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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멘 Dec 07. 2023

필라테스 '하는' 강사

그녀의 가스라이팅



1년 동안 쭉 같은 선생님한테 필라테스를 배웠다.


필라테스가 끝나면 싸온 점심을 먹으며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곤 하는데.

가끔 운이 좋으면(?) 다른 회원들이 오지 않아 1대1 수업을 받을 때가 있다.

그날이 그랬다.


밀도 높은 1대1 수업을 마치고 샌드위치를 먹으며 선생님과 대화를 이어갔다.


"선생님은 필라테스 얼마나 하셨어요?"


"3년요. 들쑥날쑥 하다말다 말고, 쭉 3년. 배웠어요. "


처음엔 무슨말인가 했다.

나는 당연히 필라테스를 가르쳐온(teaching) 세월을 물어본 거였는데

그녀의 대답은 필라테스를 해온(doing) 시간.


"선생님도 따로 배우세요? 필라테스를?"


"네, 다른 학원에서 배워요"


"왜요?"


"어디서 들었는데요.  

강사가 필라테스를 가르칠 때 중요한건

해부학을 기초로 티칭(teaching) 하는 거지만...

사실 제일 중요한 건,
필라테스를 하는거(doing pilates)래요, 강사도요

내가 듣는 필라테스 수업은

'클래식' 필라테스 수업인데 초기 필라테스의 원칙을 따르는 운동이다.

복근,허리, 엉덩이 등이 코어 근육인데 이부위의 강화를 통해 몸의 밸런스를 증가시킨다.  

무엇보다 정확한 자세에 집중하고 연속적인 운동순서(flow)를 반복하는게 특징이다.


반면 대중화된 모던 필라테스는 개개인의 맞춤화된 운동방식을 강조하고

여러가지 기구, 소도구, 장비 등을 아낌없이 활용하여 운동의 효과를 극대화 한다.

기존 클래식보다 더 자유롭고 디자인된 느낌의 운동이다.


아무튼 정해진 순서, 정형화된 자세를 중시하는 클래식 필라테스임에도 선생님이 여전히 현재도 수업을 받고있는게 신기했다.


선생님의 그 이유인즉슨.


"제 안좋은 습관인데,

다른 강사들과 비교하게 되요. 경쟁이 심하니까.

또 어린 강사들이 점점 늘어나니까.

내가 가진 장점은 뭔가 하고요.

그런데 그냥 제가 생각할때 경쟁력은 결국'실력'인거 같아요

그래서 몸져 누워서 쉬어야 할 때 아니면

계속 했어요 3년동안 1대 1수업을.

가르치는 거 말고요, 제가 배우는 1대1 수업"


"선생님도 계속 새롭게 배울게 있나요?"


"그럼요~수업 듣다보면 저도 컨디션 따라 느껴지는게 다르거든요.

아, 오늘은 이쪽이 좀 이완되네

이부위의 근육이 좀더 쓰이네?

제가 느끼는게 달라지면, 회원님들 가르치는 티칭도 달라져요"


선생님은 애둘 워킹맘이다.

클래식 필라테스 전임강사고, 주말에 시간과 돈을 쪼개 필라테스 관련 워크숍도 다니신다.


그렇다고 선생님 몸이 인스타에 넘쳐나는 바프(바디프로필)용 몸인건 아니다.

그러니까, 나나들들(나올때 나오고 들어갈때 들어가고) 몸이거나

군살 하나 없는 탄탄한 몸과는 거리가 멀다.


그녀는 아이 둘 낳고 축 늘어진 뱃살을 가감없이 회원들에게 보여주며 코어 힘주기의 중요성을 보여주신다.


"보세요. 회원님들 아무도 제배 사이즈는 못 이기죠?

그래도 이렇게 배꼽에 힘주면 이렇게나 많이 배가 들어가고 꺾인 허리가 펴져요"


처음엔 그녀의 살신성인 뱃살에 뜨악했다.


필라테스 선생님이 너무 관리를 안하는거 아닌가?

필라테스 해봤자 몸매에 아무 도움이 안되는건가? 하고 말이다.


그런데 필라테스 1년을 하고보니 조금은 알것 같다.


필라테스는 몸을 예쁘게 '만드는' 운동이라기보단 내몸을 예쁘게 '바라보는' 운동이다.


나는 원래 척추측만 역C형으로

(거꾸로된 C자형 모양의 척추)

하판인 등을 기준으로 오른쪽 옆구리가 왼쪽 옆구리보다 늘어났고

이로 인해 상판인 가슴을 기준으로 왼쪽 갈비뼈가 오른쪽 갈비뼈보다 튀어나와 있다.

또한 무릎사이가 완전히 붙지 않는 오다리다.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리포머에 누우면 그게 여실히 드러난다.


나는 똑바로 누웠는데 왼쪽 갈비뼈는 왜 올라와 있지?


나는 똑바로 엎드렸는데 왜 내 다리는 한쪽으로 어져 있지?


중심을 맞춰서 누우라는 말이 머리론 이해되어도 내몸은 이해 못한다.

그래서 똑바로 눕는게 얼마나 부들부들 힘을 줘야 하는 일인지 체감한다.


엎드린 자세에선 더하다.

엎드린 자세에선 내몸을 볼수가 없는데

허벅지 사이를 붙이라는 선생님의 말과 동시에,

내 다리는 지진이 나기 시작한다.

허벅지 사이를 붙이는게 유독 어려운 다리모양 때문에 일자로 다리를 뻗어내는 것조차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

부들부들 부들부들.

다리를 쩍-벌하고 싶은 마음이 치솟는다.


그렇게 내몸을 알아간다.

그렇다고 내몸이 싫진 않다.


선생님이 축 늘어진 뱃살을 자신있게 보여주듯

나도 거울에 비친 나를 (자신있게까진 아니더라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그래도 뭐, 이정도면 괜찮지. 불균형 없는 사람이 어딨어?


'그래도 봄에 본 다리모양 보다는 겨울이 낫네'


'의식하고 호흡하니까 왼쪽 갈비뼈가 1센치는 내려간거 같은데'


'(말린 등과 어깨가 펴지니) 필라테스 수업 들어올 때 보단, 나갈때가 키가 1센치는 더 커진듯!'


하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거는 가스라이팅.


이것도 사실은 선생님에게 배운 거다.


진짜 더이상 힘을 쥐어짤 수 없을것 같을 때, 잔뜩 찌푸린 내 미간사이을 보고 선생님이 말을 건다.


어머, 회원님! 지금 너무 좋구나?
너무 좋죠?


황당무개하여 나는 얼결에

"아, 네~네~" 하게 되는데

(혹은 대답을 하지 않아도)


"어머, 저도 좋아요! 너무 좋아 짜릿해!" 하고 선생님은 더 황당한  리액션을 해준다.


그럼 나도 모르게 '풉'하고 웃으며 코어에 힘이 들어간다

(원래 웃음이 최고의 복근운동)


우리 필라테스 선생님의 실력은

 '필라테스 하기(doing)'

그리고 주특기는 '가스라이팅' 인셈.


새로운 회원들이 옆에서 부들대며 그녀의 가스라이팅에 당황할 때

나는 이제 대답한다


너무 좋아요

(하다보면 진짜 좋아진다)


여담으로 나는 진짜 키가 1센치 정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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