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야기
인간은 광장을 나서지 않고서는 살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인간은 밀실로 물러서지 않고서는 살지 못하는 동물이다.
사람들이 자기의 밀실로부터 광장으로 나오는 골목은 저마다 다르다.
광장에 이르는 골목은 무수히 많다. 어느 사람의 노정이 더 훌륭한가라느니 하는 소리는 당치 않다.
어떤 경로로 광장에 이르렀건 그 경로는 문제 될 것이 없다.
다만 그 길을 얼마나 열심히 보고, 얼마나 열심히 사랑했느냐에 있다. — 최인훈, 『광장』 서문
지난해 책을 내고, 북콘서트를 열고, 시민기자 연재를 시작하면서 내게는 두 개의 직업이 더 생겼다.
무려 6개월 만에 나는 엄마이자 직장인에서 작가가 되었고, 시민기자가 되었다.
내 책과 기사를 본 사람들은 나를 “작가님”이라고 부른다.
돌이켜보면, 나는 이 호칭에 대해 브런치 작가가 된 이후 가장 큰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브런치 삼수 끝에 작가가 되었고, 이곳에서 만난 ‘라라크루’ 작가 모임에서는 서로를 “작가님”이라 부르며 각자의 글과 태도를 존중해 주었다.
연간 한두 번 오프라인 모임에 나갈 때면, 우리는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 그 사람이 쓴 글들이 함께 따라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 말은 곧, 나와 함께 내 글도 같이 들어온다는 뜻이었다.
그때 비로소 나는 ‘작가’라는 호칭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음을 알았다.
왜 처음 작가가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어느 글에 썼듯 “답답해서”였다.
육아휴직 동안 할 말은 쌓이는데 내놓을 창구가 없었고, 마음이 정리되지 않을 때 글로 쓰면 공짜로 청소가 되었다.
스스로 납득하고, 스스로 설득되어야만 움직이는 나라는 사람에게 글은 어쩌면 숙명이었다.
글을 씀으로써 비로소 나 자신이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고백하자면, 나는 유·청소년 시절 이런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글이 말을 따라오지 못한다.’
사람마다 말하기 능력과 글쓰기 능력의 차이가 있을 텐데, 타고난 능력만 두고 보자면 나는 노력하지 않아도 말은 비교적 유창한 편이었다.
하지만 글은 애써 써도 어딘가 깊이가 전해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때문에 약간의 자격지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시만 해도 휘발성 강한 화법보다는 기록으로 남는 논리적인 글쓰기가 더 깊이 있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그저 임기응변에 강한 사람일 뿐인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능력치의 차이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말할래, 쓸래?” 하고 묻는다면 여전히 나는 전자가 더 편한 사람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사회가 내게 새 호칭을 붙여준 건 오히려 후자, 글쓰기였다.
작가는 쓰는 사람이니까.
그러니 참 인생은 아이러니다.
하지만 글은 결국 말이고, 말은 또 글이 된다.
책을 썼기 때문에 북토크라는 자리에서 말할 기회를 얻었고,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꽃피는 3월쯤 또 그런 기회를 얻을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브런치를 통해 제안 메일을 받았는데, 그 씨앗이 정말 발화한다면 브런치에 가장 먼저 쓰고 싶다.
글이든 말이든, 결국 나는 광장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때로는 글이라는 길을 통해,
또 때로는 말이라는 길을 통해.
결국 중요한 건 광장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그렇다면 내게 광장으로 나갈 수 있게 해주는 밀실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건 그저 내 일상일 것이다.
어쩌면 엄마라는 직업, 직장인이라는 직업도 동시에 광장이자 밀실이다.
나는 엄마라는 옷을 입고 육아라는 광장에 서고,
직장인이라는 갑옷을 입고 회사라는 광장에 나가지만,
사실 그 안에서 나는 새로운 밀실로 통하는 길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직장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워킹맘’이라는 소재로 첫 책을 광장에 내놓지 못했을 것이고,
〈워킹맘의 수업료〉라는 기사를 연재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생각해 보면 내 밀실이 광장과 멀리 떨어진 골목 귀퉁이에 있는 건 아니다.
어쩌면 내 밀실들은 광장의 지하 세계에 있는지도 모른다.
광장에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그 기운이 밀실로 스며들고,
햇살이 눈부시면 그 빛 또한 밀실로 내려온다.
그 눈과 비와 햇살로 내 밀실은 채워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가득 차오르면,
그 안에서 다시 광장으로 움트기 시작한다.
떡잎이 돋아나듯이.
어쩌면 우리는 끊임없이 광장과 밀실을 오가며 스스로를 시험해보는 중인지도 모른다.
어떤 길로 광장에 나섰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결국, 돌고 돌아 그 길을 얼마나 사랑하며 걸어왔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브런치북 〈책 쓰고 책 파는 이야기, 책쓰책파〉가 오늘로 30편 연재를 마무리했습니다.
지난해 책 출간과 동시에 시작한 이 기록이,
어딘가에서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싶어 하는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나 힌트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함께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