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의 질문
우연히 어린이집 하원길, 아이의 원장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워낙 파워 E형이신 원장님이라 오늘도 풍성한 대화가 예상됐지만, 오늘 주제는 전혀 예상 밖이었죠.
아이 어린이집이 뉴스에 살짝 비친 날, 한 달쯤 지나 원장님이 물으셨습니다.
“어머님, 어떻게 뉴스에 나오셨어요?”
왠지 모르게 저는 머뭇거리다 대답했습니다.
“제가 책을 내게 돼서요…”
“책이요? 전자책 말고 종이책요?”
“아, 네네. 둘 다 냈어요.”
“아니, 근데 왜 홍보를 안 하세요? 부모교육 때 소개할 자료로도 쓸 수 있는데, 알려주셔야죠! 제목이랑 사이트 좀 알려주세요!”
제 이름 석자로 조금은 익숙해진 ‘작가’라는 명함이, 왜 아이의 보호자, 엄마라는 입장에서는 머뭇거리게 되는 걸까요? 아마 제가 사는 삶을 아이의 선생님에게 모두 보여줘도 괜찮을까 하는 마음 때문일 겁니다.
‘혹시 잘못 쓴 건 없을까?’
‘섣부르게 써서 아이 선생님에게 안 좋은 인상을 주진 않을까?’
결국 모든 걱정은 아이에게로 돌아올 것 같다는 기우 때문이겠죠. 게다가 매일 마주치는 다른 부모님들 입에도 오르내리지 않을까, 괜히 신상을 다 노출해서 아이에게 좋을 게 있을까 싶은 번민과 걱정도 샘솟습니다.
사실, 저는 아이를 낳아서 이 책을 썼습니다.
아이와 ‘엄마’라는 삶이 없었다면, 아마 쓰지 못했을 글들입니다. 그럼에도 아이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선뜻 책을 내놓지 못하는 건, ‘부모’라는 이름의 무게가 ‘작가’라는 이름의 무게보다 더 크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원장선생님과의 대화를 가만히 듣던 아이가 묻습니다.
“뭐를? 원장선생님이 뭐 때문에 그러는 거야?”
“아, 엄마 책. 원장선생님께서 궁금해하시대.”
아이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친구들이 있는 놀이터로 킥보드를 타고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어느 날은 아이가 손바닥에 작은 색종이 책 세 권을 펼쳐 보이며, “나는 세 권이나 썼어” 자랑하더라고요. 무슨 말인가 들여다보니 종이접기는 아이가 하고, 글씨는 담임선생님이 써주신 듯했습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인지라, 종이접기 시간에 선생님에게 여러 이야기를 써달라고 부탁했나 봅니다.
그래서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엄마가 책 이야기를 하면,
“나는 엄마보다 많이 썼어, 세 개!” 하면서 손가락을 꼬깃꼬깃 접어 세 손가락을 내밉니다.
결국 제 책이 한 역할은, 아이에게 ‘작가’ 그리고 ‘책’이라는 개념을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엄마가 작가가 아니라면 5살 아이가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을 테고, 책을 쓴다는 행위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겠죠.
그런데 정말 제 책이 어린이집 부모교육에 쓰일 만한 책일까요?
사람마다 입장이 다르고, 의견도 다르겠죠.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배 아픈 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책을 내기 전, 스스로 자문자답 인터뷰를 해본 적이 있습니다. 혼자 상상 속에서 북콘서트를 열고, 악성 댓글에 어떤 답을 해줄까 공상하기도 했죠.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해석은 독자의 몫, 해설도 독자의 권리”
저는 책을 쓸 뿐, 읽는 것은 독자의 몫이자 권리입니다. 제 책이 어떻게 쓰일지도 제가 결정할 수 없죠.
그리고 제가 ‘작가’라는 이름으로 살아보기로 마음먹고, 올해 낸 두 권의 책
<빽 없는 워킹맘의 직장 X육아 생존비책>과 <엄마의 유산: 우주의 핵은 네 안에 있어>는 모두 ‘엄마’라는 키워드로 엮어낸 책입니다. 지금 제 삶에서 ‘엄마’라는 역할이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겠죠.
그 과정에서 제가 인세보다 더 값지게 배운 것은 두 가지입니다.
엄마나 아빠가 꿈을 꾸지 않으면서 아이에게 꿈꾸라고 하는 건 위선
엄마나 아빠가 책을 읽지 않으면서 아이가 책을 읽기 바라는 건 허상
어쩌면 이 두 교훈이, 제 책 보다 더 가치 있는 부모교육의 메시지가 될 수도 있겠네요.
사실 책을 쓰는 과정은 생각보다 고단했습니다.
글 한 줄 한 줄을 쓰면서 아이가 잠든 뒤, 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했죠. 그리고 공저작업에 참여할 땐 줌회의를 하며 옆에 있는 아이와 남편 눈치를 봐야 해서 마음이 항상 불편했습니다.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 가족과의 식사,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순간들 사이로 글을 끼워 넣는 일은 늘 마음 한편이 불안한 일이었죠.
‘이 시간을 아이와 더 보내는 게 좋지 않았을까?’
‘좋은 엄마, 아내가 되기 위해 글을 줄여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고민을 할 때마다 저는 스스로에게 질문했습니다.
“왜 쓰는 거지?”
답은 명확했습니다. 꿈을 꾸고 이루는 모습을 스스로 증명해내고 싶다, 안 되는 이유 백가지가 아니라 되는 증거 하나가 되는 편에 서고 싶다는 마음.
올해 추석, 시댁에 갔을 때 시어머니께서 물으시더군요.
"책이 몇 권이나 팔렸니?"
사실 정확히 세어본 적은 없습니다. 대략 인세가 얼마 들어왔다는 것만 알 뿐, 그 소소한 금액을 나눠보진 않았거든요.
"어머님, 많이 팔진 못했어요. 그래도 어머님 손주가 책을 아주 열심히 읽는답니다. 책을 좋아해요!"
책을 많이 팔았다는 대답보다, 시어머니 마음에 드는 답변이셨을까요?
제 책의 목적은, 아이에게 엄마가 꿈을 꾸고 있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였어요. 나중에 아이가 커서 포기하고 싶다고 할 때, 꿈은 꿔서 뭐 하냐고 할 때 꺼내쓰려고요.
진짜 그 목표 하나로 버텼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의 책이 나왔다고 알려준 순간, 다섯 살 아이의 눈빛에서 호기심이 섞인 반응이 비칠 때 그 어떤 상보다 값진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에게 보여주는 삶의 태도와 가치가 결국 아이의 세계관을 형성한다는 점.
아이에게 꿈과 독서를 권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 자신이 먼저 꿈꾸고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진짜 부모교육이라는 점을 2권의 책을 쓰며 배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탄생한 책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의 증거가 아닐까요?
하지만 파워 T로서 한마디 덧붙이자면...
어쨌거나 저쨌거나 결과가 있긴 있어야 합니다.
그게 브런치북이든,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그래야 다음 과정을 다시 꿈꿀 수 있을 테니까요?
아들과 남편 눈치, 무엇보다 스스로 보는 눈치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울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겐 아직 82일의 기회가 남아있다니 이 얼마나 다행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