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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 중간 어디쯤 Aug 05. 2020

이번엔 믿어 주세요

할머니의 수술

며칠 전 할머니께서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 오셨다.

아주 정정하셔서

"과장님 (할머니가 아니라) 어머니세요?"라는 이야기를 들으실 정도지만 80년이 넘는 세월은 할머니 몸 구석구석에 통증을 남겨 놓았다.


최근 왼쪽 손이 엄청 아프다고 하셨다.

집 근병원을 다녀도 차도가 없다고 하시면서 전화를 하셨길래 괜히 마음이 쓰였다.


"할머니, 전화로 들어서는 목디스크인 것 같아요. 그런데 큰 병원 가셔서 검사 이것 저것 하시려면 소견서도 필요하고 근전도 검사 결과지도 필요할 테니 일단 저한테 오세요. 제가 검사하고 소견서 써 드릴게요."


삼촌과 함께 병원에 오신 할머니께

직접 근전도 검사를 해드리면서 왜 진작 이렇게 할머니의 손 두덩의 근육이 말라 홀쭉해질 때까지 알아채지 못했을까..

온갖 자책이 머리와 마음을 휩쓸고 갔다.


목디스크도 물론 있었지만

할머니의 증상은 손목터널 증후군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나는 "심한" 손목터널 증후군 진단을 내려 드렸고

할머니는 오늘 수술을 받고 계신다.



아주 오래전,

갑자기 할머니가 집으로 전화를 하시더니 목욕탕 욕실에 들어가서 배추가 "숨이 죽었는지" 보라고 하셨다.


네?

죽어요?

배추가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건 그냥 보면 돼지~


음.. 숨 죽은 것 같아요..


일하시는 엄마를 대신해 김장준비를 해주셨던 할머니는 "그러면 이제 꺼내 둬~" 하셨다가 "아니다, 그냥 놔둬"

하시고는 전화를 끊으셨는데


이제 그것이 무슨 뜻인 줄 아는 나는 할머니의 혜안에 놀랄 뿐이다. 내 말  믿기 정말 잘하신 거다!!!

그날 숨죽었다 말한 그 배추는 뻐덩뻐덩 잘 살아 있었다!!


수술 직전

할머니께 전화드렸다.

"할머니, 그거 진짜 별거 아니에요~ 제가 잘 알잖아요. 그러니까 걱정 말고 수술 잘 받고 오세요!!"

이랬더니

"응~ 진짜 괜찮을까? 네 말을 믿으라고?" 하신다.



네~~

이번에는 믿으셔도 괜찮아요.


손도 금방 나을 거고

다 금방 좋아질 거예요.


코로나 19 때문에 면회 제한도 심한 요즘이지만..

우리 할머니 손,

얼른 가서 잡아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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