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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다

자기를 위한 인간

by 카르멘

얼마전 MZ세대의 특징에 관한 대화 중

MZ세대인 후배의 좋지 못한 표정을 눈치챘다.

마치 모든 MZ세대가 그렇다는 듯 말하는 것 또한 하나의 폭력이었을 테지.


어떤 세대든 중요한 건 개인이다.

개인의 정체성.

기질과 성격의 콜라보.


내가 일주일에 한번은 하는 말이 있는데...

“성격이 팔자다” 는 말.


그리고 가끔 생각하는 유행어.

“지팔지꼰. 지 팔짜 지가 꼰다”


근데 프로이트도 비슷한 말을 했다

“인간의 운명은 자신의 성격이다”


결국 인생은 나와 살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내가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타인이 나의 삶을 단1초도 대신 살아줄수 없기 때문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나와 진찌 함께 있는 건 결국 ‘나’뿐 아닐까.



자기를 위한 인간


#에리히프롬

#이기심

#자기애

#인격시장


인간의 운명은 자신의 성격이다


인간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힘, 무의식적 동기.

다시 말해 그것은 자신의 성격이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성격 유형 중 가장 와닿은 것은 ‘시장 지항적 성격’


현대사회는 '인격시장'이 형성돼 있는데 상품시장과 유사하다.

인격을 '교환가치'로 보기 때문.


능력이나 지식뿐 아니라 적절한(매력적인) 인격도 교환가치를 갖는다.


우리자신을 판매자이자 팔아야 할 상품으로 인식하는데, 결국 인간에겐 자신의 삶과 행복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팔릴 수 있느냐에 대한 시장 지향적 관심만 남는 것.


심지어 인격은 시대에 따라 핸드백처럼 유행한다.


인간의 가치가 몸에 밴 인간적 자질로 판단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조건이 변하는 시장에서의 성공여부로 결정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의 자존감은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또한 우리자신의 가치를 남에게 끊임없이 확인받고 싶어 한다.


이런 순환은 인간에게 무력, 불안, 열등감을 낳는다.


우리가 SNS 등을 통해 우리의 이미지, 스토리를 파는 것도 시장지향적 성격이 발현된 결과다.


'좋아요'로 확인받고 싶어하고, 남이 '좋아요 한 나'만을 나도 좋아하게 된다.


그리고 시장에서 팔릴만한 사진을 수백 장 찍기 위해 그 순간의 나를 소모한다.


나는 당신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일까? 내 정체성은 어찌 결정되나?


여기에서 세 가지 해석을 달 수 있다.


첫째는 위의 시장지향적 성격에 따라 "당신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 내 정체성이다.


이때 정체성은 각자가 해낼 수 있는 역할의 총합이 된다.

우리는 팔리는 부분만 남에게 보여주기 때문에.


반면에 내 정체성은 내가 소유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게 나의 정체성이라기보다,

말그대로 내가 무엇을 소유하는가에 따라 나의 가치가 결정된다.

사랑도 이런 식의 정체성을 가지면 폭력성을 띠게 된다.


네 이웃을 네몸처럼 사랑하라


이책에 자주 나오는 구절이 바로 위의 성경구절.


거꾸로 보면, 네 몸을 사랑해야 네 이웃도 사랑할수 있다_이다.


우리는 '이기심'을 부정적으로 인지한다.

이기심을 자기애와 혼용하기도 한다.


이기심은,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을 거두어들여 자신에게 돌리는 자기애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히려 반대다.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상황을 교정하기 위해

(실질적 자기애의 결핍으로) 이기심이 발현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비이기심이 자기애와 동일한 것도 아니다.

비이기심은 오히려 자기에 대한 관심이 없고 오로지 남에 대한 관계에만 몰두하게 만든다.


본래의 자신이 되고 자신을 위해 존재하려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현대사회의 도덕적 문제는 '자신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다.


의아할 것이다. 이기심과 자기애가 너무 심한 시대가 아닌가? 싶기 때문. 하지만 듣고 보면 이해되는 말.


우리자신을 본질이 아닌 도구로 전락시키고, 타인도 자신도 상품화시키는 사회.


그래서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타인에게 팔리지 않으면 무력감을 느낀다.


그리고 상품화되기 때문에 인간 고유의 양심도 사라진다.


이것은 또 다른 권력에 대한 복종과 같은데, 자신을 지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열중하느라(댓글, 좋아요 등도 권력)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결국 본래의 자신이 되고, 자신을 위해 존재하려면, 무려 용기가 필요한 시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귀중 이런 말이 있다.


"네가 죽으면 신은 너에게 '너는 왜 모세처럼 살지 않았느냐'고 묻지 않을 것이다. '너는 왜 너답게 살지 않았느냐'고 물을 것이다."


이 질문을 듣지 않을자 얼마나 되겠는가.


한생을 자기 자신으로도 살지 못하고 죽는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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