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자식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강압적으로만 키우다보면 수많은 금쪽이가 생겨날 수 있다.
모든 부모가 바라는건 아이의 행복 하나뿐인데 왜자꾸 이런 가슴아픈 일이 생길까.
부모가 행복하지 않아서 행복이 뭔지 모르거나,
행복의 길은 부모가 정한 대로 사는 거라고 착각하거나,
나는 행복하지 않았으니 너만은 행복해야 한다고 모든 걸 희생하거나. (그럼 부모가 다시 불행해지고, 반대급부로 보상심리가 발동)
등등의 배경과 이유로 의도치 않게 부모가 도리어 아이의 행복 지분을 빼앗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역시 전혀 아니다! 라고까진 못한다.
다만, 그 충격적 댓글에 상처받은 부모의 1인으로서
곧 소개할 책의 저자의 말처럼,
상처를 성장의 기회로 삼아보려 한다.
오늘의 킹콩맘 회복제는,
"영혼이 강한 아이로 키워라" (저자, 조선미)
많은 사람이 행복을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이 달려가는 그 결승선에 가면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며 아이의 손을 잡고 헐레벌떡 뛰어간다.
하지만 잠깐, 이길이 맞는지 확인해볼 때다.
'행복한 삶에 공식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답한다.
행복한 삶은, 겪었던 고통이 얼마나 많고 적은가보다는 그고통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이다.
01. 행복한 사람의 조건
내아이가 행복한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아이의 행복은 아이 스스로가 판단한다는 것이다.
행복하다는 느낌도 아이의 것, 무엇을 하면서 행복을 느낄지 결정하는 것도 아이 몫이다.
아무리 간절해도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제한되어 있음을 받아들이는 게 행복한 아이를 키우는 첫걸음.
그렇다면 아이를 행복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부모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행복 연구의 큰 이정표가 된 조지 베일런트 연구에서 대답을 찾을 수 있다.
한 사람의 유년기를 결정하는 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수 있느냐, 질높은 교육을 받았느냐가 아니었다.
가족끼리 마주 보며 웃는 가정, 소통이 잘 이뤄지는 가정, 아이의 자율성을 인정해주고 주도적으로 하도록
격려하는 분위기의 가정. 이런 가정속에서 아이는 행복한 어른으로 자라날 가능성이 극대화된다.
행복의 반대말인 것 같은 고통은 어떨까.
우리는 원치 않아도 삶의 골목에서 우리를 기다리고있는 기쁨과 고통을 함께 만난다.
피하려 애쓴다고 고통만 피할순 없다.
딸아이가 재수를 결심해서, 영하의 날씨에 장거리에 있는 재수 학원에 다니다 눈물을 펑펑 쏟았다. 나는 이렇게 말해줬다.
"엄마는 고통을 겪지 않고 사는 방법을 알아.
그건 아무것도 안하면서 사는거야. 재수를 하지 않고, 대학 입학이라는 목표도 갖지 않으면 고통도 없어. 그런데 그런삶은 절대 행복하지 않아. 고통스럽다는건, 네가 너 자신을 위해서 뭔가를 하고있다는 증거야.
열심히 할수록 고통은 커질수 있어. 그런데 세상에 가장 가치 있는 것중에 고통 없이 얻을 수 있는 건 없어."
우리가 행복한 어른이 되도록 아이를 키웠다면
그걸 확인하는 순간은 모두가 환호하는 큰 성공을 이뤘을 때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맞닥뜨렸을 때가 될 것이다.
02. 아이의 손과 발이 되어주지 말라
자율성을 꺾고 성장을 정체시키는 부모들은 지시를 '사랑'의 이름으로 전달한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은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수동적인 자세로 삶을 대한다.
자신도 모르게 열정과 도전 대신 안전과 권태를 선택하는 셈이다.
손,발을 아예 쓰지 않을 인생을 살아갈수 없기에
손발을 쓰지 않으면 손발을 써야 하는 상황이 점점 고통스러울 것이다.
누군가가 대신 가방을 들어주면 그 가방의 무게를 내몸으로 지탱하는 순간 가방을 드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피곤하다고 느낄 수 있다.
중요한건 아이의 손과 발을 대신해주는 게 결국 아이의 머리 역할도 대신해주는 일이 된다는 점.
부모의 승용차로 가는 아이는 아무생각없이 차창을 바라본다.
어떤 교통수단으로 어떤 길로 가는게 가장 좋은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예상문제만 뽑아서 쪽집게 과외를 받는 아이는 족보 외에 문제에 대응할 능력이 없다.
삶의 여정이 그렇다.
손과발을 능숙하게 쓰면 똑같은 일도 덜 고통스럽게 느낀다.
흔들리는 차에서 멍하니 가는 자세로는 목표를 이루기 어렵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가 자신의 삶을 유능하게 살길 원한다면아이가 능숙하게 스스로의 손, 발, 머리를 쓰게 만들어줘야 한다.
반복적 경험과 연습없이 갑자기 되는 때는 없다.
03. 실패의 귀인이론&성장 마인드셋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어디에 돌리는지에 따라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
귀인 모형에 따르면 세가지 중요한 차원이 동기와 정서,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첫째는, 실패나 성공의 원인을 내부에 돌리느냐 외부에 돌리느냐의 차이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시험을 잘봤다(내부)
시험문제가 쉬워서 시험을 잘봤다(외부)
내부에 원인을 돌리면 자부심을 느끼지만, 외부에 돌리면 안도감을 느낄 뿐이다.
두번째는, 안정성이다.
내가 머리가 좋아서 시험을 잘봤다고 여긴다면 '능력'이라는 안정성 높은 요인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고
노력과 운에서 원인을 찾는다면 변화가능성이 높은 불안정한 요인을 성공요인으로 본 것이다.
안정성 높은 요인은 자신감을 주지만, 노력을 소홀히 여기게 될 수 있다.
세번째는, 통제가능성이다.
노력은 통제할 수 있지만, 시험문제의 난이도는 내가 통제불가능 하다.
어떤 일의 원인을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돌릴수록 동기 수준이 낮아진다.
어떤 일의 결과에 대해 내부에 원인을 돌리고, 안정적이며, 통제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 가장 자신감이 높았다.
어떤 마인드셋을 가졌느냐는 한 사람의 일생을 결정한다.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은 실수나 실패를 배움의 기회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좌절을 쉽게 극복하고, 적극적으로 실수를 교정한다. 그렇지만 고정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은 실수가 자신의 부족함, 무능함을 보여주는 거라고 받아들여 삶을 개선시키지 못한다.
아이가 무언가를 잘했을 때 "넌 참 재능있다. 머리가 좋다. 똑똑하다"고 칭찬하면, 부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재능이나 지능이라는 고정된 요인에 원인을 돌리는 셈이다. 이런말을 반복적으로 들은 아이는 공부를 잘하려면 머리가 좋아야 하고, 달리기를 잘하려면 키가 커야 한다는 고정 마인드셋을 갖게 된다. 특히똑똑하다는 칭찬을 반복적으로 들은 아이는 자신이 본래 똑똑하므로 실수란 해서는 안되고, 부끄럽게 느껴야한다는 걸 은연중에 배우게 된다.
반면 성장에 근거를 둔 칭찬은 아이들이 성장 마인드셋을 갖게 한다.
"너는 참 열심히 하는구나. 노력이 제일 중요한 거야"라는 칭찬을 받은 아이는 머리나 재능보다 노력에 초점을 둔다.
노력을 통해 이루는 소중한 경험, 그 과정에서 겪는 실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믿게된다.
04. 진짜 존중의 의미
요즘 육아의 키워드는 '존중'이다.
부모는 종노릇을 해서라도 아이의 자신감이 커진다면 감수해야 한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존중한다는 것은, 아이와 부모가 대등한 힘을 가져야 한다거나, 의사결정을 할때 똑같이 한표를 행사할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한 훈육하지 않는다거나 잘잘못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은 규칙을 필요로 하며, 세상은 하기 싫어도 해야할 것이 있고, 하고 싶지만 참여야 하는 것이 있다는 걸 배워야 한다.
즉, 아이를 존중한다는 것은 요구를 다 들어주고 감정을 전부 표현하게 해주며 어떤 행동이든 자유롭게 하도록 둔다는 의미가 아니다.
존중은 아이의 생각, 감정, 행동 중에서 "감정을 인정해주는 것"이 핵심이다.
아이는 어른에 비해 미숙하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생각하거나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또한 미래를 예측하거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능력도 부족하므로 대부분 중요한 의사결정은 부모가 해야한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아이들은 무한정 갖고 놀고 싶어한다.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따라서 시간을 정하는 건 부모가 돼야 한다.
비슷한 장난감이 집에 많아도 가게에서 장난감을 보면 무조건 갖고 싶다고 하는게 아이다.
아이는 눈앞에 보이지 않는 장난감은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협소한 조망능력을 갖고 있다.
부모가 이를 알아차려 상황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친구의 장난감을 뺏거나 친구를 미는 행동은 아이니까 할수 있지만 존중받을 행동은 아니다.
'~해서 그랬구나'라며 감정은 존중하되 생각과 행동을 훈육하지 않으면 아이는 하고싶은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된다.
다만, 감정은 다르다.
아의의 화, 슬픔, 무서움 등을 부정해선 안된다.
감정을 무시하면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뭐가 싫어? 왜 무서워? 별일 아닌데?"라고 아이의 감정을 부정하면 아이는 자신감이 결여된다.
아이는 부모의 '눈치'를 보게 해야 한다.
눈치는 '다른이의 기분이나 어떤 상황에 때에 맞게 빨리 알아차리는 능력'이다.
자신감 저하나 불쾌한 감정이 아니라, 파악을 잘하는 사회적 능력이다.
모든 걸 다 말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눈치는 의사소통에 필요한 능력이다.
물론 불합리한 상황, 힘의 균형이 깨진 상황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은 서글프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아이가 눈치를 본다는 건 주눅이 들어서가 아니라 주변 상황을 살필 만큼 성장한 징후다.
부모가 원칙없이 감정적으로 아이를 대해서 서글픈 눈치를 봐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부모가 그냥 감정적으로 불편해서 아이에게 눈치 볼일 전혀 없는 환경만을 만들어준다면,
아이는 오히려 사회적 판단력 개발의 기회를 차단받는다.
05. 논리의 함정
아이를 존중하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부모가 흔히 쓰는 방법은 논리적 설명과 설득이다.
편식을 하면 몸에 좋지 않다, 싫어도 책을 많이 읽어야 똑똑해진다, 미디어를 많이 보면 눈이 나빠져서 나중에 보고싶은 걸 볼수 없다며 불안을 조성하기도 한다.
이때 부모가 아이에게 발휘하는 힘은 이성과 논리에 근거한다.
하지만 사실은 허약한 논리다.
아이들이 조금만 크면 부모의 논리에 조목조목 반박할 수 있는 지식을 갖게된다.
라면만 먹고도 올림픽 금메달 딴 운동선수, 학교를 중퇴해도 유명해진 아이돌 가수, 프로게이머의 연봉 등.
아이들은 곧 부모의 논리를 이길 수 있으므로 자신을 어른이라 생각한다.
아이에게 논리를 설명하는건 친절하고, 합리적인 태도다.
그렇지만 논리를 제시하고 동의를 구하면서 '우리가' 함께 내린 결론이라고 강조하면
아이는 자신이 그런 결정을 내릴수 있다고 착각, 그런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인지적으로 미숙하고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어린아이가 지적능력과 자율성이 커진 시기에는 이같은 방식이 독이 된다.
설명 이전에 부모가 권위를 갖고 결정을 내린 것이라는 걸 알려야 한다.
그래야 부모가 자신을 보호하고, 결정하며, 벌을 줄수도 있는 사람임을 아이가 받아들인다.
부모의 권위를 수용하는 아이들은 선생님의 권위 역시 어려움 없이 수용하는 편인데 이런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좋은 자세로 집중을 잘하는 편이다.
또한 논리로 세상을 배운 아이는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삶의 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세상이 나를 움직이려면 근거를 대야만 한다는 태도를 배운 탓.
학교에는 부모처럼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고 사회는 더더욱 조곤조곤 설명해줄 이가 없다.
세상을 논리로 배운 아이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착각한다.
뭔가 하도록 만들기 위해 온갖 논리로 설명하고 설득하고 달래던 부모가 이 세상으로 대치되기 때문.
논리는 세상에 대한 아이의 이해를 돕지만, 논리로 이해되지 않는 일도 있음을 함께 알려줘야 한다.
심지어 논리에 어긋난다고 느껴도 해야하는 일도 있음을 배워야 한다.
아이는 혼자 힘으로 세상에 나가 논리 뒤 숨은 삶의 진짜 의미를 찾아야 하므로.
06. 사회성
가정 분위기 역시 사회성에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가족이 자신의 생각이나 바람을 접어둔 채 아이의 요구에만 초점을 맞추면 아이는 타인의 관점을 경험할 기회가 적어진다.
아이가 밥때에 밥을 먹지 않고, 뒤늦게 배가 고프다고 하면 "배고프구나. 밥을 지금 차려줄게"라고 부모가 말할때 아이는 누군가 내욕구를 채워주는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
"아까 밥을 같이 먹었으면 한번만 상을 차려도 됐을텐데. 다음부터는 엄마가 힘들지 않게 같이 먹자"라고 하면 내 배고픔을 채우는게 다른 이에게는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음을 배울 수 있다.
사회성이 발달한 사람은 상대방이 어떤 생각과 의도, 감정을 갖고 있는지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이 이해를 바탕으로 타인의 반응을 예측하고,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며, 결과적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상호작용을 조정한다.
07. 권위와 자율성
막스 베버는 '권위란 정당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자발적 복종을 이뤄내는 정당한 일'이라고 했다.
아이가 일곱시에 저녁을 먹는데 여섯시에 과자를 먹겠다고 한다.
만화를 다 보면 이를 닦기로 했는데 닦지 않고 자겠다고 한다.
정리정돈을 미루고 숙제를 하지 않는다.
공부는 알아서 할테니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결정은 누가 해야할까?
아이가 알아서 하도록 맡긴 후 결과는 누가 책임을 져야할까?
억지로 시키면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부모가 되는걸까?
'자율성'은 아이가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살수 있을 정도로 성숙했을 때 비로소 발휘할 수 있다.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 자유와 선택은 무모함이나 방종의 다른 이름인 경우가 많다.
아이나 청소년의 자율성은 이들 스스로 책임 질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허용돼야 한다.
가족에 대해 온전히 책임지는 부모와 부모에 의존하는 아이가 같은 크기의 자유를 가질 수 없다.
아이와 어른이 평등한 관계를 가질수 없는 이유다.
따라서 아이에게 자율성보다 먼저 가르쳐야 하는 건 부모의 권위에 따라야 한다는 사실이다.
부모라서 무조건 따라야 하는게 아니라 부모의 규칙이 나를 가르치고 보호하기 위함임을 알고, 규칙을 어기면 제재를 가하는 사람이 부모임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이 살 곳은 따라야 할 규칙과 권위가 많고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 곳이다.
부모의 권위로 정한 규칙을 지키는 것이 질서로 움직이는 세상에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08. 좌절내구력 높이기
(실패가 인생을 덮치지 않게 하라)
우리는 수없이 결심하고 시도하면서 왜 행동을 바꾸지 못할까?
반복적으로 잔소리 해도 아이의 행동이 달라지지 않는건 왜일까?
행동 변화를 설명하는 '행동 수정의 ABC 법칙'에 따르면 사람의 행동은 어떤 행동을 했을 때의 결과에 의해 결정된다.
즉, 사람들은 행동의 결과가 좋으면 같은 행동을 반복, 원치않는 결과가 나오면 그 행동을 중단하거나 바꾼다.
아무리 잔소리해도 깨워야만 일어나는 아이는 스스로 알람을 맞춰 일어나는 것보다
잔소리를 듣는게 낫다고 느끼기 때문에 행동을 안 고친다.
갈아입은 옷을 빨래 바구니에 넣지 않아도 항상 깨끗한 속옷이 준비돼있으면 아이는 굳이 빨래는 바구니에 넣지 않는다.
준비물을 챙겨 학교에 가야 선생님에게 지적을 받지 않지만 엄마가 매번 학교까지 준비물을 갖다주면 어떨까?
아이는 결과에 변화가 없기 대문에 행동의 변화도 없다. 굳이 준비물을 챙기는 수고를 할 이유가 없다.
사람들은 옳다는 판단에 따라 행동을 바꾸기보다 불편함을 느낄 때 행동을 고친다.
훈계, 설득, 잔소리가 효과가 없는 것은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몸에 와닿는 불편함'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동을 바꾸려면 좌절과 불편을 겪어야 한다.
그로인해 마음이 상하고, 다시는 이런일을 겪지 말아야겠다는 결의에 도달해야 한다.
사랑하는 자녀가 좋은 행동을 하기 바란다면 좌절을 겪게 둬야 한다.
밥먹을 시간에 간식을 먹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하루이틀 간식을 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숙제를 제시간에 마치치 못하는 습관이 있으면 숙제를 마칠 때까지 잠자리에 들지 못하거나 다음날 학교에서 벌 서는 걸 감수하도록 해야한다.
시시콜콜한 설명, 훈계는 그만두고 행동으로 결과를 명확하게 알려주는게 효과적이다.
지금 겪은 작은 좌절이 나중에 올 큰 좌절을 막을 가장 좋은 방법이다.
09. 스스로 감정 달래기
(온실에도 비바람은 필요하다)
캘리포니아 대학 심리학자 코헨 실버 연구에 따르면,
한 번도 좌절을 겪은 적이 없다고 대답한 이들의 행복지수는 열 번 이상 좌절을 경험한 이들과 비슷하다는 걸 밝혔다.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사람들은 3~6회 정도의 좌절을 경험한 이들이었고 스트레스도 가장 낮았다.
실버 박사는 '사람들은 좌절을 겪으며 심리적 탄력성을 키우는데, 심리적 탄력성이란 좌절을 견디게끔 도와줄 만한 친구들이나 사회적 지원을 찾으려는 시도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기분이 상한 아이를 부모가 항상, 즉각적으로 달래준다면 스스로를 달래는 능력은 성장하기 어렵다.
불편을 즉각 해결해주고 달래주는 건 두돌무렵 정도까지가 적당하다.
자신의 감정을 견디고 달랜다는 것은 불안하거나 불쾌한 기분을 즉시 표출하는 대신 잠시 반응을 보류하는 능력이다.
시간이 지나면 감정이 지나감을 믿고, 그때까지 한발짝 물러나 기다리는 것.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즉각적인 반응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속상한 마음은 알아주되 그감정을 해소해줄 필요가 없다.
아이의 감정이 잦아들도록 기다려줘야 한다.
방문을 닫고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에 마냥 근심걱정할게 아니라 아이 스스로 자신을 통제해보는 시도로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
아이의 울음소리과 고통의 크기가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의 감정을 그대로 인정, 수용해주되 스스로 달랠 수 있게 기다려주는 과정을 통해 아이는 성장한다.
10. 행동을 바꾸려면 환경을 바꿔라
열쇠를 자주 잃어버린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기보다는,
현관문 바로 옆에 열쇠 걸이를 만들어 집에 들어오면서 열쇠를 걸어놓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다.
아이가 집에 오자마자 TV를 보는게 걱정이라면 TV를 방으로 치우고, 아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에 책장을 만들어주면 TV시청시간보다 책을 보는 시간이 늘 것.
행동을 바꾸려는 사람은 의지를 다지고, 신념을 검토하며, 다짐을 반복하지만 이런 방법은 효과적이지 않다.
굳은 결심에도 지키지 못하는 건 사람들이 단지 어떤 결심만으로 그 일을 끝까지 해내는게 어렵다는 반증.
행동을 바꾸고, 문제를 해결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건 환경을 통제하는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또한 사람들은 스스로 통제감을 가졌다고 느낄 때 마음이 안정되고 자신감이 생긴다.
같은 상황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도 덜하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선택한 일이라고 느낄 때 사람들은 기꺼이 그일을 하고, 덜 힘들게 느낀다.
반대로 통제할수 없다고 생각하면 좌절, 분노, 무력감, 우울감을 느낀다.
11. 감정습관
습관에는 행동의 습관뿐 아니라 감정의 습관도 있다.
잔소리를 하는 목소리의 톤이 어느 정도 올라가면 부모는 아이를 심하게 혼내거나 심할 경우 체벌한다.
이때 아이가 느낀 두려움과 불안은 피하고싶은 자극이 되어 습관은 행동이 아닌 감정에 대해 만들어진다.
아이는 임계치 목소리 톤을 기억하고, 그 소리는 예전에 느낀 불안을 상키시킨다.
불안과 두려움은 아이에게 강력한 동기를 제공한다.
벌떡 일어나서 시킨 일을 하는건 그 행동의 중요성을 깨달아서가 아니라 이후에 예상되는 불안과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런 감정의 습관이 생긴 아이는 큰 목소리에 반응하는 습관이 생긴다.
습관은 상황과 대상을 가리지 않으므로 누구라도 큰소리 치면 위축되거나 표현하지 못하는 분노를 느끼는 감정의 습관이 아이의 평생을 괴롭힌다.
또 생각의 습관도 있다.
부모가 아이의 판단력을 부정하고 무시하면 아이는 '나보다 엄마 아빠가 정하는게 훨씬 좋은 결정이야. 나는 잘 할 수 없어'라는 생각의 습관을 갖는다.
일의 성관에만 관심을 기울이면 아이에게 어떤 습관이 생기고 있는 지 알지 못한다.
매일 학습지를 풀고 점수가 올랐다고 공부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속단 못한다.
잔소리와 협박에 굴복하는 감정의 습관이 생긴 것일 수도 있고, 경쟁에서 진다는 건 패배자라는 생각의 습관이 생긴 것일 수도 있다.
불안을 습관적으로 동기화하는 아이는 행복하기 위해 뭔가를 하는게 아니라 괴롭지 않기 위해,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고 움직인다.
반면 즐거움에 대한 기대를 동기화 하는 아이는 자신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목표를 위해 노력한다.
부모는 동일한 효과를 본다고 불안요법을 선택할수 있지만, 아이들의 행동이 어떤 감정으로 결정되길 바라는가.
12. 아이스크림
한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하루에 몇개씩 먹었다.
엄마가 주지 않으면 떼를 썼고, 급기야 주행하는 차에서 뛰쳐내렸다.
아이의 엄마가 상담을 왔고, 처방을 내렸다.
아이스크림을 떼쓴다고 무조건적으로 주는 걸 중단하고, 하루에 한개만 먹을 규칙을 세우게했다.
아이와 엄마는 일주일 간 힘든 실랑이를 벌였지만, 아이 엄마가 일주일 후 말했다.
"다른애가 됐어요.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조르지 않는 것 뿐 아니라 엄마가 평소에 말한걸 스스로 해요.
스스로 양말도 신고, 유치원에 가서도 선생님 말씀을 잘듣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낸대요.
평소에 아이가 제 말을 다 알아듣고 있었는데 왜 안했을까요, 어떻게 된건지 모르겠어요."
아이는 엄마 말을 이해못한게 아니었다.
단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을 때, 나가 놀고 싶을 때, 그걸 참을 내구력이 부족했을 뿐이다.
안된다고 했다가 조르고 떼쓰면 들어주는 엄마의 태도로 약한 내구력이 더욱 취약해졌다.
먹고 싶을때, 놀고 싶을 때, 하기 싫을 때 그걸 참는게 아이에게는 큰 고통이었다.
아이가 다른아이들보다 아이스크림을 더 먹는다고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려 하는 엄마의 마음이 오히려 괴로움을 가중시킨 셈이다.
아이는 하루에 한개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좌절을 겪었다. 고통을 겪는 아이를 옆에서 엄마는 지켜봤다.
좌절내구력을 키울수 있도록 격려한 것이다.
많이 갖고, 배우고 ,누리는 사람이 행복해지는게 아니다.
실패와 좌절에 힘들어도 스스로를 달래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람, 세상에 나 외에 사람들도 많고,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 반복적 훈련과 연습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과 좋은 습관을 갖게 된 사람이 성장하고 행복해진다.
아이가 상처받는 걸 두려워 않고, 스스로 보듬으며, 이를 통해 영혼이 성장할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행복한 삶은, 겪었던 고통이 얼마나 많고 적은가보다 그 고통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