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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 중간 어디쯤 Jun 07. 2020

또또처럼 밥해주세요, 동생이 엉엉 운 사연

뭐? 개밥 먹고 싶다고?

30년 전

부산 서면에는 긴 육교가 있었다.

우리 '또또'는 그 육교 위에서 상자에 담겨 꼬물거리던 강아지였고 3만 원에 아빠품에 안겨 온 날, 우리 식구가 되었다.


내가 국민학생일 때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

(개로서는) 16년간 천수를 누린 '또또'는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나의 막내 동생으로,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그 당시에는 요즘처럼 개 사료의 개념이 그다지 없었다.

그래서 세끼 밥을 같이 먹는 그야말로 '식구'였다.


자그마한 아파트에 살면서, 

못다 한 산책 대신 힘차게 집 곳곳을 누비던 또또의 젊었던 시절, 그 패기답게 그 어떤 도 맛있게 먹어 주었다.


쩝쩝 맛있게 밥 먹은 뒤

신나게 뛰는 또또를 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시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또또가 특히 좋아한 밥이 고기가 섞인 밥이었다.


하루는 엄마가 장조림을 해 주셨다.

짭조름한 장조림을 밥에 탁 얹어 먹는 것은 입맛 돋우는데 최고이기에, 나도 참 좋아하는 반찬이다.

'고기'라서, 또또는 나보다 장조림을 더 좋아했다.


그날은 또또가 너무 배고파하여

우리 밥보다 먼저 준비해 줬던 기억이 난다.

흰밥에 장조림 잘게 썰고 간장으로 쓱쓱 비빈 '장조림 밥'!!!


허겁지겁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밥을 먹으려는데

갑자기 동생이 엉엉 울었다.

당황하신 엄마와 아빠의 표정이 지금도 기억에 난다.

울던 동생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도 또또처럼 밥해줘!!!!"


어린 마음에 개밥이 너무 맛있어 보였던 모양이다.

온 가족이 한바탕 크게 웃었고

한동안 몇 년 더

우리 집 장조림은 밥과 함께 섞여 나왔다.


그 뒤 30년이 지난 오늘까지

우리 가족은 장조림만 보면, 그때 이야기를 꺼낸다.


사랑하는 또또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고

어리고 귀여웠던 여동생에 대한 기억이기도 한

우리 집 '장조림' 이야기.


오늘, 우리 집 식탁에 장조림이 올랐다.

아이들 주려고 가위로 잘게 잘게 자르는데 

또 그때가 떠오른다.


임신한 동생의 아기가 태어나고

우리 아이들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기가 되면 꼭 한번 더 기억 속에서 꺼내게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장조림

아니 장조림 밥!

단연 내게는 손꼽히는 '추억의 음식'이다.


* 이 글을 동생에게 보여주었더니 엄마가 당시 또또 밥에 참기름도 세 방울 정도 넣어주었다고 회상한다. 참기름 세 방울이라.. 동생이 울어버렸던 이유가 이해되려 한다.


오늘 우리집 식탁위의 장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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