는.

그런데 아이는 "놀이시간의 끝=식사의 시작"으로 생각할 수 있어요.


순서를 한번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기상 후 30분간 놀이를 하고, 식사를 하는 거예요.

그리고 다시 놀이를 30분간 하는 거죠.

그전에 준이에게 꼭 말해주세요.


"엄마가 생각해 봤어. 왜 아침밥 먹는 게 힘들까?

놀고 싶어서 그런 걸까?

놀이시간이 끝나버려서 아침을 먹기 싫은 걸까?

그럼, 밥 먹고 또 놀면 어떨까?"


아침시간에 이 이야기를 할 필욘 없어요.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말해주세요.

그리고 꼭 말해주세요.


"준이가 그렇게 해주면, 엄마를 너무 많이 도와주는 거야.

준이 덕분에 엄마의 하루가 너무 편해져서 좋아."


이때 엄마의 태도는요?

아이의 눈높이입니다.

무릎을 꿇고 아이눈을 보며 말해주세요.

단, 한 번에 이 이야기가 아이를 바꿀 거라 생각하진 마세요.

어른도 안 바뀌는걸요.

약속을 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마다 무릎을 꿇고 상기시켜 주세요.

서로의 약속을.


우리는 '모 아니면 도'로 자꾸만 이분법적 사고를 해요.

육아는 더더욱 그런 사고로는 풀어나갈 수 없어요.

이게 안되면 또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되는 거예요.


제 이야기를 해드릴까요?

집에서 2시간 걸리는 중학교를 아이가 간다고 했어요.

좋다, 하지만 6시 반 셔틀버스를 타려면 5시 반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어야 한다고 했죠.

좋다, 아이도 수긍했어요.

하지만 매일 잘 됐을까요?

아닌 날도 있었죠. 그러면 저는 아침밥을 제시간에 일어나 먹지 못하면, 셔틀을 탈 수 없다고 했어요.

약속을 지키고 아이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 하루 결석하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니까요.

아이는 그러면서 깨달았어요.

"우리 엄마는 말하는 대로 지키는 사람" 이라고요.


이런 문제, 저런 문제 아이 키우면서 왜 없겠어요?

계속 시도해 보는 거예요. 그런데 일주일 시도해 보고 절대 안 된다, 손사래 치는 엄마들이 많아요.

저는 그런 엄마들에게 말해요.


"죄송하지만, 아이가 엄마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 고집이 엄마 신념을 이긴다는 걸 아이가 알고 있어요."


<관점에 대하여>


준이엄마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스스로 밥을 안 먹어요'라는 말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요?


관점요.

부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아이가 스스로 밥을 먹지 않는 날이 있죠.


그런 날은 "오늘은 엄마가 먹여줘야지. 내일은 준이 혼자 먹어보자" 하고 약속해 보세요.

"너 왜 안 먹어? 너 진짜 문제야" 하지 말고요.

그럼 엄마의 부정 프레임이 아이에게도 그대로 씌어져요.


밥=엄마의 짜증, 화.


준이엄마, 제가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18살이면, 아이들은 엄마 곁을 떠나요.

몸은 곁에 있어도 더 이상 엄마 품에 없죠.


"준이가 18년 동안 엄마와 쌓은 습관으로 몇 년을 더 살아갈까요?"


타임스에 따르면 2019년 이후 태어난 아이들은 142세까지 산대요.

준이는 21년 생이죠? 그럼 최소한 100년을 더 살아가는 거예요. 그 습관으로.


"그 이후의 삶 속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 엄마를 찾아오길 바라세요? 아니면 엄마를 찾지 않길 바라세요?"


아이들이요 엄마가 먹여줘도, 계속해서 시도해 보자는 말을 하면 스스로 알아요.

스스로 먹어야 한다는 걸요.


그런데 내가 아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어떤 힘든 일이 있을 때 아이가 엄마를 찾을까요?

밥 먹을 때도 엄마 눈치를 보는 아이가?


물론 단호함도 필요하죠. 모든 걸 허용해 주라는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엄마의 관점이 너무 밥=문제=부정의 프레임에 갇혀버리면 아이도 거기에 갇힐 수밖에 없어요.


<회사 나가는 일에 관하여>


준이 엄마, 대단해요!

16년 동안 회사를 다녔고 아이를 낳고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이어가는 것도요!

아이가 요새 어린이집 가는 거 싫어한다고 했죠?

엄마랑 아빠는 왜 자꾸 회사에 일하러 가느냐고 묻는다고요?


그런데, 아빠의 대답이 엄마 마음에 차지 않죠?

"회사에 나가 돈 벌어야 장난감 사주지"라는 답변이 궁색하다고요.


맞아요. 가난한 마인드를 물려줄 필요는 없어요.

물론 그 말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말해주면 어떨까요?


아침밥하고 똑같아요. 아이의 상호작용을 인정하고, 엄마의 의견을 말해주세요.


"엄마가 일 안 하고 빨리 어린이집 하원하는 아이들이 부럽지?

엄마도 준이의 마음 잘 알아.

그런데, 엄마는 꿈을 찾기 위해 일을 하는 거야.

준이도 경찰관이라는 꿈을 이루고 싶지?

엄마도 그래. 엄마가 꿈을 찾고 이루기 위해 지금은 회사에 다녀야 해 "


엄마는 지금 일이 소위 먹고사는 직업일 뿐, 꿈을 이룬 일은 아니라고 말했어요.

사실 그대로 말하면 궁색하다고요.


엄마는 참 솔직하네요.

거짓말로 아이에게 대답을 못해주니까요.

그 진실성이 준이엄마가 갖고 있는 무기가 될 거예요.


그러고 보니, 엄마의 관점이 여기서도 드러나네요.

아이의 "엄마, 회사 왜 가?" 하는 질문을 엄마가 부정으로 들은 건 아닐까요?

아이를 매일 어린이집에 일찍 그리고 늦게까지 보내야 한다는 죄책감이 투영된 부정의 관점.

질문 자체를 엄마가 부정으로 바라보면 답변도 부정적이 될 수밖에 없어요.


질문도 긍정으로 바라보세요.

'꿈에 대해 말해주고 현실에 대해 이야기해 줄 기회'로요.


꿈을 찾고, 찾아서 이루기까지 우리는 생계를 이어가야 하죠.

그게 준이 엄마가 회사를 다니는 이유이고요.


거짓말이 아니죠?

아이에게 현실을 인식하게 해 줄 필요는 있어요.


다만 아이의 질문을 막지는 마세요. 언제든 그 질문을 다시 꺼낼 수 있어요.

아이에겐 너무나 당연한 의문입니다.

그때마다 말해주세요.

엄마의 진실을.


알아요. 이 모든 걸 관통하는 '관점 바꾸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하지만 어렵다고 못할 일은 아니죠.

그래도 해야죠.

우리가 왜 고민을 해요?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잖아요.

못할 거 없어요, 엄마들은.


<관계에 대하여>


준이엄마, 제가 딱 한마디 처방할게요.

육아서, 심리서적은 이제 그만 읽어도 돼요.


너무 많은 책을 읽고 정보가 얽혀서 오히려 독이 되고 있어요.

일정 정도의 지식만 알고 있으면 되는데 너무 많은 지식과 정보가 오히려 엄마의 걱정만 키우고 있네요.


우리 모두는 톱니바퀴 같은 관계를 갖고 있어요.

준이엄마가 친정엄마와 맺었던 관계도 하나의 톱니바퀴예요.

준이엄마가 준이랑 맺고 있는 관계도 또 다른 톱니바퀴죠.

하지만 그 톱니바퀴들이 모두 똑같은 아귀로 맞물려 돌아갈 필요는 없어요.

느슨하게, 빡빡하게 모든 아귀의 밀도가 달라요.

각자의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속도와 밀도는 다른 거예요.

각자가 돌아가고 있다면 된 겁니다.


톱니바퀴에 무언가 걸리면, 그건 그때 가서 해결하면 돼요.

미리 걱정해서 톱니바퀴를 멈출 필요 없다는 말이에요.

서로의 톱니바퀴가 부딪힐까 봐 일부러 톱니바퀴 전체를 옮길 필요 없다는 말이에요.


다만, 그 어떤 문제의 상황을 대비하는 유일한 방법이 하나 있어요.

그 다양한 관계의 톱니바퀴의 중심축이 누구예요?

교집합이 누구죠?

엄마예요.


엄마가 문제를 직면했을 때 풀 수 있게끔 엄마가 성장해 나가면 됩니다.


"모든 문제의 크기는 나의 크기를 반증한다"


지금 엄마에게 구구단이 문제가 되나요?

안되죠. 하지만 준이에게는 엄청난 문제죠.

내 크기를 키우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아요.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요.

초점은 나예요.

나를 키우면 저절로 해결돼요.


다만 문제가 크는 속도보다 내가 빨리 커야겠죠.

속도경쟁이니까요.


지금 준이엄마는 잘하고 있어요.

체계도 있고 지식도 있죠.

다만, 관점을 변화시켜야 해요.


벽 뒤에 있는 이면을 바라봐서 현상의 전체를 새로이 보는 훈련이 필요해요.


벽 뒤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벽을 통째로 부수진 못하더라도, 금을 내고 구멍이라도 뚫어야 벽 뒤가 보이겠죠?


실금이라도 좋아요.

실금이라도 벽에 가기 시작하면, 물이 한 방울 두 방울 흐르기 시작할 거예요.


얼마 전 아이의 첫 시력검사를 했습니다.

0.8. 시력이 좋은 거라고 하기에 의아했죠.

아이는 눈이 더 좋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의사 선생님께서 7살 정도 되면 1.0으로 시력도 성장할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아, 눈도 성장하는 거구나. 그때 알았습니다.


엄마의 눈(관점)도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18년 후를 내다보려 합니다.

지금의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고, 18년 후의 밑그림으로 보려 합니다.

아이의 질문을 부정으로 듣지 않으려 합니다.

엄마가 먼저 부정으로 단정 짓고 대화하면 그 대화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될 수 없으니까요.


아침밥에서 시작한 제 작은 고민이, 아이의 문제가 아님을 이해합니다.

엄마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문제로 접근하는 게 문제임을 깨달았습니다.


당장의 문제만 매번 급급해서 이 책, 저책 기웃거리다 보면 정작 내가 아이에게 해줄 답을 손에 쥘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는 문제아가 아닌데, 문제를 해결하려는 책만 보니까요.


이렇게 아이를 통해 저를 이해합니다.

저의 문제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엄마가 성장해야 할 동기를 찾습니다.


그냥 41살의 저였으면 성장할 동기를 찾지 못했을 텐데요.


내가 엄마라는 그 존재의 존엄성이 성장의 동력이 됩니다.


오늘 제가 엄마라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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