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을 뒤집는 일

by 카르멘

오늘은 전거근 수업이었다.


우리는 하루 종일 팔을 앞으로 쓴다.

키보드를 두드릴 때도,

운전대를 잡을 때도,

싱크대 앞에서 행주질을 할 때도.

손바닥은 늘 아래를 향한다.


잡고, 밀고, 버틴다.

몸은 익숙한 방향으로만 길을 낸다.


그런데 오늘, 선생님은 손바닥을 뒤집으라고 했다.


네발 기어가기 자세에서 폼롤러를 쥐지 말고,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그 상태로 바닥을 밀어보라고.

처음엔 단순해 보였다.

그저 손바닥 하나 뒤집는 일 아닌가.


하지만 곧 알았다.

이건 ‘방향’을 바꾸는 일이었다.


있는지도 몰랐던 전완근 뒤쪽이 저릿저릿했고

어깨 깊숙한 곳에서 낯선 긴장이 올라왔다.


그저 뒤집힌 손바닥을 유지하는 것뿐인데

팔은 금세 떨렸다.


그 상태에서 팔과 다리를 움직이려니

몸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우리는 말한다.

‘손바닥 뒤집듯 쉽다’고.


하지만 깨달았다.

손바닥을 뒤집는 일은

몸에게는 거의 혁명에 가깝다는 것을.

매우 고통스러운.


이 고통을 부러 만드는 이유는 뭘까.


“이 힘을 만들어두면, 갑자기 팔을 번쩍 들어

높은 곳의 물건을 집을 때

담이 오거나 어깨가 아픈 걸 예방할 수 있어요."


지금의 이 불편함은

미래의 더 큰 불편함을 막기 위한 훈련이었다.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

잘 드러나지 않는 전거근을 깨우는 일은

지금 당장은 비효율적이다.


괴롭고, 느리고, 어색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편한 상태를 두고

굳이 이런 불편함을 감수할까.

답은 단순하다.

편안함은 유지의 기술이고,

불편함은 대비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몸을 단련하는 이유는

예고 없이 찾아올 순간을 위해서다.


전거근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이 근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어깨는 쉽게 무너진다.


팔은 제 힘을 잃고,

작은 동작에도 통증이 스며든다.


겉으로 보이는 힘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지지의 힘인 셈이다.


삶도 그렇다.

갈등이 없을 때 관계를 다듬고,

위기가 오기 전에 내면을 단단히 하는 일은

당장 필요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늘 미뤄진다.

하지만 어느 날

예고 없이 팔을 뻗어야 하는 순간,

예고 없이 마음을 들어 올려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때서야 우리는 안다.


준비되지 않은 편안함은

아주 쉽게 깨진다는 것을.


오늘 정오의 필라테스는

불편함을 선택하는 시간이었다.


손바닥을 뒤집고,

떨리는 팔을 버티며,

쓰지 않던 방향으로 힘을 내보는 시간.


지금은 저릿하고 괴롭지만

이 작은 불편함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올

더 큰 불편함을 막아주기를.


털썩,

편한 몸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 번 더 묻는다.


지금 내가 피하고 있는 불편함은

혹시 미래의 나를 약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손바닥 뒤집듯 쉽다’는 말을

이제 함부로 쓰지 않기로 했다.


뒤집어보니 알겠더라.

세상엔 쉽게 뒤집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그러니 오늘도

굳이, 일부러, 사서 고생한다.


미래의 내가

“그때 좀 해둘 걸” 하며 편해서 약해진 어깨를 붙잡지 않도록.


수,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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