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혼은 꽃과 같아서

옮겨질 수 없다

by 카르멘
모든 사람은 영혼을 갖고 있는데, 자신의 것을 다른 사람의 것과 섞을 수는 없어.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다가갈 수도 있고 함께 이야기할 수도 있고 가까이 함께 서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각자 자기 자리에 뿌리 내리고 있는 꽃과도 같아서 다른 영혼에게로 갈 수가 없어.
만일 가고자 한다면 자신의 뿌리를 떠나야 하는데 그것 역시 불가능하지.
꽃들은 다른 꽃들에게 가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향기와 씨앗을 보내지.
하지만 씨앗이 적당한 자리에 떨어지도록 꽃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그것은 바람이 하는 일이야.
바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이곳 저곳으로 불어댈 뿐이지.


유독 구름 한점 없이 푸른 하늘이 시리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넓은 하늘 아래 내영혼만 덩그러이 놓인 느낌의 날.

하늘이 잘못한 일은 없는데, 하늘에 대고 원망하고 싶은날.


그럴 때 생각나는 오래된 책 한권,


<크눌프>_헤르만헤세를 꺼내본다.



01. 영혼은 모두에게 새것


크눌프가 조금 후에 덧붙였다.


"난 종종 내 부모님들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어. 부모님은 내가 그 분들의 자식이고 자신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셔. 하지만 내가 그분들을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그 분들에게 난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인간일 뿐이야.


내게 중요한 일이고 어쩌면 내 영혼 자체일지도 모르는 일들을 부모님들은 하찮게 여기시고,

그것이 내가 어리거나 변덕스러운 탓이라고 돌려버리시는 거야.


그러면서도 그분들은 나를 사랑하시고 기꺼이 최고의 사랑을 베풀어주시지.


아버지는 그의 자식에게 코와 두 눈과 심지어는 이성까지도 물려줄 수 있지만 영혼은 아니야.


영혼은, 모든 사람들 속에 새롭게 존재하는 것이지."


02. 꽃들의 운명


꽃들은 모두개 자욱해지면

시들어야 하는 운명,

인간 또한어야만 하리니,

무덤 속에 눕게 되리.


인간 또한 꽃과 같아,

봄이 오면

그들은 모두 다시 살아나리라,

그때는 더 이상 아프지 않으리,

또한 모든 것 용서 받으리.


삶은 얼마나 단순하고 명확했던가!

크눌프는 아무렇게나 행동하면서 더 이상 어떤 것도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삶은 그에 동의했고, 그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국외자였다.


배회하며 구경하는 사람이었다.

아름다운 젊은 날에는 사랑받았으나 이제 병들고 나이들자 혼자 남게 되었다.


03. 너는 왜 그리 살았냐고 묻느냐


보아라.


난 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널 필요로 했었다. 나를 대신하여 넌 방랑하였고, 안주하여 사는 자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일깨워주어야만 했다.


나를 대신하여 너는 어리석은 일을 하였고 조롱받았다.


네 안에서 바로 내가 조롱을 받았고 또 네 안에서 내가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자녀요, 형제요, 나의 일부이다.


네가 어떤 것을 누리든, 어떤 일로 고통받든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했었다.


크눌프가 말하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사실은 저도 항상 그사실을 알고있었습니다."


이제 더 한탄 할게 없느냐?


"없습니다. "


그럼 모든 게 좋으냐? 모든 것이 제대로 되었느냐?


"네. 모든 것이 제대로 되었어요. "




헤르만 헤세, 크눌프.

이책을 처음 읽은건 35살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은 건 아마도 초등학교 쯔음이었을 것이다. 너무 유명한 작가라, 그래서 너무 자주 접하게 되는 이름이라 오히려 그의 책을 부러 찾아본적이 없었다.


과거 어느 우연한 기회에 <헤르만헤세展>에서 '영혼이 꽃과 같아 옮겨질수 없다'는 글귀를 보고, 인상깊어 그 글귀가 나온 책인 <크눌프>를 찾아보았다.


크눌프는 제도권 밖의 사람. 방랑자. 연애하긴 좋으나 결혼할 순 없는 남자. 였다.


매력적인 사람. 하지만 그래서 허무할 수밖에 없는 아름답지만 쓸모없는, 쓸모없기에 갖고싶은 나그네였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떠올랐다. 이 둘이 만났다면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자유를 탐미하는 조르바, 자유 속에 온몸을 내맡긴 크눌프. 같은듯 다른 결의 사내들이 만났다면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가 만들어졌을 것 같다.


크눌프의 말대로, 한 영혼이 다른 영혼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참견을 할순 있어도


그 영혼이 되어주는 일은 불가능하다. 부모자식간에도 불가능한 일.


우린 얼마나 타인의 삶에 대해 들여다보고, 참견하며 살고 있는가.


하물며 스스로의 영혼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얼마나 타인이 되는 삶을 꿈꾸고 사는가.


누구처럼, 누구만큼, 누구보다 더! 라는 수식어로


자신의 영혼을 분칠하면서 살고 있는가. 결국 자기자신이 누구인지는 영영 잃어버린채.


삶이 끝나 하느님 앞에 가는 날,


하느님은


그 물음에 답할수 있어야 한다. 각자의 모든 영혼은 다른법이니깐.


keyword
이전 19화영혼이 강한 아이로 키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