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 중간 어디쯤 Jul 16. 2020

택시의 신을 만나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지난주 어느 날

퇴근하려는데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휴가도 예정되어 있던 터라  정기 점검을 위해 차를 맡겨두고 오랜만에 택시를 탔다.


카카오 택시로 호출 뒤 

이렇게 편리한 세상에서 살고 있음에 감사하며!!

기분 좋게 택시에 올라탔다.


"손님, 혹시 저쪽 길로 가도 될까요?"

내가 아는 길 말고 다른 길로 가자 하시면서

며칠 전부터 공사를 하고 있어 엄청 막힌다는 이야기도 덧붙이셨다.

그런 이유라면.. 네!!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기사님은 절대 안 막히는 길을 많이 알고 계신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는

대선소주 교대 뒷길

교회 뒷길, 일방통행길

망미동 마을버스 다니는 길

등등을 쭉~ 열거해 주셨다.

 

 별명이 미꾸라지입니다. 그 뒤 따라온 유쾌한 웃음!


보세요, 엄청 빠르게 운전하는 것 같지요?

그런데 막상 미터기 보면 그렇지 않아요.

별로 안 빠른데 빠른 것처럼 느껴져요.


내가 택시의 달인, "택신(택시의 신)" 아닙니까~!


나는 절대 브레이크 잡을 때  손님 머리가 움직이게 하지 않아요.

비상깜빡이는 절~대 빠뜨리지 않고요.

보세요~ 비상깜빡이버튼이 하도 눌러서 닳았다 아닙니까.


이쯤 되자 내 입에서 "비법 좀 알려주세요"가 저절로 나왔다.


자녀분들도 운전을 전부 이렇게 가르쳤다고 하시면서

몸을 앞뒤로 움직이면서 백미러를 보면 옆 차를 잘 파악할 수 있다는 것과

브레이크를 부드럽게 밟는 방법직접 시범 보여 주셨다.

부드러운 출발과 부드러운 정지

그리고 안전한 운전.

그런데 빠르기 까지!!


12년째 운전 중이신데 무사고라 하셨다.

내가 탔을 때, 이제 딱 8시간째 일하시는 중인데 다른 차들보다 매출도 많은 편이라고 하셨다.


이건 뭐~ 이 업계 최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좀 더 나누고 무료 운전강의까지  고 나니 금세 집 앞까지 왔다.


택신과의 만남을 기억하고 싶어서 내리기 전, 부탁드리고 비상깜빡이 버튼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닳아버린 비상깜빡이버튼


이 택시를 탈 수 있었다니 제가 운이 좋았네요^^


내리기 전,  양손 양발로 하는 운전을 위해 차 없는 도로에서 연습하신다는 기상천외한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내 마음속에 가득 찬 감정은 바로

"존경과 부러움"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자신이 하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즐기며,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는 그들만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데 그것이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을 느낀다. 전염된다.


언젠가 만난 계란빵 굽는 분이 그랬고.

우리 병원 간호사 선생님  한분이 그랬고

한 번씩 들리는 마사지숍 사장님도 그렇다.

아, 아이들과 함께 간 공연장 마술사님도 그랬다.


택신님은 단연 으뜸인 것 같다.


나도 저렇게 '나의 모든 역할'을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그러고 있지 못하여.. 택시 기사님이 마냥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노력하고 있다. 


안다.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적어도 삶을 대하는 나의 자세는 '저런 것'으로 선택하고 싶다.


택신님께 강습받은 대로 백미러를 적극적으로 보면서 출근했더니  운전하는 것이 은근히 재밌다. 출근길도 마냥 무겁지 않고 신이 났다.


오늘도 부산 이곳저곳을 누비고 계실 택신님!

특유의 유쾌함을 만나는 사람마다 전해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짧은 만남, 긴 여운.

이런 느낌 참 좋다!




혹시,'택시의 신'을 직접 만나 보신 적 있나요?

저 자랑 좀 할게요.

전 만나 보았답니다, 지난 주 비오던 어느 날에요^^








작가의 이전글 지금 이 순간은, 붙잡고 싶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