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와 4분의 3, 그 벽 앞에서

by 카르멘

런던 킹스 크로스 역 9와 10번 플랫폼 사이에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벽이 있다.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고, 아이들은 웃지만, 진짜 마법 세계로 들어가려면 그 벽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야 한다.
머뭇거리면 이마만 찧고 끝난다. 믿고 밀어붙여야만 통과한다.


호그와트 학교로 촬영된 영국 옥스포드 대학교 건물

나는 가끔 그 벽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워킹맘이자 작가로 살아가는 이 자리에서.

지난 한 해, 나는 두 권의 책을 냈다.

6월과 7월, 연달아 서점에 내 이름이 찍힌 책이 놓였다.


그렇다면 내 작가로서의 ‘순수입’은 얼마일까.
그러니까 종이책 판매로 받은 10%의 인세는?

숫자로만 보면 이건 거의 ‘현타금’이다.
현실 타격이 오는 금액. 그에 들인 시간과 마음과 체력을 따지자면 마이너스 수익률이라는 말이 과하지 않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이 금액을 미리 알았어도 나는 책을 냈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 하나 더 이상한 건,
이렇게 척박한 만주벌판 같은 출판계에
오늘도 신간이 쏟아져 나온다는 점이다.


도대체 누가, 왜 책을 낼까.

생각해 보면 작가만 그런 게 아니다.
요즘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1위라는 유튜버도
자기가 만든 영상으로 직접 돈을 벌지 않는다.
영상은 입구이고, 광고·강의·브랜드가 진짜 수익이다.


예전에는 책이 상품이었다면
요즘의 책은 어쩌면 포트폴리오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풍경이
해리포터의 킹스 크로스 역과 겹쳐 보인다.
9와 4분의 3 승강장.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하지만 분명 어딘가에 열려 있는
‘사이(between)의 공간’.


어쩌면 작가가 된다는 건 이 승강장을 찾는 일이다. 독자에서 작가로, 소비자에서 창작자로 넘어가는
아주 얇은 틈을 발견하는 일.

sarah-ehlers-ltFKYpgoKto-unsplash.jpg 출처 : unsplash

호그와트 학생이 된다고
모두가 위대한 마법사가 되는 건 아니듯,
출판업계에 이름을 올렸다고 모두가 유명한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벽을 통과해야만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다른 규칙과 다른 언어를 배우게 된다.
사람들 사이, 세상 사이의 틈을 지나야만.


모두가 그 역을 매일 지나치지만, 찾지 않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 9와 4분의 3 승강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책을 곁에 두고 살지만, 책을 쓰는 사람이 되는 길을 찾지 않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직가의 세계는 열리지 않는다.


믿고, 밀고, 들어가는 사람만 다른 세계로 간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존재를 기록하고 싶어 한다. SNS가 형태만 변할 뿐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책을 내는 이유 역시 분명하다.
책은 더 깊이, 더 오래 자신을 인식하고 남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작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수고를 대부분 원하지 않을 뿐이다.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코칭을 하고,
자기 이름으로 브랜드를 쌓는 일.
그 모든 연쇄적인 노동이 매일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꾸준함을 요구한다.

책을 읽는다고 그 책이 내 것이 아니듯,
책을 쓴다고 그 책이 곧바로 내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늘도 나는 이 벽 앞에 서있다.

이 세계를 건너는 벽 앞에.

한번 진입했다고 이 벽 앞에 서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세계로 가기 위해선 언제나 이 벽을 마주해야만 한다.

아마 작가란 원래 마법사가 아니라
벽에 부딪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어떤 벽은, 믿고 들이받아야만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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