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워킹맘의 수업료'
친구에게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이 있다. 이건 작년 12월, 나와 그 친구의 대화다.
"내년에 퇴사한다고 센터장님께 말씀드렸어.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어. 18년 동안 쌓은 커리어와 연차, 월급을 다 포기하고... 사실 첫째가 여섯 살일 때부터 고민했거든. 내년에 초등학교 들어가니까. 네가 보내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근무 법령도 읽고 또 읽었는데, 우리 센터엔 사용한 사례가 없더라. 솔직히 눈치 보면서까지 쓸 자신이 없어. 정규수업만 하면 1시 전후 끝나고, 방과후 수업 해도 보통 3시쯤이야. 그때부터 여덟 살짜리 아이를 학원 뺑뺑이 시킬 수도 없잖아. 월급이랑 경력이 아쉽긴 하지만..."
"그렇구나... 혹시 친정어머님은?"
"부산에 계셔. 지금까지 살아오신 터전을 다 버리고 오시긴 어렵지. 결국 나나 남편이 케어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내가 하는 게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나을 것 같아. 둘째도 2년 뒤면 또 초등학교 들어가고..."
맞벌이 부부에게는 세 번의 큰 고비가 찾아온다. 아이의 출생 시기, 엄마의 복직 시기, 그리고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시기다.
첫 번째 고비는 출산과 함께 찾아온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배우자 휴가가 이어지고, 약 1년 동안 아이가 없는 삶에서 아이가 있는 삶으로 이행하는 적응의 시간을 겪는다.
그다음, 복직의 벽이 있다. 엄마나 아빠가 육아휴직 1년을 쓰고 돌아오면 아이는 돌을 갓 지난다. 분유를 먹고, 낮잠을 자고, 의사소통이 완전하지 않다. 하지만 회사의 시간표는 어른 기준이다. 어른들의 출퇴근 시간과 어린이집 등·하원 시간은 맞지 않는다. 그 공백을 누군가는 메워야 한다. 아이의 등·하원 도우미를 쓰거나, 부모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근무를 선택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이 제도도 한계를 갖고 있다. 육아휴직 1년, 근로시간 단축근무 1년 합해 고작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육아기 전체를 감당해야 한다. 최소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이름의 제도라면, 적어도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6년의 시간은 활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무급임에도 불구하고 사용자 입장에서 단축근무를 최대 1년까지밖에 사용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미취학 아동을 키우는 나머지 기간 동안은 어떻게 하라는 건지 대안이 없다. 이처럼 저출생 극복을 외치면서도, 정작 부모에게 허락된 육아기의 시간은 여전히 짧고 불완전하다.
그리고 진짜 위기는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찾아온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부모가 늦더라도 기다려준다.
"선생님, 죄송해요. 차가 막혀서요. 금방 갈게요."
이 말이 통하는 곳이다. 하지만 학교는 다르다. 등·하교 시 보호자 또는 보호자 지정 대리인이 원칙이다. 교실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아이의 안전이 부모의 책임이란 말과 같다.
초등학교 1학년의 정규수업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 전후에 끝난다. 엄마아빠의 퇴근시간이 6시~7시 사이라고 가정하면, 최소 4~5시간의 공백이 생긴다. 최근 도입된 늘봄학교는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만들어졌다. 현재로선 초등학교 1~2학년이 주 대상이며, 맞춤형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오후 1시에서 3시 사이 수업을 들을 수 있다. 3~6학년도 늘봄학교를 이용할 경우, 하교 시간이 미뤄진다. 선택형 프로그램이 끝난 뒤 '저녁 늘봄학교'는 학교마다의 수요에 따라 운영여부가 결정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학교별 편차가 크고, 지역·인력·예산에 따라 운영시간이 제각각이다. 늘봄학교가 끝난 이후는 또다시 공백이다.
남은 선택지는 학원이다. 가장 인기 있는 곳은 태권도장. 학교 앞에 버스가 대기하고, 아이들을 픽업해간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3시 이후 2~3개의 학원을 돌며 시간을 채운다. 그 사이 부모는 퇴근을 향해 달린다.
그 시간 동안 대부분의 아이들이 휴대폰을 손에 쥔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연락이 닿기 위해서라는 명목하에.
"애들이 휴대폰 보며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죠.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연락이 돼야 하니까. 초등학교 가면 엄마아빠보다 늦게 등교하고, 먼저 귀가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래서 결국 어른 대신 휴대폰을 쥐어 주는 거예요."
직장동료는 아이 방학 때마다 점심시간엔 영상통화를 한다. 배달앱으로 밥을 시켜주고, 숙제 여부도 영상통화나 CCTV로 확인한다. 방학이 아니더라도 워킹맘들은 근무 중 수시로 복도에 나와 전화를 받는다.
"어머님, OO이가 태권도 버스를 놓쳤어요."
"엄마, 오늘 피아노 학원 안 가면 안 돼? 비 오는데..."
그 순간 엄마는 회사원이자, 즉석 콜센터 상담원이 된다. 이 모든 일은 육아휴직(초등학교 2학년 이하) 및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초등학교 6학년 이하) 사용대상인 부모의 일상 속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워킹맘들 사이엔 불문율이 있다.
"육아휴직은 반드시 초등학교 1학년 때 쓸 기간을 남겨둬야 한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근로자는 유급 1년, 무급 2년까지 가능해 그나마 나은 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기업은 1년이 한계다. 최근 법 개정으로 부모 모두가 육아휴직을 3개월 이상 사용하면 18개월까지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현실의 벽은 높다.
18년의 커리어가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으로 끝난다는 게 맞는 일일까. 아이가 태어나고, 부모가 복직해 경제활동을 이어가고, 학교에 입학하는 과정이 왜 '위기'로 불려야 할까.
아이가 태어나는 건 축복이고, 복직은 성장이고, 학교 입학은 기쁨이어야 하지 않을까. 일하는 부모가 콜센터 직원처럼 하루 종일 전화를 받고, 아이 손에 휴대폰을 쥐어 준다면... 그 옆에 아이를 낳지 않은, 결혼을 하지 않은 후배나 동료들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게 될까.
그들의 시선이 우리나라 저출생의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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