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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멘 Dec 28. 2023

필라테스 인간병기

저항하라

"저항하세요"


필라테스는 저항하는 운동이다.


내 두발 아치(arch)엔 스트랩이 걸려있다.

(쓰다보니, 상상을 돕기위해 똥손이지만 그림을 그려봤다)

스트랩은 리포머 기둥에 묶여 있으므로 나는 리포머에 발이 묶여있는 셈이다.

내가 힘을 주지 않으면 내발은 내 엉덩이가 들려올라갈 정도로 리포머 기둥쪽으로 따라 올라간다.

내 전신은 스프링 베드에 누워있는데, 내 코어에 힘이 풀리는 순간

스프링에 매달린채 고정돼 있는 베드(bed) 도 따라올라가니

내몸은 폴더폰처럼 접히게된다.


그래서, 내가 내몸을 제대로 가눌려면 저항해야 한다.


내발을 당기는 스트랩에 저항하고, 같이 따라 올라가려는 엉덩이를 누르고,

자꾸만 벌어지려는 허벅지 사이를 미간이 좁혀질만큼 당겨붙여야 한다.

그래야만 내발은 머리 위가 아닌 골반 위에 자리하고,

머리로 피가 쏠리는 대신 허벅지에 힘이 쏠릴수 있으며,

갈비뼈가 눌려져 기도를 유지해 편안한 호흡을 유지할수 있다.


쓰고보니, 아이러니.

죽을힘을 다해 저항해야, 살힘이 생긴다.

제대로 살 힘.


필라테스에서 저항을 잘 하기 위해 몇가지 필요한 게 있다.


첫째, 저항은 '스스로' 해야 한다.  


스트랩에 다리가 딸려 올라가는 순간 내몸은 내가 움직이는게 아니라 스트랩이 움직이게 돼있다.

마치 실로 연결된 채 사람 손에 의해 움직이는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내가 내힘으로 내몸을 컨트롤 해야만 저항이 성립된다.


내 의지가 아닌 것에 휘말리고 딸려 가는건 필라테스 학원 밖에서도 충분하다.


스트랩에 저항하는 힘을 기르다보면, 스트랩이 아닌 것에 저항하는 힘도 길러질지 누가 아는가.


둘째, 저항은 '천천히' 해야 한다.


나를 끌어당기는 힘에 저항하는건 고통스럽다.

힘에 부친다.


그래서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들고, 실제로 버티는 시간이 길수록 고통의 강도도 커지므로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하지만 저항은 천천히 해야 의미가 있다.

천천히 버티는 과정이 내안의 진짜 힘을 키우기 때문이다.


"점점 빨라져요. 급해요. 천천히요~ 내려올 때 더 천천히"

선생님이 꼭 덧붙이는 말이다.


저항하여 높이 올라간 스트랩에 묶인 발을 내리는건 힘드므로 천천히 하다가,

다시 스트랩의 힘과 같은 방향으로 발을 천장으로 들어올리는건 빨라진다.

같은 방향으로 힘을 쓰는 건 쉬우므로.


그러나 저항은 원래가 어려운 것.

저항이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거니까.

그리고, 쉬운 걸 천천히 해야 어려운 것도 천천히 해낼 수 있는 법.


셋째, 저항은 '떨릴만큼' 해야 한다.


필라테스의 변하지 않는 지론은 '본인이 할수 있는 만큼의 범위 안에서 하기'

본인이 할수 있는 만큼의 각도, 높이, 세기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라테스다.

옆에 사람이 다리를 180도 찢는다고 무리해서 다리를 찢다간 가랑이가 찢어진다.


하지만 내가 할수 있는 범위가 어느정도인지 어찌 아는가?


딱 하나 '잘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시그널이 있다.

떨림이다.


운동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몸이 저항하다보면 온몸이 부들거리는 순간이 온다.

내가 평소 쓰던 것보다 더 세게 버틸때 우리몸에서 쓰지 않던 근육이 쓰이면서 근육들이 떨리기 시작한다.


오늘도, 근육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내 팔은 풋바(foot bar) 위에서 내 온몸을 지탱하며 부들부들 떨렸다.

이 떨림은 나의 자율신경계의 통제를 벗어난 떨림이다.

시간이 지나 스스로 진정되기 전까지는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떨리는게 당연해요. 떨리고 있으면 잘하고 있는 거예요"


선생님 말을 들으며, 스스로 잘하고있다고 토닥인다.


저항은 딱 내몸의 떨림이 느껴질 정도로 하면 맞다.

나의 떨림은 대개는 나만 안다.

옆에 사람도 떨리느라 내몸까지 볼 여유가 없으니까.

그러나 미친듯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내몸도, 필라테스 학원을 나오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듯 정상으로 돌아온다.


떨릴일이 별로 없는 세상, 그러니 내가 컨트롤 할수 없을 정도로 실컷 떨려보는 것도 운동의 묘미.


오늘, 올해 마지막 필라테스 수업이 끝났다.

1년의 필라테스 수업 동안 찾은건, 나의 '에너지 박스(energy box)'다.


필라테스에서 에너지박스는

견갑골부터 배꼽 그리고 골반까지의 몸통.

이몸통이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아줘야 팔다리가 제대로 움직인다.


팔다리가 백조처럼 우아하게 움직이려면 에너지박스가 무쇠처럼 단단해야 한다.


1년쯤 되니, 화목 점심 수업시간큼은 내가 우등생이 됐는지 동작을 보여주는 시범조를 자주 하게됐다.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마음에 덜덜 떨리면서 최대한 정확한 자세를 하려고 한다.


"이것봐요~회원님 인간병기죠? 대단해요" 선생님의 칭찬 가스라이팅.


올한해 일주일에 2시간만큼은 나를 인간병기로 변신시켜준 필라테스가 고맙다.

그시간이 있었기에 필라테스 학원 밖에서 갈대처럼 흔들리는 나를 버텨낸 것 같다.


고통은 더 큰 고통으로 잊어버리자는 나의 지론(?)에 따라,

내년에도 필라테스를 등록해야 겠다.


내년에도 무수히 저항해야 할 일들이 많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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