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에는 화문석과 무문석이 있다. 화문석은 돌에 꽃무늬나 기하학적 문양을 정성스럽게 새겨 넣은 것이고, 무문석은 그저 반듯한 틀만 만든 민무늬 돌이다. 얼핏 생각하면 화문석이 더 비쌀 것 같지만, 실상은 반대다. 무문석이 오히려 더 비싸다. 장인에게 물으니 이유는 간단했다."무늬를 새기는 건 재미가 있어요. 손끝에서 문양이 피어나는 걸 보는 즐거움이 있죠. 그런데 무문석은 그냥 깎고 다듬기만 해요. 지루해서 못 견디겠어요."지루함의 대가가 더 비싼 것이다. (이어령·김지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열림원, 2022)
어느 날 같이 운동을 같이 하게 된 후배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됐다.
"올해는 좀 더 열심히 살아야지."
후배 1이 새해 다짐처럼 말했다. 그러자 후배 2가 여유롭게 답했다.
"대충 살아. 한 2030년 정도부터 2040년까지 열심히 살자."
"왜 2030년부터?"
"딱 떨어지잖아. 그리고 매년 열심히 살 필요는 없어. 10년만 제대로 살면 돼."
꽤 그럴싸했다. 2030~2040, 숫자도 깔끔하게 떨어지고, 10년이라는 기간도 적당해 보였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그런데 문득 계산을 해봤다. 오늘이 2026년 1월 23일이니, 올해는 아직 342일이나 남아있다. 그리고 2040년 1월 1일까지는 무려 122,583시간이 남아있다.
후배는 그 시간을 "대충" 살겠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문득 화문석을 떠올렸다.
내 일상은 대부분 무문석처럼 평평하고 반복적이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출근하고, 저녁을 먹고, 잠드는 날들. 특별한 일도, 극적인 사건도 없는 그저 그런 하루들.
물론 나는 이런 무탈한 날들을 간절히 바라고 바라고 사랑하고 사랑한다.
후배의 말대로라면, 이런 날들은 "대충" 살아도 되는 시간이다. 2030년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대충 사는 날들이 쌓이면, 그건 무문석 같은 삶이 되지 않을까.
글을 쓴다는 건, 그 무문석 같은 날들에 나만의 문양을 새겨 넣는 일이다.
오늘 마신 커피가 유난히 쓰다고 느낀 순간, 운동하며 들은 후배들의 대화, 퇴근길 하늘의 색깔.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닌 순간들이지만, 내가 그것을 포착하고 언어로 새겨 넣는 순간, 그것은 문양이 된다.
물론 기록하지 않고 사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무문석은 화문석보다 실용적일 수 있다. 문양이 없으니 어디든 쓸 수 있고, 눈에 띄지 않으니 오히려 편안하다. 기록하지 않는 삶도 그렇다. 매 순간을 의미화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 수 있다.
2030년 이전까지 "대충" 산다는 것도 어쩌면 그런 선택일지 모른다. 지금은 무문석처럼 민무늬로 살다가, 나중에 제대로 문양을 새기겠다는.
그런데 문제는, 무문석을 만드는 장인이 느끼는 그 "지루함"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일상은 정말로 지루해진다.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시간은 그저 깎이고 다듬어지기만 할 뿐, 어떤 의미도 남기지 못한다. 어제와 오늘이, 지난주와 이번 주가, 2026년과 2027년이 구별되지 않는다.
그렇게 "대충" 산 342일이 모이면, 또 "대충" 산 1년이 되고, 그렇게 5년이 흐르면 정말로 2030년이 온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열심히" 살 수 있을까? 무문석을 만들던 손으로 갑자기 섬세한 문양을 새길 수 있을까?
화문석 장인이 문양을 새기며 느끼는 즐거움처럼, 나는 글을 쓰며 내 일상에 의미를 새겨 넣는 즐거움을 느낀다.
어제의 지루했던 회의 시간도, 글로 쓰면 "우리 회사의 회의 문화에 대한 단상"이 된다. 헬스장에서 우연히 들은 후배들의 대화도, "언제부터 열심히 살 것인가"에 대한 에세이가 된다.
글쓰기는 일상을 재료로 삼아 의미를 조각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단순히 시간을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창조하는 사람이 된다.
2030년까지 남은 122,583시간을 "대충" 살지, 아니면 하루하루 문양을 새기며 살지는 선택의 문제다. 딱 떨어지는 숫자가 주는 안정감도 좋지만, 나는 오늘이라는 돌에 오늘의 문양을 새기는 쪽을 택하련다.
결국 화문석과 무문석의 차이는 가격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같은 돌을, 같은 시간을 대하는 장인의 마음이 다른 것처럼,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도 다를 수 있다.
나는 오늘도 무문석 같은 하루에 작은 문양을 새긴다. 손끝에서 피어나는 언어의 무늬를 보며, 지루함 대신 즐거움을 선택한다.
2030년을 기다리지 않고, 2026년 1월 23일에 문양을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