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을 마음 하나
드라마 도깨비에는 ‘한사람에게는 4번의 생이 주어진다’고 나온다.
당시 나는 지금의 삶이 나의 몇 번째의 환생일까 생각해봤다.
그리고 정말 환생이란 게 정해져 있다면,
이번 생이 마지막 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미련이 많이 남을 것도, 욕심도, 후회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나에게 이번 생이 마지막 생이라면 나의 몸, 마음, 머리 모두를 후회 없이 다 썼노라고
참으로 가치 있었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이를 낳기 전 36년의 삶과 아이를 낳은 후 3년의 삶은 행성이 바뀌었다고 생각할 만큼 전혀 다른 삶이다.
올해 브런치 활동을 시작하며 글을 읽고 쓰며 그전의 시간보다 훨씬 밀도 높은 활자의 세상에 들어왔다.
그러니 아직 해보지 못한 경험, 느끼지 못한 감정,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세상의 일들이 많이 남아있음을 안다.
43세에 ‘아직, 아니다’라고 말한 의사의 책이 있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잘나가는 정신과 의사, 두 아이의 엄마로서 43년의 삶을 살다가 갑자기 파킨슨병에 인생을 점령당했지만 다시 인생의 주인공 자리를 되찾은 그녀의 말.
01. 삶을 즐긴다는 것은
삶을 즐기는 것은 ‘~해야 한다’는 말을 줄이고, ‘~하고 싶다’는 말을 늘려나가는 것이 시작이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못 당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의무감과 책임감만으로 살아가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눈앞의 놓인 과제들에 인생을 다 내어주기보다는
좀 더 멀리 보며, 나를 더 아껴 주고, 틈틈이 나에게 즐거운 음악을 들려주고, 달콤한 휴식을 허락할 것이다.
그 시절의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버텨야 하나, 한숨이 먼저 나왔다.
웃음을 잃어버렸다.
‘왜 나 혼자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나’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남편과 가족들을 원망, 불공평한 세상을 원망했다.
두 아이를 낳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의사생활을 계속 했다.
병원 일 하랴, 두 아이 키우랴, 시부모 봉양하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남편과 가족들 모두 도와주지 않는데 네 가지 역할을 다 하려고 하니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딴에는 최선을 다하는 건데 병원에서도 집에서도 그걸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마로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감히 힘들다고 말하지도 못했다.
그러는 사이 아이를 키우는 것도, 병원 일을 하는 것도, 집안일을 하는 것도 모두 다 숙제처럼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일들이 되어 버렸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렇게라도 버티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지금껏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것, 그것은 바로 그때 삶을 즐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02. 버틴다는 것은
버틴다는 것은 그저 말없이 순종만 하는 수동적인 상태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않고 방에 누워서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게 결코 아니다.
버틴다는 것은
내적으로는 들끓어 오르는 분노와 모멸감, 부당함 등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하고,
외부에서 주어진 기대 행동에 나를 맞추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하는 매우 역동적이면서도 힘든 과정이다.
그래서 버틴다는 것은, 기다림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참아내는 것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오늘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다.
03. 아이라는 것은
아이는 엄마의 사생활을 방해한다.
아이는 무자비하며, 엄마를 마치 무보수의 하녀나 노예, 하층민처럼 취급한다.
아이는 대부분 배고프거나 뭔가가 필요할 때 엄마를 무지 사랑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면 귤껍질처럼 엄마를 던져 버린다.
아침에 한바탕 끔찍한 난리를 친 뒤 밖으로 안고 나가면, 아이는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웃는다. 그러면 그는 “참 예쁘고 착한 아기네요” 라며 아기를 쓰다듬어준다.
정신분석가 위니코트의 말처럼 아무리 어머니라도 아이가 미워질 때가 있다.
하지만 부모는 자신의 마음속에 아이를 귀찮고 미워하는 마음을 발견하면 불안해지고, 죄책감을 느끼며, 자신이 비열한 사람일까 두려워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아무리 성숙한 인간이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우리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자신을 희생하며, 모든 아버지는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돼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04. 서로를 안다는 것은
결혼한 지 2주된 부부, 2개월 된 부부, 2년 된 부부, 20년 된 부부를 대상으로 서로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테스트 했다.
그 결과 서로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커플은 결혼한 지 20년 된 부부가 아니라
2주 된 부부였다.
왜냐하면 2주 된 부부는 ‘내 남편 오늘은 직장에서 뭐하나?’
‘내 아내는 오늘 뭐 했을까?’ 궁금해 하고 끊임없이 관심을 갖는다.
관심은 질문이 되고 그에 답하며 서로가 서로를 조금 더 알아간다.
하지만 20년 된 부부는 서로에 대해 묻지 않는다.
‘거봐, 저 사람 저럴 줄 알았어’
‘저 여편네 또 잔소리네’ 생각하며 더 이상 궁금해 하지 않는다.
사람은 안 변한다지만 나이를 먹고 세월이 쌓이며 변하는 부분도 분명 있다.
만나는 사람이 달라지고, 사람 보는 눈이 달라지고, 입맛도 변한다.
시력도 변하고, 뱃살이 나오고, 체력도 달라진다.
그러니 5년 전 남편과 지금의 남편은 다른 사람이다.
10년 전 아내와 지금의 아내도 마찬가지.
그렇게 나는 남편을 모르고, 남편은 나를 모르게 된다.
05. 병이란 것은
병이 이미 내 건강의 많은 부분을 앗아 갔고 앞으로 지적 능력까지 빼앗아 갈지 모르지만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이니 걱정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
걱정으로 시간을 낭비하기엔 내 인생이 너무 아깝다.
코앞에 있는 화장실에 가는 데 5분 넘게 걸린 적도 있고, 몸이 굳어 버려 옆으로 돌아눕는 것조차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24시간 내내 아픈 건 아니다.
고통과 고통 사이에는 반드시 덜 아픈 시간이 있고, 약을 먹어서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시간도 있다.
나는 그 시간에 무엇을 할지 상상하며 고통을 견뎌낸다.
아마도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프로이트는 ‘약간의 히스테리, 약간의 편집증, 약간의 강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정상이라고 말했다. 즉 세상에 문제없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의 문제는 다 갖고 있다. 그러니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부끄러워하거나 부정할 필요가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병마와 싸워 오다 보니 가끔은 소리를 지르고 싶을 때가 있다.
후회할 걸 알면서도 타인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할 때도 있다.
명색이 정신분석 전문의로 30년 넘게 일해 오며 수많은 환자를 치료해온 사람으로서 못난 모습을 보이게 될 때마다 부끄럽지만 나는 그런 나를 용서하기로 했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나는 이번생이 마지막 생이기를 바라므로 다시 인생을 살고싶진 않지만.
정말 그렇다면,
정말 이번생이 마지막이라면 다시 사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아야하는지도 모른다.
다시, 가 없을 것이므로.
다시, 는 없는 것처럼 살아야 하는 것.
매일 매순간을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곳에서 보내는 모험으로 가득 채울순 없겠지만
같은 사람과 같은 곳에서 같은 마음으로 채워나가는 게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음을 잊지 않는 것.
매일 아침 하나의 인생이 시작되고, 매일 밤 하나의 인생이 진다는 것.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그저 이 마음 하나만은 잊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