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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 중간 어디쯤 Sep 23. 2020

얼라 키우느라 힘들어요

다음 주 결혼기념일 맞이, 러브레터

이틀 전,

아이들이 옥토넛을 좋아한다고 남편이 큰마음먹고 옥토넛 탐험선을 사주었다. 레고는 아닌데 레고처럼 다 조립해야 하는 옥토넛 탐험선이 '밤 8시'에 남편과 함께 우리 집에 도착!


(엄마와 아빠의) 조립이 다 끝나지 않아 절~대 잠자지 않겠다는 아이를, 자고 일어나면 다 되어 있을 거라는 꿀 떨어지는 말로 유혹해 억지로 재웠다..

그리고 나도 같이 잠들어 버렸다..


이런 날은 꼭 늦잠을 잔다.

지각할 판인데, 평소보다 더 일찍 깬 둘째가 아침부터 대성통곡을 시작했다.

"자고 일어나면 다 되어 있을 거라고 했잖아요"라며

엉엉 우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출근 때문에 조급하기도 했다.

엄마와 직장인의 역할이 충돌하는 시간. 내가 제일 피하고 싶고 싫어하는 순간이다..


"엄마가 정말 미안해, 어제 너랑 같이 잠들어 버렸어"라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수밖에 없었다.

퇴근하고 와서 꼭 완성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했다.


그럭저럭 오전은 잘 보냈다.

오후에 진료실 문이 열리면서 반가운 분이 아내와 함께 들어오셨다. 입원 치료 종료 후 외래에서 뵙는 분인데, 콧물도 나고 잠도 자주 깨고, 소변도 너무 마렵고.. 불편한 게 엄청 많으신 모양이었다. 진료 끝나고 나가시면서 아내분이

"얼라 키우기 참 힘들지요~~~" 하신다.


독심술 하시나?

처음엔 나한테 '애 키우기 힘들지요?'라고 하시는 줄 알 았다가 '아저씨 돌보기 힘들어요'라는 뜻임을 곧 알아차리고는 웃었다.



'밤 8시 조립완구'총책임자인 남편이

그날 결국 탐험선들을 완성해 왔다. (일하는 틈틈이,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그런데 이번에는 툭툭 부품들이 떨어진다.


여태까지 별말 없던 첫째가 부품이 자꾸 떨어진다며 울상이다.

매사에 꼼꼼한 첫째에게

"그냥 대충 해~"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좋은 거 가르친다, 으이구~' 눈빛  쏘고 있는데

첫째가 대뜸 "대충 할게요, 그런데 대충이 뭐예요?"라고 해서 많이 난감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왔다.



모두가 잠든 사이, 남편이 강력 접착제로 툭툭 떨어지는 부품들을 꼼꼼하게도 붙인 흔적이 거실에 흩어져 있다.

거실 바닥에는 신문지 위에 쪼롬히 탐험선 6대가 놓여있었다.

(끝내주는 책임감에 박수를♡!!!!!!)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고요한 아침시간

지난 이틀을 돌이키면서

생각한다.


얼라 키우느라 참 힘들다

그래도 대충대충, 이대로 남편과 함께라면

어떻게든 잘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의 8년처럼, 앞으로의 평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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