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유산 프로젝트>
이 글은 앞선 편지에 이은 글입니다.
귀찮다는 게 뭘까?
‘귀찮다’는 형용사로 마음에 들지 아니하고 괴롭거나 성가시다는 사전적 정의를 갖고 있네.
우선 귀찮다의 품사가 형용사라는 건 ‘감정’의 어휘라는 뜻이야.
감정은 주관적이고, 동시에 상대적이지.
그리고 부사가 붙어.
더 귀찮다, 덜 귀찮다, 매우 귀찮다 등등.
마음에 들지 아니한 상태, 괴롭거나 성가신 상황에 대한 감정.
귀찮다는 건 감정이네.
그럼, 귀찮다는 감정은 어떨 때 들까?
조금 더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해해 볼까?
우리 안에 존재하는 ‘귀찮아하는 늑대’에게 먹잇감을 제공하는 건 뭘까?
엄마는 귀찮아 늑대의 먹잇감을 다섯 가지 정도로 꼽아봤어.
엄마가 생각하기에 귀찮은 감정의 첫 번째 먹잇감은, 공포야.
앞으로 닥쳐올 일에 대하여 미리 생각하고 두려워하는 예기공포.
이때 귀찮음의 본질은 '공포'야.
예를 들어, 회사에 가는 게 귀찮은 건 회사에 가서 일어날 일에 대한 공포 때문이지.
공포는 항상 거대한 파도처럼 오지만은 않아. 그냥 언제나 바다에 존재하는 물결 같은 공포도 존재하지.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업무를 맡아야 하는 공포, 내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 공포,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마주해야 하는 공포 등등. 물결의 출렁임 없는 바다가 존재할 수 없듯이 우리의 일상도 이런 일상의 공포들이 늘 존재하고 있지.
만약 네가 내일 아주 중요한 경쟁 PT가 있다면 어떨까?
PT를 준비하려면, PT의 양식부터 발표시간, 대본, 평가자에 대한 분석 등 해야 할 게 아주 많을 거야. 그런데 막상 하려니 귀찮은 감정이 들 수 있어. 그 경쟁 PT의 결과가 너에게 중요한 만큼 결과에 대한 공포가 너를 귀찮게 하는 거지. 공포가 귀찮음의 먹이를 제공하는 거야.
일상의 사소한 공포들은 바로 우리의 손과 발을 묶어버리는 귀찮음이란 그림자가 된단다.
태양이 떴음을 알지만, 그늘에 머물게 하는 그림자. 손과 발을 움직여야 하지만, 손과 발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그림자. 무언가 새로 시작해야 하지만, 시작을 머뭇거리게 하는 그림자.
"귀찮은 것은, 귀찮은 문제를 무서워하는 일종의 공포다" (주 2)
귀찮다는 감정의 두 번째 먹이는 뭘까?
현실에 대한 ‘회피’를 선택할 때 귀찮음은 자라나.
타조효과라고 알고 있니? 육지에서 가장 큰 새 타조는 날지 못하지. 대신 엄청난 달리기 실력을 갖고 있어. 하지만 타조가 위험을 감지하면 어떻게 할까? 모래더미에 목을 묻고 적을 회피하지. 타조는 왜 빠른 달리기 실력을 갖고도 뛰지 않을까? 타조가 뜀박질의 귀찮음을 느끼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적을 마주하는 상황을 직면하지 않는다는 거야.
우리는 언제나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마주하게 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혹은 최소한 뒷걸음질 치지 않으려면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거기엔 우리가 기존에 하지 않았던 노력이 필요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익숙함에 의존하고, 현실에 안주하려 하지. 변화가 필요할 때, 혁신이 필요할 때 귀찮음을 느껴.
예를 들어, 정년 이후에 경제적 소득이 필요하다는 걸 대부분 알고 있지만 노후준비를 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지. 왜냐하면 현재의 소득활동 외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하거든. 전문자격증을 딴다든지, 어학을 공부한다든지, 재테크 공부를 위해 온라인 강의를 듣는다든지 선택지는 많지만 무엇 하나 끈질기게 하는 사람은 드물지. 귀찮기 때문에? 아니, 사실 그 근본에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직시하지 않아서지. 그냥 막연히 문제가 될 것 같다는 느낌, 아마 무언가 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는 짐작에 근거하다 보니 모든 추가적 노력이 귀찮은 거야.
자, 이 회피성향은 세 번째 먹잇감인 불확신한 목표와 이어져.
결국, 내가 노후에 경제적 빈곤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어떤 목표를 세워야 할까?
목표는 비전이나 미션이 아니지. 구체적이고 가시적이어야 해. 예를 들어 수도권 내 20평대 아파트를 자가로 보유하고, 근로소득과 불로소득의 비중을 3:7까지 마련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불로소득은 주식, 부동산, 펀드 등 얼마만큼의 비중으로 투자해야 한다 등.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픈 목표가 세워지지 않으면 그 목표를 위해 해야 하는 모든 것들이 그저 귀찮다는 감정에 잠식당하고 말겠지.
귀찮음의 네 번째 먹이는 낮은 자존감 때문이야.
‘내가 뭐라고?’ ‘이거 해서 뭐 하겠어?’ ‘해봤자 안 될 텐데’ ‘기대는 상처를 부를 뿐’ 등.
이 사고의 회로에 떡밥을 던져주는 건 뭘까? 바로 낮은 자존감이야.
스스로는 존중하지 않는 ‘자기부정’에서 시작되는 마음이지.
모든 시작을 귀찮다고 느끼게 하는 블랙홀 같은 마음. 보통 이런 사람들은 무기력증을 달고 살아. 이불을 박차고 나오는 것조차 귀찮다고 느끼고, 기회가 찾아왔어도 기회를 잡으려 손을 뻗는 것조차 귀찮게 느껴지지.
이 악순환은 때문에 귀찮음 때문이라기보단, 자존감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해.
다섯 번째는 완벽주의 성향 때문이야.
사실 이 완벽주의는 앞서 이야기한 낮은 자존감과 달리 ‘자기자만’에서 시작되지.
완벽주의는 무결점에 대한 갈망이야. 자신의 선택과 행동, 결과에 대한 100%의 만족과 지지를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하지만, 하늘 아래 완벽한 게 있을까? 엄마가 생각할 땐 ‘완벽한 건 하늘아래 없다’는 생각 하나만이 완벽한 거 같아. 완벽히 옳고 그른 기준이 없고, 완벽히 좋고 나쁜 기준이 없기 때문이야.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관점과 기준은 끊임없이 변화하지.
그러니 그 변하는 모든 기준과 잣대에 맞춰 계속해서 완벽함을 추구한다? 그 마음은 곧 완벽하지 않을 바에야 시작도 하지 말자는 마음의 씨앗이 되지. 처음부터 도화지에 원을 완벽하게 그리는 사람은 없어. 하지만 일단 연필을 들고, 도화지에 선을 그어야 그 어떤 원이든 그려지는데 말이야.
어때?
엄마가 말한 귀찮음의 다섯 가지 먹잇감.
이 중 하나라도 갖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누구에게나 그림자는 있잖아.
살아있는 존재에겐 반드시 그림자가 존재해.
바로 이 귀찮음이란 그림자도 마찬가지지.
결국 우리는 공포, 회피, 불확실한 목표, 낮은 자존감, 완벽주의 등 수많은 이유에서 파생되는 그림자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하겠지?
그 방법에 대해선 다음 편지에서 나눠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