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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멘 Dec 19. 2023

그녀의 뜨거운 손

필라테스는 나의 난로

날이 부쩍 춥다. 


히터(heater)가 나오는 사무실은 공기가 좀 훈훈하지만

이상하게 손끝 발끝은 온기가 돌지 않는다. 


칼바람 부는 바깥에 비해선 안락한 환경의 사무실이지만

오랜 시간 앉아있다보면 목, 어깨, 허리, 골반이 딱딱해진다. 


유독 손발이 찼던 시절의 나는(희안하게도 아기를 낳고 좀 나아졌다)

한겨울 발이 시리고 아파서 피부과를 찾았다가,

"혹시 밖에서 일하는 직업이세요?"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만큼 발끝에 피가 돌지 않아 약한 동상의 증상이 있었다. 


한겨울 사무실의 히터는 가동되도

내몸의 히터는 가동되지 않는 셈. 


아기의 몸은 푸딩처럼 부드럽고, 지구상에서 가장 따뜻하다. 

한겨울에도 뛰어놀며 땀흘리는 아이들은 자가 히터가 잘 돌아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어른이 되면 자가 히터가 고장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칼바람이 불어도 필라테스를 간다. 

그리고 선생님의 뜨거운 손(hands-on)을 만났다. 


내가 핸즈온(hands-on)을 좋아하는 이유. 


핸즈온은, 강사가 말로 하는 티칭보다 뜨겁고 강렬한 티칭이다. 


강사의 손을 이용해 손을 쭉 뻗을때의 느낌, 

등을 곧게 펼때의 강도, 

배꼽과 갈비뼈가 들어가야 하는 깊이 등을

짚어준다. 


열마디 말보다 한번의 핸즈온이 바른 정렬로 가는 지름길. 


그런데 갑자기 배꼽 위가 뜨끈뜨끈 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선생님이 핫팩을 내 배위에 올려준 것. 

그날따라 내 손발이 찼나보다. 


누군가 내 배를 관리해주는 경험을 해봤는가? 

돈 내고 배마사지를 받지 않는 한 타인이 내 배꼽 위를 관리해주는 경험은 흔치 않다. 

배꼽은 오장육부의 중심부와 같은 거라

배꼽 위가 따뜻하면 온몸에 온기가 돌기 시작한다.

꺼져있던 내몸의 히터가 돌아가는 기분이랄까. 

핫팩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코어에 들어가는 힘은 덤. 


지금 이 글을 쓰는 키보드 위의 손끝도 차다.

옆에 있는 텀블러의 커피를 마시며 종종 손끝도 텀블러의 열기를 빌린다. 

(나는 아메리카노보다 덜 뜨거운 라떼를 주문할때도 "뜨겁게 해주세요!"라고 덧붙인다)


날씨는 생각보다 우리의 기분이나 몸에 많은 영향을 준다. 

특히 운동을 '가는 일'에 영향은 지대하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운동을 가는 길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날씨가 추우면 몸이 움츠려들어 칼바람을 맞으며 굳이 운동을 가야하나 생각한다. 


하지만, 운동을 가야 뜨거워질 수 있다. 


리포머 위에 누워야 내 몸을 바르게 한번 펴고 들숨 날숨을 크게 쉴수 있다.  

(사무실에서 들숨 날숨을 소리내어 크게 쉬면 다들 무슨일 있는줄 아니까)


하루종일 접히고, 구부러지고, 분리됐던 몸의 구석구석을 펴낼 수 있다. 


그렇게 내몸 속에 돌고 있는 피가 제대로 돈다. 


배꼽에 힘을 주고 내몸을 뜨겁게 만들어 꺼져있던 내몸의 히터를 재가동 시킨다.  


그리고 얼굴을 본다.

히터가 빵빵한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있는 내 얼굴. 

표정이나 생기 따윈 없고, 히터바람에 푸석푸석해진 내얼굴.


다시 얼굴을 본다.

칼바람을 뚫고 와 나의 자유 의지로 손발을 움직이는 내얼굴. 

힘을 줄땐 윽- 인상도 쓰고, 힘을 풀땐 인상을 후-하고 푸는 내얼굴. 

그렇게 어느새 약간의 홍조를 띠고 있는 살아있는, 내얼굴. 


나를 붙잡아준 그녀의 뜨거운 손만큼

나의 손도 어느새 뜨거워져있다.  


필라테스는, 나의 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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