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효능감
인간의 성장은 능력에서가 아니라, 능력을 믿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알버트 반두라)
어제 후배가 조심스레 물었다.
“선배님, 요즘 별일 없으시죠?”
나는 웃으며 답했다.
“네, 큰 평화를 위해 매일 작은 전쟁을 치르는 중이죠.”
여름 끝자락, 내 체력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출근 전까지 치러야 할 작은 전쟁이 버겁고,
퇴근길 집으로 돌아가 맞이할 또 다른 전쟁이 두려웠다.
이 모든 이유는 단순했다.
내 몸이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를 붙잡는 힘이 있다.
최근 내 마음을 지키는 단어, 자기효능감이다.
처음에는 ‘뇌육아’ 책에서 알게 된 말이었지만, 곧 깨달았다.
이 힘은 아이뿐 아니라, 나에게도 절실하다는 것을.
반두라는 자기효능감을 이렇게 정의했다.
“특정 상황에서 요구되는 행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념.”
자존감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자기효능감은 “나는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실패를 두려움이 아니라 배움으로,
도전을 무모함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바라보게 한다.
성장은 능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을 믿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워킹맘의 하루는 늘 두 세계 사이에서 흔들린다.
일과 육아, 서로 다른 풍경이 맞닿으며 나를 중심 잡게 만든다.
가끔 불안이 몰려온다.
‘정말 이 무게를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때 나를 지탱하는 건, 자기효능감이다.
나는 이 힘을, 의외의 곳에서 배웠다. 필라테스다.
핵심은 코어와 저항.
코어는 단순한 복부 근육이 아니다.
배꼽 주변, 골반과 척추를 감싸는 보이지 않는 근육들이 모여 내 몸의 균형과 힘을 지탱한다.
코어에 힘을 주면 척추가 곧게 서고, 상·하복부가 단단해진다.
숨을 내쉴 때 배가 조여 중심이 살아나고,
팔과 다리의 움직임이 단단한 선 위로 흐른다.
마치 내 안에 에너지 상자가 열리는 느낌이다.
이 작은 중심이 흔들리지 않을 때, 몸 전체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저항은 단순히 근육을 쓰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힘—중력—에 맞서 몸을 버티는 힘이다.
중력은 언제나 우리를 아래로 끌어당기지만,
그 무게에 저항하며 근육을 조율할 때, 몸은 비로소 자신이 가진 힘을 깨닫는다.
팔을 들어 올리고 다리를 들어 올리는 순간, 머리가 무겁고 어깨가 말리며 손끝까지 떨리지만, 그 긴장과 떨림 속에서 근육은 단단해지고 자세는 안정된다.
잠깐 편하게 누운 자세보다, 떨리고 흔들리는 순간이 내 몸을 단단하게 만든다.
코어와 저항은 서로를 보완한다.
코어가 단단하면 저항을 버틸 수 있고, 저항을 견디면 코어가 더 강해진다.
숨을 길게 내쉬며 몸을 조율할 때, 나는 내 안에서 힘이 자라고 있음을 느낀다.
그 힘은 단순한 근육이 아니라, 나 자신을 믿는 힘,
즉 자기효능감의 원천이 된다.
아이를 키우며 일터를 지키는 삶도 다르지 않다.
내 코어는 “나는 감당할 수 있다”는 마음이고,
수많은 난관은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저항이다.
몸과 마음은 서로 닮는다.
코어가 단단하면 자세가 흔들림 없이 서듯, 자기효능감은 삶의 균형을 곧게 세운다.
저항을 견디면 근육이 자라듯, 육아와 일의 무게 속에서 마음도 단단해진다.
아이가 웃으며 자라는 순간, 나는 안다.
그 웃음은 단지 아이의 성장이 아니라, 엄마이자 일하는 나의 성장을 증명하는 빛임을.
필라테스와 육아, 서로 다른 풍경 같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버티는 힘은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서 비롯되고,
저항은 나를 꺾는 것이 아니라 길러내는 방식이다.
작은 호흡, 작은 동작, 하루의 선택들이 모여 강한 나를 만든다.
그 힘으로 오늘도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는 균형을 이어간다.
삶이라는 긴 호흡 속에서, 자기효능감이라는 보이지 않는 코어가 나를 굳건히 지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